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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한 달 살기 좋은 도시, 브리즈번

브리즈번 3주 살기

by 윤슬

시드니를 떠나 브리즈번에 도착하였다. 비행기로 1시간 반의 거리가 훅 더워진 공기와 확 달라진 풍경으로 와닿았다.

시드니에서는 관광객으로 지냈지만, 브리즈번에서는 일상으로 돌아와 우리의 속도대로 살기 시작했다. 총 20일을 머무르며, 천천히 그리고 조금씩 이곳에 스며들었다. 점차 생활에 익숙해지자 브리즈번이 의외로 한 달 살기 괜찮은 도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이곳의 두 번째 숙소는 지금까지의 에어비앤비 경험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곳이었다. 집이 만족스러우니 여행 만족도도 따라 높아졌고, 도시에 대한 인상까지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왜 브리즈번이 한 달 살기에 좋았는지, 우리 부부가 느낀 점들을 소개해본다.


브리즈번에도 다이소가 있다

국내 한달살이 중 이동 첫날은 늘 '다이소 쇼핑 데이'였다. 숙소를 둘러보며 필요한 물건들을 메모한 뒤, 다이소에 가서 물건을 사 오는 것이 우리의 첫 일정이었다. 숙소 계약기간이 끝나면 다음 게스트를 위해 구매한 물건을 남겨 두고 떠났다. 부담 없이 사서 막 쓰다가 미련 없이 두고 떠나기에 다이소 물건 만한 것이 없었다.


브리즈번의 첫 숙소는 빌라 건물의 2층이었다. 넓은 테라스와 큰 거실, 채광 좋은 부엌이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남편은 외부 신발을 신고 집 안을 다니는 게 영 불편한 기색이었다. 하긴, 우리의 위생과 편의를 위해 실내용 슬리퍼가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

"설마, 여긴 다이소가 없겠지? 큭큭."

농담을 하며 장난스럽게 인터넷창에 '브리즈번 다이소'라고 쳤는데, 세상에, 있다, 브리즈번에도 다이소가 있다! 시내(Brisbane city)에 한국 다이소는 아니지만 다이소 재팬이 있었다.


곧장 시티행 버스를 탔다. 슬리퍼와 물티슈 등 세 가지를 사고 총 9.9 AUD을 지불했다. 우리 돈으로 약 9,000원 대였다. 물가 비싼 호주에서 만난 다이소가 사막 가운데 오아시스와 같이 느껴졌다. 만만한 다이소가 있다는 사실이 마음을 든든하게 했다.


교통비 부담이 없는 도시

현재 브리즈번의 대중교통 1회 이용 요금은 0.5 AUD(한화 470~480원 정도)이다. 버스, 기차, 심지어 페리까지 모두 동일 요금이다. 더욱이 브리즈번의 교통카드인 Go card나 한국에서 가져온 컨택리스 카드(토스뱅크카드나 트래블월넷 카드 등)로 대중교통 이용 시, 1시간 이내 최대 3회까지 환승도 가능했다. 2025년도에 교통비가 500원도 안 되다니, 놀랍고 반가웠다. 한국 버스비가 500원이던 게 언제였나 찾아보니 27년 전인 1998년도였다.


우리는 교통비의 혜택을 톡톡히 누렸다. 기차를 타고 도시의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가보기도 하였고, 해질 무렵엔 강을 따라 페리를 타며 노을과 야경을 구경하였다. 장을 보거나 운동을 하러 매일 시내에 나갔지만 교통비 걱정을 할 필요는 없었다. 브리즈번에서 20일간의 교통비가 시드니의 4박 5일보다 덜 들었던 것 같다.


운동 자극받는 브리즈번

브리즈번 시티의 고층 건물을 지나 남쪽으로 걷다 보면, '갑자기 이런 녹지가?' 싶을 정도로 넓은 부지의 보태닉 가든(Botanic Garden)이 나온다. 이곳은 열대 우림이 울창한 공원으로, 단순히 도심 속 녹지 공간을 넘어 주민들의 문화생활과 건강을 증진시키는 자연 공간 같았다.

