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에서 집 한 채 가진 우리 부부도 파이어족이 가능한지 알아보았다. 삶을 소박하게 꾸려간다면 불가능하지 않다는 결과에 조만간 남편에게 퇴사를 권할지 모르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예측에 용기를 더하니 결심이 서 남편에게 퇴사를 제안하였다.
남편은 평상시 나의 말을 존중해 주는 편이나 워낙 우리가 다른 성격을 가져서 그런지(INFP와 ESTJ가 함께 삽니다) 반대 의견을 내세울 때가 다반사이다. 때로는 일부러 저러나 싶을 정도로 매번 나와 반대되는 의견을 피력하여 놀라울 정도다.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은 피곤하나 부부 사이 꼭 필요한 과정이라 생각한다. 그 시간을 통해 서로를 더 잘 이해하게 되며, 더 나아가 세상에 대한 시선을 넓히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번 나의 퇴사 권유에는 망설임이나 반박 하나 없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건 아내 말을 그렇게 말을 잘 듣는다.^^
남편은 아버님 사업을 돕고 있었는데, 아버님을 대신하여 몸을 쓰는 일이 많아 시간이 지날수록 몸이 망가지는 게 눈에 보였다. 모른 척하면 아버님이 일을 그만두지 않는 한 그도 계속 일을 할 테다. 덕분에 생활비 걱정은 없겠지만 짝꿍의 건강이 염려되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사람이 먼저다.
남편이 아깝기도 했다. 과다 사랑과 초과다 걱정의 시어머니 영향으로 20대 시절, 어학연수나 배낭여행 등 집 밖을 떠나 다른 세상을 경험할 기회가 없었다. 자취를 해본 적 없이 결혼하였고, 대학을 졸업하고 방황 시기를 거친 후 아버님 밑에서 일을 시작하여 이력서 한 번 써본 적이 없다. 40여 년을 가족이라는 온실 속에서 살고 있었다.
객관적으로 봐도 남편은 머리가 비상하고, 뭐든 빨리 배우고 잘 해내는 편이다. 다만 노력형이 아니고, 쉽게 익힌 만큼 쉽게 질려했다. 그의 능력을 키워주고 단점을 보완해 주면 두 날개 쫙 펴고 비상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작은 우리 안에서 본인의 재능을 다 죽이고 살아가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특히 마흔이 넘도록 자기가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는 말에 난 적잖게 충격을 받기도 했다.
더 늦기 전에 남편이 스스로를 찾아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인생 후반전에는 각자가 좋아서 선택한 일을 하며 함께 멋지게 나이 들고 싶었다. 그러기에 남편의 경험이 너무 얕았다. 남편은 나와 연애 시절부터 결혼생활 내내, ‘태어나서 처음’이라고 하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많았다. 꽤 독립적으로 키워진 나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고기도 먹어본 자가 맛을 알듯이, 해봐야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잘하는지 못 하는지 알 수 있다. 경험과 새로운 도전을 위해 여행만큼 빠른 길은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국내에 ‘한달살기’ 열풍이 불기 훨씬 전, 그런 단어조차 없을 때부터 장기 여행을 꿈꾸던 사람이었다. 살 듯이 여행하듯이 사는 삶을 늘 동경해 왔다. 언제든 훌훌 날아가고 싶었지만 20~30대에는 직장, 결혼, 건강 문제로 현실에 발을 붙이고 살아야만 했다. 50대가 되면 우리 아버지, 시부모님께 노환이 올 수 있는 나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되면 또 입 닫고 이곳에 눌러앉아야만 한다. 부모님이 다 돌아가시고 나면, 그때는 우리가 긴 여행을 하기에 나이가 너무 많을지 모른다. 어쩌면 기회는 지금뿐이다.
위와 같은 이유로 나는 남편에게 퇴사와 더불어 천천히 하는 긴 여행을 함께 제안했다. 나와는 달리 여행하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남편이 펄쩍 뛸 줄 알았는데 이번에도 순순히 내 뜻에 따라 주었다. 시간을 가지고 두 사람이 머리와 마음을 맞대고 여행계획을 짜왔고, 드디어 여행의 시작을 계획한 2024년이 되었다.
2023년 12월 남편의 퇴사로 2024년 우리 부부는 어쩌다 파이어족이 되었다. 2024년 2월 말부터 우리의 긴 여행이 시작될 것이다. 우리의 다음 이야기는 새로운 브런치 매거진을 통해 찾아뵙고자 한다.
처음 해보는 브런치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고 시작한 ‘어쩌다 암 환자 어쩌다 파이어족’을 구독해 주시고 하트 도장 꾹 눌러주신 구독자 여러분께 깊은 감사인사를 드립니다.
이 글이 과거 저처럼 중병으로 고통받는 분들께는 희망이 되기를 바랍니다.
퇴사를 꿈꾸며 사는 직장인 분들께는 제 사례가 미리 보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누군가에게는 내가 소망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 잘 살겠습니다.
다음번에 새로운 글로 인사드릴게요. 그럼,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