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내게 질문하시는 분들이 있다.
"지인이 암에 걸렸는데 어떤 말을 해줘야 할지 모르겠어요."
솔직히 나도 잘 모른다. 작년에 예전 직장 동료 3명의 발병 소식(불과 몇 개월 사이 3명이나! 게다가 모두가 같은 암이었다!!)을 듣게 되었는데, 나 역시 그들에게 무슨 말을 건네야 할지 몰라 긴 시간 메시지를 썼다 지웠다 했던 기억이 있다.
위로는 어렵다. 사람마다 성향이 달라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있다. 조사 하나, 상대방 상황, 전달 매체 등에 따라 같은 말이 전혀 다르게 느껴질 수 있으니 위로에는 기술이 필요하다.
내가 암에 걸리고 받았던 위로 중 가장 힘이 되었던 말과 그 반대의 경우를 공유한다. 나의 사례를 참고하여 적어도 최악의 실수는 피하기를 바란다.
* 재난적 위로
(이 말밖에 난 몰라) 힘내요
전혀 위로받지 못했던 말인데 나도 종종 쓴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우리는 다들 위로하는 법을 모르나 보다. 그러니 우물쭈물하다 겨우 꺼내는 말이 전혀 힘이 되지 않는 “힘내요”다.
(무턱대고 긍정) 괜찮아, 아직 젊잖아
상황에 따라 써야 하는 말이다. 가벼운 골절상을 입은 지인에게는 충분히 좋은 위로가 되는 말이나 말기 암 진단을 받은 사람에게 이 말은 전혀 위로가 안 되었다.
(전래동화 마니아 st) 하나님 앞에 죄를 고하고 회개하세요
깊은 빡침. 된통 넘어진 사람에게 흙을 뿌리는 말이었다. 사람을 두 번 죽이는 말이었고 오랜 시간 나를 후벼 팠던 말이었다. 성경 말씀을 권선징악, 인과응보로 해석하셨나 보다. 믿음 좋은 척하기 전에 성경의 욥기 한 번만 정독하셨더라도 저런 말은 안 했을 텐데...
* 최고의 위로
(말보다는 행동으로) 같이 울어주고, 손 잡아 주고, 간간이 안부 메시지 보내기
잊을 수 없는 고마운 사람들이 있다. 나보다 더 크게 울어줬던 후배가. 소식 듣자마자 자정이 다된 시간에 병원으로 달려왔던 친구가. 내 손 잡고 기도해 줬던 그분이.
진심은 말보다는 행동으로 전달되기 쉬운 것 같다.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기도하고 있어요
이 말이 그렇게 고마웠다. 기도할게요 말고 기도하고 있어요. 그 시간 많은 이들의 기도가 모여, 그 힘으로 나를 살렸던 거라 믿고 이제는 내가 그들을 위해 기도한다.
* 엉뚱한 위로 episode
복직 당시 회사 선배님께서 나에게 “이제 어서 아이 낳아야지.” 하셨다.
‘풉’ 헛웃음이 나왔다.
그분은 나름 덕담이라고 건넨 말이었을 테다. 다만 나의 상황과 내 병에 대한 기본 지식이 전혀 없었을 뿐.
어떻게 설명해야 부질없는 바람을 내비치지 않으시려나, 경험상 이럴 때는 직구가 나아서 돌리지 않고 말씀드렸다.
“실장님, 저 치료과정에서 폐경되었습니다.”
급성백혈병 항암제와 방사선 치료가 워낙 독하다 보니 가임기 여성 대부분 강제 폐경을 겪게 된다. 쉽게 말하면 치료받다 난소가 맛이 가버린다는 말이다.
결혼 만 4년, 아이 없는, 30대 여성에게 찾아온 폐경을 받아들이기가 처음엔 쉽지 않았다. 한참 먼 이야기라 귀 기울여 본 적도 없는 갱년기 증상들이 우후죽순 찾아와 숙주 반응(조혈모세포이식 후 겪는 여러 후유증)과 함께 나를 쥐고 흔들었다.
남편은 결혼 초기 딩크족을 원했기에 나도 아이를 서두르지는 않았다. 자연스럽게 생기면 나아야지 생각했는데 병에 걸렸고, 그 결과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 되었다.
안 하는 것과 못하는 것은 한 글자 차이지만 하늘과 땅 차이다.
폐경을 받아들이면서부터 밖에 지나가는 아이들이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었다. 아기들을 보면 안아주고 싶었고, 살에 코를 박고 고소하며 달큼한 아기 냄새를 실컷 맡으며 마음껏 사랑해주고 싶었다.
‘나중에 아이들이 생기면 이런 가정을 만들어야지.’ 기분 좋은 상상은 결코 이룰 수 없는 현실이 되어 버렸다.
실장님은 당황하셨나 보다.
“미안해요. 내가 잘 몰라서 실수했네요.” 쿨하게 사과하셨다면 얼마나 멋있었을까.
나빠서가 아니고 놀라고 미안해서 그러셨겠지만, 너무 황당한 말씀을 뱉으셨다.
“성경에 보면요,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도 폐경 후 이삭을 낳았어요. 믿음이 있으면 가능합니다.”
귀를 의심했다.
혹시 이 말씀을 위로라고 생각하고 던지신 걸까?
차라리 성모마리아처럼 성령으로 잉태하라고 하시지 않고?
지금은 실소를 터뜨리는 일이지만 당시엔 어이가 없어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덕분에 가장 엉뚱한 위로 1위 대상자로 그 선배님이 떠오른다.
내가 받았던 최악의 위로와 최고의 위로 둘 다 종교인들에게서였다. 나 역시 크리스천으로서 ‘아, 이건 진짜 아니지’ 싶은 이야기들을 공유하였다. 결코 특정 종교인을 비난하려는 게 아니고 이런 실수는 하지 말자는 차원에서.
한때는 ‘입양’이라는 두 글자를 가슴에 살포시 올려둔 적도 있었다.
그러나 치료가 끝난 후 체력이 돌아오기까지는 생각보다 긴 시간이 걸렸다. 불과 작년 설, 명절이라고 전 조금 부친게 무리가 되어 대상포진에 걸리는 수준이었으니 아이를 기를 건강상 여건이 안 되었다.
단순히 아기가 예쁘다는 이유로 입양하는 것은 아니라 판단하여, 내 인생에서 아이, 자녀라는 부분에 크게 엑스표를 치고 지웠다.
대신 한 명의 아이가 교육받을 수 있고, 또 한 명의 환아가 치료받을 수 있도록 2명의 아이들을 정기후원하며 아쉬운 마음을 달랬다.
30대의 나는 암에 걸리면서 많은 것들을 내려놓아야만 했다.
직장, 성공, 지위, 돈, 자녀, 여성성, 외모와 체형의 변화 등.
아쉬운 마음이 깊어지면 때론 억울하기도 하다.
그러나 전쟁과 같은 시간을 버텼고, 가장 소중한 것들을 지켜낸 과거의 나에게 “장하다.”라고 말해주며 꼭 안아주고 싶다.
40대의 내 삶은 많이 비운 만큼 채울 공간이 많아졌다.
사회의 눈에는 인생이라는 레이스에서 크게 넘어진 실패자로 보일 수 있겠지만, 내 마음은 과거 어느 때보다 평온하고 감사함이 충만하다.
미래의 나는 현재의 나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려나? "참 잘했어요" 도장 꾹 정도의 평가를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