보태닉 가든에 가면 맑은 공기 속에서 꽃과 나무를 구경하는 재미도 있었지만, 가장 좋은 것은 그곳에서 운동하는 사람들이 주는 자극이었다. 땅을 박차고 뛰는 그들의 힘찬 발걸음이 내 안에 있던 아주 작은 러닝 불씨를 부채질해 주었다.


내가 브리즈번에서 가장 좋아했던 러닝 코스는, 보태닉가든에서 시작해 사우스뱅크(South Bank)로 이어지는 강변길이었다. 열대우림을 지나며 흘린 땀을 다리를 건너며 강변 바람으로 식힐 수 있어 뛰기 딱 좋았다.


호주의 마트 물가는 생각보다 합리적이다

호주의 외식 물가는 비싸다.

지난여름을 지냈던 쿠알라룸푸르에서 외식 비용의 기준은 20링깃이었다. 1인분 음식값이 20 이하면 저렴한 거고, 20~25는 일반적이고, 30을 넘으면 비싼 거였다. 호주에서도 1인 20 AUD가 외식비의 판단 기준이 된다. 물론 말레이시아와 호주의 외식비는 숫자만 같을 뿐 통화는 다르다. 현재 1링깃은 300원 중반이고 1 AUD는 900원 중반인 것을 감안하면, 호주의 외식비는 쿠알라룸푸르 대비 약 3배 비싸고, 한국 대비 2배 가까이 비싸다.


하지만 마트에서 장을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공장에서 나오는 제품은 대게 한국보다 비싸지만, 고기, 빵, 일부 야채와 과일 등은 오히려 저렴하다. 그래서 마트에서 장을 보면 서울에서 장을 볼 때와 비용면에서 큰 차이가 없다. 우리는 소고기나 사과 등 한국에서 비싸서 잘 사지 못한 것들을 자주 사고, 반대로 한국에선 저렴했지만 여기서 비싼 것은 덜 산다. 호주에 오기 전, 비싼 물가에 대한 각오를 단단히 했었는데, 외식을 줄였더니 식비는 생각보다 덜 나왔다.

진짜 한국음식 한식당과 햇반을 파는 한인마트

처음 브리즈번 시티에 갔을 때, 한국인을 포함하여 아시아인이 매우 많아 놀라웠다. 덕분에 이곳엔 한인마트와 한식당이 꽤 많다. 외국 여행 중 한국 음식이 그리워 한식당에 가면 한국에서 먹던 맛과는 다른, 한식을 흉내 낸 현지화된 음식이 많았는데 브리즈번에선 그렇지 않았다. 한국에서 먹던 맛과 거의 흡사했다. 이곳에선 오래 지내더라도 한국음식 염려는 안 해도 될 것 같았다.

한인마트 몇 군데를 가본 뒤, 우리는 시티의 K-Fresh mart에 자주 갔다. 규모가 큰 편이라 그만큼 물건 종류가 다양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기선 햇반을 판다. 지난 베트남과 쿠알라룸푸르 여행 당시 햇반을 사려고 편의점과 한인마트를 돌아다녀 봤지만 통 구할 수가 없어, 이번엔 미니 밥솥까지 사서 나왔다. 그런데 브리즈번 한인마트에선 햇반을 팔고 있으니 여행자나 학생들에게 유용할 것 같다.


솔직히 우리 부부의 브리즈번에 대한 첫인상은 그리 좋지 않았다. 날씨는 덥고, 시드니보다 규모는 작은데 복잡한 느낌이었다. 게다가 이곳에서 처음 만난 현지인인 첫 숙소의 하우스키퍼는 밝고 친절한 사람은 아니었다. 나는 남편에게 "시드니에서 한 달 있을 걸 그랬다." 며 아쉬움을 드러냈었다.


하지만 지내면 지낼수록 우린 브리즈번만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남편은, 다음에 다시 호주에 기회가 있다면 본인은 브리즈번으로 올 거라고 할 만큼 좋아하게 되었다. 호주 한달살이를 염두에 두고 있다면 브리즈번을 추천하고 싶다. 브리즈번은 강변을 따라 러닝 하는 매력이 있고, 매일 페리를 타도 부담이 없으며, 시드니 대비 생활비를 덜 들이며 도시와 자연을 동시에 누릴 수 있는 도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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