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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May 23. 2024

정반대 성격의 부부가 24시간 붙어 여행하다 보면

남의 집 부부싸움 구경하실 분~?

 나와 남편은 MBTI 4가지 성격 유형이 모두 다르다. 남편은 INFP, 나는 ESTJ이다. 나와는 참으로 다른 성격을 가진 남자와 살면서, 그를 이해하기 어려울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 다름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고 어떤 면에서는 닮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하였다. ‘우와~ 어떻게 저런 생각을 다하지?’ ‘어멋, 저렇게 살아도 되는 거야?’ 나와 다를 뿐이지 틀린 게 아니므로 그의 생각을 존중했다. 남편 역시 나를 그렇게 대해주었다.  

   

 결혼 초기를 제외하면 우리는 좀처럼 잘 싸우지 않는 부부였다. 남편은 나를 먼저 배려했고, 세심하게 내 감정을 살펴주었다. 나 역시 그가 싫어하는 것들을 조심하고, 그의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고 행동하였다. 재미로 보는 MBTI 성격 궁합에서 INFP와 ESTJ 조합이 최악으로 나오는 것을 보고 “우린 잘 사는데?” 서로를 쳐다보며 깔깔 웃었다. 그 어렵다는 성격 차를 극복하고 사이좋게 지내는 우리가 자랑스럽고 대견했다.      


 우리의 삶이 24시간을 붙어 지내는 여행자로 바뀌며, 다름을 인식하는 빈도가 잦아진 만큼 그로 인한 피로도도 따라서 높아졌다. 하루에 몇 시간 대면하던 예전엔 대수롭지 않게 지나칠 만한 일도 함께하는 시간이 늘자 불편함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제주도 한달살이 첫 달, 그 한 달 안에 최근 몇 년 치 보다 더 많이, 더 자주 싸웠다. 당시에 그럴만한 외부 사정이 있기도 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우리의 성격이 드디어 제대로 부딪히기 시작했던 시기였던 같다.

     

Fight 1. P vs J _ 이사 이야기

     

 결혼 13년 차인 우리는 신혼집 이후로 총 7번의 이사를 하였다. 나는 이사 날짜가 잡히면 그날부터 계획을 짜는 스타일이다. 엑셀 시트를 열고 이사 준비 일정표부터 만든다. 실수와 애꿎은 비용, 불편함을 최소화하기 위해 미리 준비한다. 버릴 것과 팔 것 그리고 기부품으로 물건을 나누어, 팔 것을 중고 거래 앱에 올려 거래하고 기부품은 업체나 지인에게 전달하였다. 새로 살 가구나 가전을 인터넷에서 폭풍 검색 후, 발품 팔아 가구점에 방문하여 직접 확인하였다. 최종 결정 물건은 최저가 검색을 통해 구입처를 고르고, 배송기간을 고려하여 이사 당일이나 다음날까지 배송되도록 미리 주문하였다. 


 반면, 남편은 미룰 수 있는 만큼 미루다가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을 때가 되어서야 움직였다. 그의 이사 준비는, 가지고 가지 않을 짐을 한데 모아 커다란 쓰레기봉투에 쓸어 담는 작업이었다. 필요한 것은 그때 가서 가까운 쇼핑몰에서 사면되고, 새 가구 배송이 늦어서 생기는 불편함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불만을 제기할 때면 “정 불편하면 호텔에서 살다 오지 뭐.”라고 대답했다.     

 

 9년 전, 내가 질병을 앓고 난 후, 남편은 내가 체력을 쓰는 일을 할 때면 격하게 싫어하며 못 하게 말렸다. 그러니 이사 전에 사부작거리며 정리하고 싶어도 남편 눈치가 보여 그가 부재중일 때만 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남편이 내가 원하는 일정대로 움직여 줄 리는 만무했다. 다만 이사 전날과 당일 새벽이 되면 예민함 100을 미간에 찍은 채 미친 속도로 질주하는 그의 모습을 볼 뿐이었다. 막판 일 처리 속도가 어찌나 엄청난지 보고도 믿지 못할 정도였다.

