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완령옥>, (The Actress, 1991)
담백하게, 어쩌면 불친절하게 인물을 바라보는 방식에 대하여
완령옥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전설적인 배우로, ‘중국의 그레타 가르보’라고 비유되기도 했을 만큼 무성영화 최고의 스타이기도 했다. 영화 <완령옥>은 그런 완령옥의 모습을 그대로 전달하면서도 다큐멘터리와 혼합하는 독특한 방식을 택해 관객에게 신선함을 준다. 완령옥이 출연했던 작품을 하나씩 리메이크하는 것은 물론이고, 장만옥을 비롯한 배우들이 어떤 주관으로 그 시절을 연기했는지 낱낱이 드러낸다. 카메라 안과 밖을 넘나들며 90년대의 배우와 20년대의 배우의 뒷모습을 세세하게 전하는 방식을 취한다. 이러한 실험적인 시도는 부자연스럽다기보다 오히려 관객이 과거의 완령옥을 명확히 상상할 수 있도록 하는 하나의 장치로서 작용한다.
영화는 배우 완령옥의 시작과 끝을 여과없이 담아낸다. 눈썹을 길게 늘어뜨린 장만옥은 이질감 없이 완령옥 그 자체다. 그 시절 영화는 대체로 무성영화였기 때문에 대화 없이 표정과 신체 언어만으로 모든 것을 표현해내야만 했다. 장만옥의 행동과 몸짓으로 재현되는 완령옥의 모습이 실제 그가 연기한 장면으로 오버랩되는 순간 느껴지는 시대를 초월한 두 배우 간의 일체감은 단순한 장면 고증을 넘어서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장만옥이 연기하는 완령옥은 공허한 웃음을 자주 지어낸다. 컷 사인이 끝나면 영혼이 빠지기라도 하듯 속을 알 수 없는 무표정을 유지한다. 마치 「인형의 집」의 ‘노라’를 연상케 하듯, 세 남자의 장난감 마냥 이리저리 치이는 인형처럼 그려지기도 한다. 오히려 카메라 안에서 자유롭게 연기하는 완령옥이 더 행복해 보일 정도다. 컷 사인이 나도 울음을 멈추지 못하는 완 소저의 뒤편엔 어떤 것이 문드러져 가고 있었던 걸까.
하지만 이에 대한 탐구는 곧 완령옥과 세 남자의 관계성을 과도하게 비춤으로써 차단된다. 장달민으로 시작해서 장계산, 채초생에 이르기까지, 작품은 주인공의 내면보다 그를 지나친 일련의 남성을 더 깊게 조명한다. 그렇기 때문에 완령옥의 감정은 더 미궁 속으로 빠지고 남자에게 배신당해 자살하고 마는 것처럼 그려져 허망함과 씁쓸함은 배가 된다. 감정선에 대한 깊은 논의 없이 무뚝뚝하게 사실만을 비추는 평면적인 전달로 그치고, 배우 장만옥의 인터뷰를 번갈아 보여줌으로써 관객의 과도한 몰입을 막는다. 죽음 같은 자극적인 소재를 낭만적 요소로 그려내지 않고 철저히 객관적인 시각으로, 어쩌면 불친절하게 완령옥을 90년대로 다시 불러들인다. 주관적인 억측과 오해에 질려버린 완령옥을 이해했던 걸까. 감독은 강한 이입이 아니라 완령옥이라는 인물의 담백한 일대기를 담아낸다는 목적으로 작업했을 게 틀림없다.
완령옥은 편향적인 보도와 자극적인 기사를 견디지 못하고 세계 여성의 날인 3월 8일이 되기 하루 전 자살했다. 그의 삶은 치열했고 자신에게 요구되는 여성상에 안주하지 않았다. 진보적인 여성을 카메라에 담아내기 위해 노력했던 그의 모습은 3월 8일의 의미와 묘하게 겹치면서 안타까움과 절망감을 극대화한다. 채초생은 완령옥에게 쪼그려 앉음으로써 모욕을 받고 구원을 기다린다고 했다. 완령옥은 쪼그려 앉는 것보다 더한 것을 택했다. 25년의 짧은 시간 동안 배우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늘 소모되는 인생을 살아야 했다. 그는 죽음을 통해 구원받았을까. 강인해 보였으나 ‘그래도 소문은 무섭다’라며 불안과 공포 속에서 마지막을 맞이했을 그가 행복했는지는 모를 일이다. 다만 완령옥이 죽음을 택하지 않고 강당 위에서 ‘오천 년 남자의 역사에서 일어선 것을 경축해야 한다’라고 학생들에게 당당히 말해줬다면 어땠을까, 가늠해볼 뿐이다.
Written by 나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