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2년간은 오로지 몸의 회복만을 생각하며 지냈다.
마음 맞는 언니들과 어울려 산으로, 숲으로, 공원으로 쏘다녔다.
좋은 것을 먹고, 좋은 생각을 하고, 운동을 습관화하며 더 건강해질 나를 꿈꾸었다.
계절의 변화를 하루도 놓치지 않으며 사는 삶은 여유롭고 새로웠다. 특히 세상의 색깔이 매일 변해가는 봄과 가을이 너무 좋아 집 뒤의 산을 오르며 관찰 일기를 쓰듯이 자연의 변화를 감상했다. 문득, ‘아, 이게 사는 거구나.’ 생각이 들기도 했다.
‘살다’라는 동사의 뜻과 ‘삶’이라는 명사가 내포한 주체성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삶은 사는 거지 버티거나 대충 때우는 게 아니다. 참고 견디는 목적어로 그것을 다루었던 과거의 내가 후회되고 그럴 수밖에 없었던 내가 짠해지기도 했다.
특이한 일이 생겼다.
한 협회에서 연락이 와 그곳의 꽤 높은 자리를 맡아달라는 제안이 들어왔다. 내가 이력서를 낸 것도 아닌데 우연이 겹쳐 생긴 제안이었다. 신이 나를 이렇게 이끄시는 것인가? 그러나 당시 눈의 통증으로 일을 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제안을 정중히 거절했다. 전화를 주셨던 협회 총장은 나와 일을 해본 적은 커녕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사이인데 “제가 2년은 기다릴게요. 몸이 회복되면 꼭 연락 주세요.” 하셨다.
조혈모세포이식 후에는 새로 들어온 공여자 피의 면역세포가 수용자 몸의 장기를 공격하는 숙주 반응이 올 수 있다. 내게도 이식 후 갖가지 숙주 반응들이 왔는데 그중 가장 오랫동안 괴롭혔던 것이 안구 숙주였다. 눈병에 걸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알 것이다. 눈의 통증이 꽤 고통스럽고, 고통이 길어지면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눈을 한번 깜빡 감았다 뜰 때 일반적으로 약 15초 정도 눈물이 머무른다는데, 내 경우는 2초에 지나지 않았다. 아무리 울어도 눈물은 나오지 않고 애꿎게 콧물만 나올 뿐이었다. 심한 안구 건조로 하루에 30개의 눈물약을 넣어야 했다.
눈물이 거의 생성되지 않는 눈에는 염증도 쉽게 생겼다. 결막염으로 눈이 가려웠고, 각막염으로 선글라스가 없으면 눈을 뜰 수가 없었다.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안구건조증이 만성으로 넘어가며 찾아온 눈의 통증이었다. 약 7년간 단 하루도, 아니 깨어있는 시간 중 단 한순간도 통증이 없는 시간이 없었다. 특히 TV나 컴퓨터를 보고 나면 눈알이 종이에 베인 듯이 쓰라리고 아파 양손으로 눈을 붙잡고 뒹굴어야했다.
퇴사 후 2년쯤 되었던 어느 아침이었다. 날이 추워져 이불속에서 게으름을 부리며 하품을 하는데 눈물 한 방울이 또르르 눈 옆을 지나 귀 뒤로 굴러 떨어졌다. 7년 만에 만난 눈물.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감격스러웠다. 눈물 셀카는 이럴 때 찍는 거구나 셀카를 찍어 그날을 기념했다.
눈이 나아가니 다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협회에 연락드릴 때구나!
그 해의 여름에도 협회에서 연락이 왔더랬다. 몸의 회복은 어떤지, 일할 수 있는지를 물어보셨다. 당시만 해도 안구통증이 심했기에 죄송스럽게도 “아직 어렵습니다.”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일할 수 있는 여건이 된 것에 감사하며 기쁜 마음으로 연락을 드렸는데, 총장님으로부터 얼마 전 그 자리에 누군가를 채용 했다는 대답을 들었다. 맥이 탁 풀렸다. 물론 그를 탓할 일은 아니다. 협회에서는 계속 거절하는 나를 언제까지고 기다려줄 수는 없었을 테다. 약속한 2년은 아니었지만 1년 넘게 기다려주셨던 것만도 감사할 따름이다. 그저 나와 그곳은 연이 아니었을 뿐이다.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온 이후로 내 마음은 힘들어졌다.
일을 찾는 게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력을 살려 유사 업무를 하자니 주 40시간 정상 근무를 할 체력이 안되고, 단기 아르바이트나 계약직을 하자니 나이 등 여러 이유로 사회가 나를 원하지 않았다. 일하는 모든 사람이 부러웠고,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는 내가 한심스러웠다.
사람이 이렇게 모순덩어리다. 그전에도 나는 충분히 삶을 누리며 행복했는데, 7년간 그토록 바랬던 일이 이루어졌는데 오히려 불행해지다니 이 무슨 일인지. 눈의 회복에 좋아 방방 뛰고 엎드려 감사기도를 드려도 모자랄 판인데, 오히려 우울한 스스로가 이해될 듯 이해되지 않았다.
욕심이란 게 이런 거다.
채워진 바구니보다는 비어있는 바구니에 눈이 가고 그 결핍에 마음이 쓰이는 것.
그나저나 앞으로 난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이 깊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