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연애시절의 그는, 회사에서 실적이 우수한 직원들만 보내주는 해외여행 대상자로 뽑힌 적이 있었다. 무료 여행 포상을 받은 남자친구가 부러워 나는 눈을 반짝이며, 어디로 며칠간 가는지 물었다. 그러나 당사자인 그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하아, 가기 싫다. 난 여행이 싫어. 특히 해외여행은 더. 그냥 회사 나가는 게 나아. 안 갈 수만 있다면 돈을 내고서라도 빠지고 싶다."
나로선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말이었다.
나와 내 지인들은 1년에 한 번 있는 여름휴가를 눈이 빠져라 기다리는 사람들이었다. 여름이 되면, 회사 사람들 사이에 주고받는 인사가, "휴가 다녀오셨어요?"와 함께, 어디를 다녀왔는지 혹은 어디로 갈 것인지를 묻는 거였다.
그다지 친하지 않은 사이에 어색한 침묵 대신 던지는 질문이기도 했지만, 그만큼 휴가와 여행은 대다수 직장인들의 관심사였던 것이다.
옷차림이 긴팔에서 반팔로 바뀌는 때가 되면, 난 휴가 계획을 짜면서 설레어했고, 1~2달을 준비하여 떠난 여행지에선 마냥 행복했으며, 그곳을 떠나는 마지막 날 밤이 되면 "돌아가기 싫다"라고 징징거렸다. 내가 그랬기에 세상에 여행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는 줄 알았다. 그런데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 여행이 싫다고 했다.
우리 부부의 신혼여행지는 이탈리아였다. 결혼 준비를 혼자 감당하느라 바빴지만, 신혼여행도 나 홀로 계획을 짜야했다. 패키지여행은 우리에게 맞지 않을 것 같았고, 난 밀라노에서 공부한 적이 있어 이탈리아에 대한 약간의 정보와 경험이 있었다.
'좋았어, 내 이참에 여행이 얼마나 큰 즐거움인지 맛 보여 주겠어!'
신선한 재료를 도마 위에 얹은 셰프의 심정으로 칼을 갈았다. 국제전화까지 걸어가며 숙소와 볼거리를 예약하는 등 완벽한 여행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떨리는 마음으로 신랑 앞에 차려놓은 이탈리아 여행은 그의 구미를 당기지 못했다.
로마의 문화유산과 역사, 입 벌어지는 밀라노의 대성당과 명품거리, 중세 시대 회벽과 건축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아시시. 무엇 하나 그의 흥미를 확 끌진 못했다. 이태리 음식 역시 그의 입엔 맞지 않아, 남편은 식사시간이 되면 맥도널드를 찾아 들어갔다. 난 여행 내내 옆사람 표정을 살피느라 앞을 보고 즐길 여유가 없었다.
한마디로, 우리의 신혼여행은 영~~~ 별로였다.
결혼 후 몇 번인가 여행을 시도했지만, 둘 다 기분이 안 좋아져 돌아오는 경우가 잦았다.
그 후, 내가 몇 년간 심하게 아팠고, 그는 아버님과 같이 일을 하게 되었다. 아버님 일을 하는 동안, 남편에겐 1년에 단 하루의 휴가가 주어졌는데,
당일 아침에 알 수 있었다. 사장님(아버님)께서 아침에 전화로 "오늘 쉬어라." 하면 그날이 그 해의 여름휴가였다. 여행은 꿈도 못 꿀 일이었다.
지금의 여행 프로젝트를 준비하면서 남편이 여행 내내 즐기지 못하고 불편해할까 봐 걱정이 되었다. 낯선 곳에 우리 두 사람뿐이라 서로의 감정은 더 쉽게 전염될 텐데. 오랫동안 꿈꿔 온 나의 버킷리스트를 행하는 동안 이번에도 남편 눈치만 살피며 전전긍긍해할 순 없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 남편에게 진지하게 물었다.
"여보, 난 이 여행 꼭 가야겠거든. 그런데 당신이 나가서 너무 힘들어할까 봐 걱정이야. 내키지 않으면 안 가도 돼. 대신... 나만 보내줄래? 2년 뒤에 꼭 돌아올게. 헤헤."
그는 눈을 한번 흘기더니 순순히 따라나섰다.
여행을 시작하고 6개월 동안 우린 무지하게 싸웠다. 그동안 내가 알고 사랑하던 남자가 맞나 싶을 정도로 남편이 날을 세웠던 때이기도 했다. 지금 와서 당시의 일들을 이야기해 보면, 남편을 예민하게 만든 것 중엔 자격지심이 있었던 것 같다.
여행지 숙소의 공동 공간에서 다른 사람들과 마주치면, 사람들이 본인을 보며 '젊은 남자가 일 안 하고 여기서 뭐 하냐.' 하는 눈빛을 보내는 것 같았다고 한다.
또 여행을 하는 동안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찾아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어 그 시간을 온전히 즐길 수가 없었단다. 여행을 끝내고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 뭘 해서 먹고 사느냐에 대한 고민은 사실 나보다, 가장인 남편에게 훨씬 더 무거웠을 것이다.
(위의 고민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이야기가 길어지니, 다음에 풀겠습니다.)
여행 20개월 차, 남편의 얼굴이 편안해 보인다. 우리는 다시 부부이자 절친이며 부녀관계이자 모자관계로 돌아왔다.
브리즈번 숙소 테라스에서 아침 먹는 시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남편이 차린 건강한 음식을 천천히 씹으며, 앞 집의 자카란다 꽃이 지는 것을 아쉬워하다 옆집의 프랜지파니(Frangipani) 꽃이 얼마나 더 피었는가에 대해 대화를 한다. 시시하고 소소한 이야기들로 깔깔, 낄낄대다 남편은 우리의 여행이 끝나가는 게 아쉽다는 마음을 털어놓았다.
"조금 더 하면 안 되나?"
그의 변화에 조금 놀랐지만, 놀란 티를 내면 그가 민망해질까 봐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why not~? 우리 삶이 시간제한 있는 시험에서 촉박하게 답안지를 적어 내는 게 아니잖아. 우리가 행복한 만큼 하자."
다행이다. 지금 나만 좋은 게 아니라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드디어 남편도 즐기게 되었나 보다.
해 질 시간이 다가오면, "우리, 페리 타고 강에서 노을 보자." 목적지도 없이 괜히 배에 오른다. 지난 글에서 소개했듯이, 이곳의 모든 교통비는 단돈 50 센트라 우리는 이 혜택을 톡톡히 누리고 있다. 강바람을 맞으며 일몰을 감상하다 남편의 옆모습을 보게 되었다. 남반구의 초승달 모양으로 입이 벌어진 채, "우와~" 감탄을 뱉는 그의 눈동자가 촉촉하고 따뜻하다. 여전히 소년 같은 미소를 지녔지만, 어느새 눈가의 주름이 깊어졌고 머리는 군데군데 희끗거린다.
'결혼식 때 맹세했듯이, 우린 이렇게 같은 곳을 바라보며 함께 나이 들어가는구나.'
남편의 주름살과 새치마저 아름답게 느껴졌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남편이 활짝 웃는다.
나도 그를 따라 웃는다.
됐다. 그러면 된 거다.
강 너머 지는 해를 바라보다, 남편이 툭 뱉듯이 말했다.
"고맙다. 날 데리고 나와 줘서. 이렇게 다 준비해 줘서."
신혼여행 때 듣고 싶었던 말을 이제야 듣는다. 14년 하고도 4개월이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