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내게 퇴사 이유를 묻지 않았다. 모두가 ‘질병으로 인한’ 결정으로 받아들였고, 나 역시 그 편이 설명하기 편했다. 그게 이유가 아닌 것도 아니었기에 그냥 그렇게 두는 게 나았다.
퇴사가, 가족과 지인들에게 나를 또 한 번 ‘불행한 사람’으로 인식시켰나 보다. 많은 이들이 측은함이나 안타까움을 눈빛으로 전달했다.
사표를 내기 전후로 한동안 많이 울었다. 직장을 잃는 자체보다 소속이 없어지는 게 두려웠다. 긴 시간 직장생활을 하면서 동료에서 친구가 된 사람들을 다수 잃을 거라는 게 아쉬웠다.
앞으로 사회에서 나를 소개하는 상황이 되었을 때 난 어디까지 주저리주저리 설명해야 하는 걸까. 종이 쪼가리라고 여겼던 명함이, 깔끔하고 명료하게 나에 대해서 설명하는 수단이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유치원 시절부터 자기소개를 할 때면 "전 ****의 김 00입니다"라고 나를 소개했었는데, 이젠 내 이름 앞에 수식어가 없어진다는 현실이 쓸쓸했다.
그나저나 앞으로 나는 자신을 어떻게 인식해야 하나? ‘전업주부’라는 새로운 직업이 영 어색하고 맞지 않는 옷 같았다.
동료로 만나 친구가 된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회사가 서울에 있었다면 가끔씩 만나며 소식을 나눌 텐데 본사가 지방으로 이전하여 우리의 인연이 지속되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처음엔 모바일 메신저 톡을 나누겠지만 각기 살 길 바쁘고, 공통 관심사가 줄면 멀어지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겠지.
먼 훗날 시부모님과 친정아버지 장례식 때, 내 손님은 몇이나 되려나? 쓸데없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걱정이 들기도 했다.
애처로운 눈빛 발사로는 마음이 덜 전달되었다고 생각하셨는지 한 마디씩 덧붙이는 분들도 계셨다.
“에구, 아직 젊은데 어쩌다가 (예상 생략 문장 : 그런 병에 걸려서)...”
“너한테 왜 그런 일이...”
그리고 아이디어까지 내주신다.
"넌 다른 뭘 해도 잘 해낼 거다.”
"공부방, 과외를 해보는 건 어때?"
"책을 내봐"
"유튜브 시작해 봐라."
병에 걸리고 처음엔 나를 안쓰럽고 안타깝게 봐주는 눈빛이 감사했다. 어쨌든 그 눈빛은 그들의 마음을 내 마음에 포갤 때 나오는 공감의 결과이다. 그런데 한두 달도 아니고 몇 년을 계속해서 연민의 눈빛을 받다 보면 이게 사람을 미치게 한다.
‘암 환자’ 타이틀 내려놓고 다시 일반인처럼 살고 싶은데, 그 눈빛이 나를 여전히 ‘급성백혈병’이라는 거대한 구덩이 속에 가두는 것 같았다.
사람들의 우려 덕분인지, 퇴사 후 3년이 가까운 지금까지 난 꽤 잘 지내고 있다. 안 하는 게 아니고 못 하는 것에서 오는 미련 때문에 가끔 직장인 시절의 내가 그립거나 아쉬울 때가 있지만, 결국 퇴사는 나의 선택이었다. 그러니 더 이상 원망이나 후회는 없다.
회사를 그만두면 큰일 나는 줄 알았는데 큰일은 없었다.
수입이 줄고, 회사에서 받던 복지혜택들이 없지만 그로 인해 생활이 불가하지는 않다. 수입이 준 만큼 일상을 소박하게 꾸리면 얼마든지 재미있게 살 수 있고, 찾아보니 의료나 문화, 교육에 있어 국가 복지 혜택도 상당해 퇴사가 특별히 아쉽진 않았다.
생각보다 전업주부라는 새로운 직업에도 잘 적응하고, 신기하게 매년 새 친구를 사귀며 좋은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넉넉해진 시간 덕분에 전자책을 발간하였고, 책을 쓰다 글쓰기의 매력을 알게 되어 지금은 새로운 꿈을 꾸며 기대와 설렘으로 살고 있다. 오히려 회사를 계속 다녔다면 품지 못했을 꿈일 테다.
하나의 문이 닫히면 또 하나의 문이 열린다.
닫힌 문 앞에서 울고, 괴로워할 시간에 나를 위해 열릴 문을 찾는 것이 훨씬 현명하다. 다만 저절로 열리는 문은 없다는 것을 인지하면서!
퇴사 후 썼던 블로그 글의 결말이 오늘의 현실이 된 것 같아 그저 감사하다.
2021.2.22
(생략)
몸이 조금 불편하다고
안정적인 직장을 잃었다고
삶이 원하는 방향과 달라졌다고
마음까지 따라 불행해질 필요는 없다.
나를 불쌍히 여기는 지인과 가족들
관심과 연민 감사한데요
그 시선 때문에 '난 불행한 사람인가 봐.'
제가 착각하잖아요
전 어쩌면 당신 생각보다 훨씬 더 행복하답니다
앞으로는 더 그럴 것 같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