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40대 경단녀의 비애

by 윤슬

"우리랑 같이 일해 보시죠" 오퍼가 들어왔을 땐 고민되더니, 기회를 날린 순간부터 일하고 싶어졌다. 나란 사람 참 모순되고 희한하다.


일하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10+n 년 만에 구인 광고를 서치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내 스펙이 무지하게 애매한 거다.

성별 : 여성 / 나이 : 40대

경력 : 대기업+공기업 18~19년 / 기술 : 없음

특이사항 : 체력 약함(+종합병원 3개 과 정기 진료 다녀야 함)


퇴사 시에도 몰랐던 것은 아니었다.

어딘가 새로 들어가기엔 나이와 경력이 많고, 경력직으로 가기엔 전문 분야가 약하다.

공공부문 관리직으로 가자니 9 to 6 풀 근무가 건강 문제로 망설여졌다.

아무래도 정규직으로 일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

'재취업 쉽지 않겠구먼~' 체념하기도 했었다.


구인 광고를 보다 ‘경력 나이 무관, 주부 사원 환영’이라는 단기직에 지원하였다. 첫날 교육을 받고 돌아오던 길, 여러 이유로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남편과 사촌언니가 나의 이야기를 듣더니 본인들이 더 펄쩍 뛰며 뜯어말려 하루 만에 그만두었다.

집 근처 사무실의 엑셀 아르바이트 구인 광고를 보고 연락드리니, 이력서 지참하고 면접을 보자 하셨다. 그런데 면접 중 면전에서 거절당했다.

이유인즉, 본인은 편하게 일 시켜 먹을 사람이 필요한데 내 학벌이나 경력 등이 부담스럽다 했다.


붙어도 다녀야 할까 싶을 만큼 지저분한 건물을 내려오다 복도 거울 속 나와 눈이 마주쳤다. 여기 면접 보겠다고 아끼는 캐시미어 코트를 입고, 미용실까지 들렀다 온 내가 우스워 실소가 터졌다. 거울 속 배경으로 잡히는 낡은 회색빛 시멘트벽이 나를 누르는 듯 숨이 막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버스정류장 의자에 앉아 타야 할 버스를 몇 대나 그냥 보냈다.

'이력서 위조를 하지 않으면 난 시간당 만 원짜리 아르바이트조차 못 하는구나.'

발가락이 꽁꽁 어는 줄도 모르고 그렇게 계속 앉아있었다. 세상에서 제일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에 잠식당한 채.


번쩍거렸던 40여 층 건물의 대기업 본사에서 신입사원 교육을 받던 24살의 나, 공기업 광고주로 일하며 대행사 분들의 과잉친절에 어리둥절해하던 28살의 나, 그리고 지금 이곳의 나. 뭔 사람 인생이 이렇게까지 수직낙하 한단 말이냐.


‘이 망할 놈의 백혈병, 왜 나야? 왜 하필 나였어?’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버스정류장의 슬픈 여성.jpg


40대의 암 환자 경단녀는 대체 뭘 하고 살 수 있을까?

말기 암이라는 구덩이에서 팔꿈치 무릎 다 깨지고 흙 뒤집어써가며 죽을힘을 다해 기어 나왔더니 또다시 살 궁리를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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