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서의 30일, 잘 사는 나라는 뭐가 다른가

by 윤슬

호주를 여행지로 정하며 나는 조금 부끄러운 기대를 품었다.
‘잘 사는 나라는 얼마나 다른가, 한번 보자.’


그래서였을까. 막상 도착했을 때는, 생각보다 별다를 것이 없어 약간 실망하였다. 공항에서 숙소로 가는 길, 창밖 풍경은 지난여름 두 달을 지냈던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리, 비싸게 주고 다시 말레이시아 온 것 같은데?”

남편의 농담에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는 몰랐다. '잘 사는 나라'는 풍경이 아니라 사람으로 완성된다는 사실을.


호주에서 정확히 30일을 지냈다. 짧은 경험으로, 호주라는 국가와 내가 머물렀던 세 도시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비교 분석하는 건 애초에 불가능하다. 다만 시드니, 브리즈번, 멜버른에서 스쳐갔던 느낌과 호주로 대신한 '진정 잘 사는 나라'에 대한 생각 정도는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세 도시의 느낌을 식당에 비유하기


드니가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이라면, 브리즈번은 캐주얼 레스토랑에 가깝고, 멜버른은 대대로 이어져 온 가문의 맛집 같았다.

시드니는 호주 최대의 도시답게 잘 정돈되어 있고 고급스러웠다. 다른 두 도시에 비해 백인의 비중이 높았고, 물가는 가장 비쌌다. 브리즈번은 더 국제적이고, 젊고 활기찼다. 다만 시내는 어수선한데, 조금만 벗어나도 인적이 드물어 밤 외출이 조심스러웠다. 멜버른은 차분하고 고풍스러웠지만, 그 이면에는 올드하고 침울한 공기도 함께 느껴졌다(날씨 탓일지도).


남편은 세 곳 중 브리즈번을 가장 좋아했고, 나는 시드니가 좋았다. 만약 '다음'이라는 기회를 만들게 된다면, 우리는 짧은 여행은 시드니로, 길게 머물 곳은 브리즈번을 고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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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미국과 유럽의 믹스 앤 매치


세 도시에서 모두 미국과 유럽이 섞여 있는 인상을 받았다. 다만 도시마다 미국과 유럽의 비율이 달라져 재미있었다. 브리즈번은 미국 색이 가장 강했고, 멜버른은 유럽의 향이 진했다.

세 곳 모두 베이지 컬러의 유럽스타일 건축물과 미국을 떠올리게 하는 높은 빌딩들이 공원, 강, 바다와 함께 어우러져 있었다. 제각각일 수 있는 것들이 조화를 이루며, '여기가 호주구나' 싶은 또 하나의 풍경과 스타일을 만들어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호주, 너도 그렇다


시간이 지날수록 난 호주가 좋아졌다.

그들의 언행과 태도에 감탄할 때도 있었고, 그를 통해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 더욱 고민하는 계기도 되었다. 내게 그런 느낌과 생각을 던져 준 일화 몇 개를 소개한다.


Episode1. 천천히, 안전하게 그리고 감사 인사

브리즈번에서는 버스가 정차하기 전, 미리 일어나 뒷문 쪽에 서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버스가 완전히 멈춘 뒤에야 승객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카드를 찍고 내렸다. 그리고 대부분이 기사님께 "Thank you"라고 인사를 건네고 버스에서 내렸다.


좋은 것은 바로 따라 해야 하지 않는가. 우리도 버스가 서고 나서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고, 버스에서 내릴 땐 한 손을 들어 "땡큐"를 외쳤다. 기사님은 짧게 경적을 툭 치며 답례해 주셨다. 별것 아닌 '뿍-' 소리에 기분이 좋아졌다.


Episode2. 몸에 밴 양보와 배려

브리즈번에서 페리를 타기 위해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마침 휠체어를 탄 여성분이 들어왔는데, 줄을 섰던 사람들이 약속이나 한 듯 둘로 갈라지며 휠체어 여성분께 길을 내주었다.

그러고 나서도 대형을 유지하여 의아하게 여겼는데, 휠체어 다음으로는 유모차를 밀고 온 여성분이 탈 수 있도록 양보하던 거였다. 휠체어 여성분 가장 먼저, 유모차 아기와 엄마가 다음, 그 후에야 줄을 섰던 사람들이 차례로 승선하였다.

호주 여행 중 목격한 현실판 모세의 기적이었다.


Episode3. 개인주의와 다정함의 공존

개인주의 성향이 강해서일까, 호주인들은 놀랍도록 타인에게 관심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무관심이 차갑거나 무례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눈이 마주치면 먼저 눈인사를 건네주고, 말을 걸면 대부분 친절하게 답변해 주셨다.


특히 기억에 남는 일은 시드니의 한 카페에서다. 카페의 20대 직원분은 "yes" 혹은 "OK"라는 대답대신 "perfect" 나 "beautiful"을 자주 썼다. 카페에서 손님과 직원이 주고받는 몇 안 되는 문장 속에 "Beautiful!"이 몇 번이나 등장하던지. 기억에 오랫동안 남을 아름다운 대화였다.


그곳에선 개인주의와 다정함이 손잡고 같이 가는 듯했다.


2025년의 선진국


어릴 적 책에서 배웠던 선진국은, 높은 건물과 도로 빽빽한 자동차로 상징되었다. 대비된 두 장의 사진으로 선진국과 후진국을 배웠던 아이는 성인이 되어서까지 그때의 편견이 남아 있었다.


기술과 경제 수준이 어느 정도 올라선 지금, 각 국 도시의 외형이 점점 비슷해지고 있다. 더 이상 사진으로 선진국을 가려낼 순 없게 되었다. 그렇다면 차이는 어디에서 생기는 걸까.

긴 시간 여행을 하며, 나는다름을 마음의 여유에서 발견했다.


서두르지 않는 행동, 사과와 감사 인사, 약자를 배려하는 태도, 손님과 직원 간 서로 존중하는 말투. 사소하게 보이지만 이런 것들이야말로 마음에 여유가 없으면 결코 나올 수 없는 것들이다.


물질적 결핍이 있거나 심적으로 쫓기는 상황에서 마음의 여유를 가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니 순서상은 빌딩 세우기 먼저, 마음 올리기는 그다음이 맞지 싶다. 다만, 경제 성장을 이루기 위해 갈아 넣었던 에너지만큼 내면을 채우는 일에도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2025년 10월은, 선진국을 대변하는 모습이 더 이상 마천루가 아니라는 생각을 자주 했던 한 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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