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무장원 소걸아> (武狀元蘇乞兒, 1992)
아찬(주성치 분)은 소 장군(오맹달 분)의 외아들로 물 흐르듯 써도 마르지 않는 부를 가졌으며, 누구도 견줄 수 없는 뛰어난 무공의 실력자이다. 풍족하게 살았기에 학문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글자조차 모르는 문맹으로 살아간다. 기방에서 만난 여상(장민)에게 한눈에 반한 아찬은, 여상의 마음을 얻기 위해 무장원 시험을 치르러 경성으로 떠난다. 불리한 조건으로 시험을 치러내어 무장원의 이름을 얻기 직전, 이름도 못 쓰는 문맹이라는 사실이 까발려지고 결국 아찬 부자는 평생 거지로 살아가라는 황명을 받게 된다.
아픈 자신을 대신해 구걸하러 간 아찬을 기다리던 소 장군은 한 아이의 만두를 훔쳐먹은 죄로 관군들에게 잡혀간다. 이를 발견한 아찬은 일행을 말려보지만 되려 관군들에게 비아냥 당한다. 대신 관군들은 아버지를 풀어줄 테니 개밥을 먹으라 한다. 소 장군은 ‘아비는 늙어서 괜찮다’고 하며 아찬을 말리지만, 아찬은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개밥을 먹는다. 아찬이 아무렇지도 않게 개밥을 먹자, 이내 아버지도 함께 개밥을 퍼먹기 시작한다.
주성치의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견고하게 쌓아 올린 벽돌 성과도 같이 착착 맞아떨어지는 코믹의 향연에 포복절도하게 된다. 그러나 정신없이 웃다가도 인간다움을 노래하는 찰나의 장면이 흐르면 눈가에 일순간 뜨거워진다. 그의 영화는 그렇다. 허무맹랑한 웃음 속에 감동이 있다. 그가 그려내는 인간의 효와 우정, 그리고 사랑의 이야기는 우리네의 소중한 삶에도 만연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쉽게 공감하고 감동받는다. 그의 이야기엔 울림이 있기 때문이다.
황제는 세력이 커진 아찬에 불안을 느끼고 조무기를 무찌르고 떠나려는 아찬을 붙잡으며 당신의 거지 군단이 나를 위협할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할 것이냐 묻는다. 아찬은 그에 ‘거지의 수는 내가 아니라 당신이 결정하오. 당신이 영명(英明)하여 국태민안(國泰民安)하다면 거지가 있을 턱이 없잖소.’라 말한다. 이후 아찬은 영웅이 되었음에도 식솔들과 동냥으로 생활하며 거지의 삶을 이어나간다. 사람들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이 대사 한 마디가, 궁핍해도 서로가 있기에 행복한 가족의 모습이 세상을 사랑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인간다움’을 노래하는 주성치의 영화는 따뜻한 시선으로 만인을 바라보며 세상은 아직 따뜻한 곳이라 말한다.
호의호식하던 아찬은 모든 것을 잃고 거지가 되어버렸다. 돈과 명예를 잃은 건 상관이 없었지만, 무공까지 잃어버려 보통 사람이 되고 만 아찬의 자존감을 바닥을 친다. 평생을 자신만만하게 살아온 아찬에게 찾아온 결핍은 정체성의 근간이 흔들릴 정도의 큰 시련이 된다. 아찬은 그렇게 다 쓰러져 가는 판잣집에서 두문불출하며 자책과 회의에 빠지고 무기력하게 삶을 연명한다.
어느 날 아찬은 나무 밑에서 잠을 자다 ‘호아청’이라는 왕초를 만나게 된다. 호아청은 아찬이 인간사의 모든 부귀와 모든 고통을 충분히 경험했다 말하며 아찬을 수몽나한에 임명하고 수몽나한권을 전수해 주겠다고 한다. 그렇게 아찬은 수몽나한의 권법을 체득하고, 막대숙이 남긴 강룡십팔장과 대환전을 사용하여 악당인 조무기를 무찌른다.
아라한(阿羅漢), 즉 나한(羅漢)은 불교에서 공양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 존경받을 만한 사람을 의미한다. 온갖 번뇌와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워져 최고의 깨달음을 얻은 아찬은 달관의 경지에 이른다. 물질적인 결핍이 주는 불편이 아닌 자기 비하와 원망의 정신적 소진 상태에 빠져있던 아찬이었지만 나한의 자리에 올라 자신감과 사랑, 그리고 존엄을 얻게 된다. 주성치의 이야기엔 항상 희망이 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아 주머니에 동전 한 푼 남지 않았어도, 수도 없는 자기 비하와 우울에 갇혀 있어도, 무력한 나날이 이어지는 절망 속에서도 주인공은 고찰과 반성, 그리고 한 줄기의 희망을 품고 시련과 맞서 싸운다. 까마득한 절벽 위에 몰려 있어도 얇디얇은 그 희망의 빛 한 줄기만 가슴에 품고 기억한다면 이겨내지 못할 고난은 없다. 호아청은 실의에 빠진 아찬에게 ‘고진감래’의 뜻을 알려준다. 영원한 좌절은 없다. 우리의 인생선에 그 어떤 괴로움이 놓여있더라도 하나씩 깨어 나가 정진한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봄이 오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