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인 추천은 무조건 믿고 따르라
시드니를 떠나기 하루 전 날이었다. 숙소 호스트께서 오늘은 어디를 다녀올 것이냐 물었다. 내가 아는 정보 내에선 시드니에서 꼭 가볼 곳에 '본다이 비치'가 있었다. 인터넷 창에 이곳을 쳐보면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비치 중 하나이자 호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이라는 설명이 나왔다. 그래서 준비된 관광객답게 자신 있게 대답했다.
"본다이 비치에 가려해요."
호스트는 "흐음-"소리와 함께 손가락으로 코끝을 문지르셨다. 기대했던 반응이 아니었다. "거기 좋으니 꼭 가봐라."랄지 그곳의 볼거리나 먹거리를 추천해 주실 줄 알았는데, 호스트는 "왜 다들 본다이 비치를 가려하는지 몰라." 하셨다. 집에서 20분 거리에 (본인 생각엔) 본다이보다 더 좋은 곳이 있다고 제안해 주셨다. 그곳은 Cronulla esplanade(크로눌라 산책길)와 Bundeena beach(분디나 해변)였다.
여행을 하며 깨달은 것이 있는데, '정보가 결코 경험을 이길 수 없다'였다. 그동안 여행지에서 현지인의 말에 따랐을 때 만족도가 상당히 높았기에 우린 이번에도 호스트 제안에 따라 일정을 변경하기로 하였다.
시드니의 기차 T4의 마지막 역인 Cronulla역은 숙소가 있는 Caringbha역에서 단 2 정거장 거리였다. 역에 도착하여 5분 정도 걸었으려나, 탁 트인 시야로 공원과 바다가 시원하게 들어왔다. 주로 가족단위 방문객들로 보이는 이들이 바다에서 수영을 하거나 공원 잔디에 돗자리를 펴고 피크닉을 즐기고 있었다. 해변길을 따라 달리는 몸짱 남녀들과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주민들, 아기를 안고 까르륵 웃는 젊은 부부의 모습이 정겨웠다. 보기만 해도 힐링되는 곳이었다. 따사로운 햇살에 시원한 바닷바람이 합쳐져 그 시간과 공간이 더욱 평화롭게 느껴졌다.
언덕으로 이어지는 산책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시야가 높아질수록 더 멀리까지 보이는 바다에 탄성을 지르며 천천히 걸었다. 길 한 면에는 바다를 내려다보며 지은 예쁘고 고급진 집들이 이어졌다. 딱 봐도 부촌이구나 싶은 동네였다.
"여보, 우리도 여기 집 한 채 확 사버릴까?"
"응, 그래버려. 진행시켜~"
남편과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계속 걸었다.(나중에 이곳의 집값을 듣고는 허허 웃음만 나왔답니다.)
걷다 보니 다시 공원이 시작되고 바다를 막아 만든 천연수영장이 나왔다. 요금은 당연히 무료, 누구나 이용 가능한 풀이었다. 공원에는 그릴과 테이블 벤치가 몇 개 있었는데 이미 10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 식사 중이었다. 아빠들은 그릴에서 고기를 굽고 아이들은 달려와 엄마가 접시에 담아놓은 음식을 먹고는 다시 각자의 놀이 공간으로 내달렸다. 조금 큰 아이들은 천연 수영장으로, 작은 아이들은 벤치에서 가까운 놀이터로 달려갔다.
여행 중 처음으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친구 아버님께서 호주 여행을 왔다가 진지하게 이민을 고민하셨다고 들었는데, 그때 아버님께서 어떤 마음으로 그런 생각을 하셨는지 알 것 같았다.
해 질 시간이 되어 서쪽바다를 볼 수 있는 부둣가로 내려갔다. 황금빛 윤슬이 눈부신 바다에서 한 무리의 소년들이 줄 지어 수영을 하고, 청년들은 장난을 치며 놀고 있었다. 오렌지빛 필터가 입혀져 눈앞의 모든 것이 따뜻하고 아름다웠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시드니에서의 시간을 하루만 더 잡을 걸 후회가 되었다. 만약 이곳에서 하루가 더 주어진다면 난 무엇을 할까? 한번 더 Cronulla 해변에 올 것 같다.
러닝화를 신고 몸짱 남녀에 섞여 산책길을 뛰는 거다. 잘 못 뛰면 어떻고 나 홀로 몸꽝이면 어떠한가, 내 페이스를 유지하며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는 게 중요하지.
기분 좋게 땀이 흐를 때 즈음 바다 수영장에 도착하겠지? 실컷 물놀이를 즐기다 배가 고파지면 슈퍼에서 고기를 사 올 것이다. 공원 그릴에 고기를 구워 식사를 하고, 끝내주는 노을을 감상하는 거다. 부른 배만큼이나 충만한 마음을 안고서, 완벽했던 하루에 대한 감상을 남편과 나누며 집으로 돌아오고 싶어졌다.
숙소로 돌아와 호스트께 좋은 곳을 알려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며, 오늘 너무 행복했다는 말과 함께 엄지 척을 해드렸다. 호스트 부부와 마지막으로 짧은 대화를 나누고, 서로의 안녕을 빌어주다 good bye라는 말대신 포옹을 주고받았다. 아주머니께선 얼리 체크인을 허락하지 않아 미안하다 거듭 사과를 하시고, 내일 체크아웃은 원하는 시간 언제든 괜찮다고 하셨다. 5성급 호텔보다 더 좋은 숙소에서 합리적인 가격으로 지낸 것만으로 감사한데 끝까지 이어지는 그들의 배려에 감사했다.
처음은 힘들었지만 그 끝은 행복했던 도시, 시드니에서의 4박 5일이 그렇게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