     

 일상에서 이사는 2년에 한 번꼴이었지만, 한달살이는 1달에 한 번씩 이동해야 하고 그만큼 자주 우리는 서로의 다름을 느끼게 된다. 나는 이동 전날까지 대부분의 짐을 차에 실어두고, 이동 날엔 당일 입었던 옷가지와 세면도구만 챙겨서 여유롭게 아침을 먹고 감상을 나누다 떠나기 바랐다. 그는 이동하는 날 새벽에 일어나 우당탕 짐을 싸고, 아침 식사는 패스하고, 헐레벌떡 체크아웃하기 바빴다. 그의 속도에 맞추어 짐 싸기를 돕다가 차에 오르면 난 기진맥진하여 몸살이 날 것 같았다.


Fight 2. F vs T _ 축구 경기가 쏘아 올린 큰 싸움

      

 남편이 숙소 근처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리는 지역 축구 경기를 보러 가자고 제안하였고, 나는 대답 대신 “얼만데?”라고 물었다. 잠시 후 발권 결제 알림이 와서 휴대폰을 확인해 보니 2인 70,000원이 훌쩍 넘는 금액이 찍혀있었다. 사실 나는 2002 월드컵 이후 22년에 걸쳐 축구에 대한 관심이 시나브로 사라진 상태라, 35,000원이 넘는 비용을 들이며 경기를 볼 의향은 없었다. 

     

 그러나 남편이 가고 싶어 했기에 그의 바람마저 꺾고 싶지 않아 “여보, 그냥 혼자 다녀와라. 난 도서관 갔다 올게.”라고 말했다가 부부싸움이 났다. 남편은 여행을 와서 따로 시간을 가지자는 말이 서운했고, 그 시간을 즐기며 추억을 쌓고 싶었는데 그놈의 효율성, 가성비 벽에 자신의 제안이 막혀버린 게 속상했던 거다.     


 내 입장에서는 축구 관전으로 얻을 수 있는 나의 효용은 기껏해야 15,000원인데 그 2배가 넘는 비용을 내는 게 비합리적이라 느껴졌다. 나는 도서관에 가서 좋고, 남편은 축구를 봐서 즐겁고, 저녁때 다시 만나 내 표 값으로 맛있는 저녁을 사 먹으며 오늘의 경험을 신나게 나눈다면, ‘누이 좋고 매부 좋고’가 될 거라 생각했다. 내 딴에 남편을 배려해서 따로 시간을 가지자고 했던 건데 오히려 그의 마음을 상하게 만들었다.      


 화가 난 남편은 “당신은 돈을 좋아하니깐, 돈이 중요하니깐”이라 발언하였고, 그 말엔 내가 발끈했다. 돈 자체가 아닌 효용과 비용 측에서 사고하는 아내를 이해 못 하겠으니, 본인이 이해하기 쉽도록 나를 돈 밝히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 같아 기가 막혔다. 나는 돈 쓸 줄 몰라서 아끼느냐고, 나도 기분 따라 즉흥적으로 펑펑 쓰고 살았다면 지금 우리가 누리는 이런 삶이 가당키나 했겠냐고 반문하였다.      

(그다음은 필자나 독자의 심적 피로감을 고려하여 생략하겠습니다 :-) )


 당시 숙소는 방 하나에 부엌 하나가 딸린 1.5룸 형태였다. 독립된 공간에서 부부가 떨어져 있으며 차분해질 시간이 필요했는데 작은 집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난 운동을 다녀오겠다고 말하고 밖으로 나왔다. 해는 지고 날은 추워지는데 집에 들어가기 싫어 어둑해진 숙소 주변을 빙빙 돌았다. 바닷바람에 휘날리는 머리칼도 어지러웠지만 마음속에선 더 심란한 파도가 쳐댔다.

      

F와 T가 부딪힌 이 사건으로, 앞으로의 여행 방식을 고민할 계기가 되었다.

(길어서 여기까지만. 다음 회에 이어 쓰겠습니다.)

 

제주, 삼양해수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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