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KJA Jan 18. 2022

다정했던 그때의 가을날

영화 <가을날의 동화> (秋天的童話, 1987)

1. 일상에서 피어오른 사랑


남자친구인 ‘빈센트’(진백강 분)와 함께 공부하기 위해 미국으로 유학을 오게 된 ‘제니퍼’(종초홍 분)는 먼 친척인 ‘샘’(주윤발 분)의 도움으로 같은 건물에 살게 된다. 그러나 빈센트의 외도를 알게 된 제니퍼는 좌절하고, 더욱 의기소침해진 채 고향으로 돌아갈까 하는 고민에 빠지게 된다. 샘은 이런 제니퍼의 곁을 묵묵히 지키며 연고라고는 없는 제니퍼가 타향살이에 적응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돕는다. 돈도 없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유학 생활이지만 활기차고 당당한 샘 곁에서 제니퍼는 점차 자신감을 얻는다.

 샘과 제니퍼는 둘이 함께 보내는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점차 성장해나간다. 술과 도박을 즐겨하고 이곳저곳 빚진 것도 많아 가난한 샘은 제니퍼를 사랑하게 되며 그녀와 어울리는 멋진 사람이 되어 정착하고자 하고, 제니퍼는 샘의 조력으로 진취적인 사람이 되어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자 하는 목표를 갖게 된다. 같이 있으면 행복하지만 두 사람은 너무도 달랐고, 원하는 삶 또한 같지 않았다. 샘과 제니퍼는 사랑하는 사람 덕분에 꿈을 꾸었으나 꿈의 끝에 서로가 있을 수 없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어긋난 상황 속 이별을 맞이하게 된다.

 그럼에도 두 사람이 마지막 장면에서 재회할 수 있었던 건, 서로에게 전해진 진심 때문이 아니었을까. 샘은 제니퍼에게 시곗줄을, 제니퍼는 샘에게 시계알을 남겼다. 이별의 순간까지도 입 밖으로 전하지 못한 감정이었지만 두 사람의 추억과 사랑이 담긴 손목시계를 나눠 가지며 서로에 대한 진심을 알게 된다. 결국 지향점에 도달한 두 사람은 자신의 꿈을 논하던 해변가에서 재회한다. 마지막에 서로에게 선물한 엇갈린 시계 부품으로 서로의 진심을 알게 되었고 용기를 얻어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었다. 진심이 통하면 돌고 돌아도 인연이다. 마침내 제 짝을 찾은 시곗줄과 시계알처럼 말이다.



2. 도시와 이민자


 제니퍼의 시야에는 백야로 착각할 정도로 환히 빛나는 밤거리의 전광판과 그 속에서 행복하게 웃고 떠드는 사람들이 가득 찬다. 어렵게 구한 아르바이트를 하러 지친 몸을 끌고 탄 버스는 현란하게 빛나는 뉴욕 거리 한 가운데를 가르며 나아가지만 섞이기는 커녕 소외 되어있다. <가을날의 동화>는 공원을 산책하는 시민들, 샘과 제니퍼의 심리적 가교가 되어주는 브루클린 다리, 파티를 즐기는 학생들의 모습처럼 그 장소와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일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낸다. 찬란한 80년대의 뉴욕은 즐겁기도, 행복하기도 하지만 그 속을 부유하는 샘과 제니퍼를 보면 왠지 모를 쓸쓸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차별이 만연했던 시대와 이민자는 결코 쉽게 동화될 수 없고 그렇기에 씁쓸하고 허전하다. 누군가는 막막한 현실에 한계를 느끼고 포기하려 들 수 있다. 누군가에겐 처음으로 발을 디딘 도시가 두려워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할 수 있다. 그럼에도 서로를 의지하고 믿어주는 존재가 있기에 고독과 배척을 이겨내 또 하루를 살아내고 버텨낸다. 이민자, 어찌 보면 불청객이라 여겨지기도 하는 존재이기에 덩달아 소외감과 거리가 느껴지지만, 그럼에도 영화는 단단하게 마음을 묶어주는 샘과 제니퍼의 사랑 덕분에 더욱 애틋하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Written by 옥자

매거진의 이전글 모두의 존재 가치를 인정하는 세상을 위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