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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May 30. 2024

따로 또 같이, 13년 차 부부의 슬기로운 여행생활

부부가 안 싸우며 장기여행하는 법

 다음 달, 우리 부부는 13번째 결혼기념일을 맞이하게 된다.


 연애 기간을 합쳐 나와 그는 15년을 넘게 알고 지내온 사이다. 긴 시간을 함께 보내며 서로의 성격파악은 어느 정도 했고, 둘 다 성향상 상대방을 배려하고 부부 사이지만 선을 넘지 않으려고 조심했다. 또한 사투를 벌였던 나의 암투병 과정에서 우리 사이엔 전우애까지 두텁게 쌓여 있었다. 그랬던 우리라 24시간을 함께 지내는 일로 내전이 터질 거라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다.

 

 우리의 성격이 생각보다 깊고 크게 다르다는 것을 알 게 된 것은 여행을 떠나온 지 2주가 채 지나지 않아서였다.


제주 한달살기 첫 달은 싸우다 끝난 것 같다. 싸우고 화해하고 더 크게 다시 싸우는 연속. 어느새 둘은 서로의 눈을 쳐다보지 않은 채 꼭 필요한 말만 나누었다. 밖을 다닐 때면 오랜 습관으로 손은 잡고 다니지만, 정작 감정은 나누지 못하였다. 굳은 표정으로 말도 섞지 않으면서 손은 붙잡고 있는 이상한 부부였다.


 잦은 감정 소모에 지쳐가던 어느 날 남편이 내 앞에 서더니 “앞으로는 잘 지내보자.”며 손을 내밀었다. 서울보다 훨씬 따사로운 햇살에 한쪽 눈을 찡그린 채 바다를 바라보던 내 앞으로 훅 들어온 남편의 오른손이 반갑고 고마웠다.


 우리는 향후 여행 방식에 대해 긴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대화의 계기는 지난번 글에서 소개한 축구 경기 사건이 있었다.

(남의 집 부부싸움을 구경하고 싶으신 분은 아래를 클릭해 주세요)

정반대 성격의 부부가 24시간 붙어 여행하다 보면 (brunch.co.kr)

    

 우리 집에서 장기 계획 및 지침은 내가 정하고, 구체적 실행은 남편이 맡고 있다. 앞으로 우리 여행의 방식이자 가치관의 변화일 것 같아 내가 먼저 입을 뗐다.


 "우리는 단기 여행을 온 게 아니고 2년간 환경을 달리하여 삶을 사는 거잖아. 우리가 24시간을 마냥 붙어 다닌다면, 당신은 지금까지 늘 그래왔듯이 나 배려하고 내게 맞추다가 이 시간이 끝나고 말 거야. 그랬다간 애초에 여보가 여행에 동참한 이유였던 ‘본인을 찾는 시간’을 가지기는 힘들 것 같아. 그리고 알잖아, 나는 언제 어디서든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거. 그러니 우리 따로, 또 같이의 비율을 정해서 슬기롭게 여행하자."라고 제안했다.


 물론, 나도 남편 너랑 있는 시간이 제일 재미있고, 앞으로 계속 당신 옆에 꼭 붙어 함께 할 거라는 진심은 충분히 전했다.


 남편은 내 제안을 수긍하고 받아들였다. 내가 생각하는 적절한 따로:같이 비율은 1:3이었으나 남편은 1:4였다. 일단 오전 시간을 각자 보내기로 합의하였다.

 둘이 지내더라도 공간의 분리가 필요하므로, 앞으로의 숙소는 방이 별도로 있거나 층으로 나뉘어 있는 곳을 선택하자고 의견을 맞추었다.     


 그리하여 제주살이 두 번째 달부터 우리는 공간과 시간이 분리되는 삶을 살게 되었고, 다행히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아침에 눈을 뜨면 서로 원하는 시간에 본인 스타일로 아침을 차려 먹는다. 난 주로 삶은 달걀과 오이, 방울토마토로 식사를 하고, 숙소를 청소하고, 책을 읽거나 글을 쓰며 오전 시간을 보낸다. 남편은 누룽지를 끓이거나 뜨끈한 국물을 곁들여 아침식사를 하고, 바닷가에서 조깅하고 돌아와 최근 시작한 유튜브 공부에 빠져든다.


 점심 식사 시간이 가까우면 오늘의 외식 메뉴를 결정하고 밖으로 나간다.      

 오후부터 밤까지는 같은 공간에 있긴 하나 최근에는 이 시간에도 각자의 노트북을 열어두고 서로 원하는 일을 하며 보낼 때가 많다. 공동 투자에 대한 대책 회의를 열기도 하고, 머릿속에 들어온 생각이나 가슴속 감정을 공유하며 수다 삼매경에 빠지기도 한다. 내가 운영하는 블로그, 브런치에 그가 관심을 기울이고, 난 그가 시작한 유튜브에 콘텐츠를 제안하며 서로의 일을 응원한다.

 

 함께 준비한 저녁 식사를 마치고 TV를 보며 깔깔거리다가 10시 반, 미국 주식시장열리면 엄숙하고 진지하게 업무를 보며 하루를 마친다. 드디어 정반대 성격의 부부가 함께 장기 여행을 하는 평화로운 방법을 찾은 것 같다.


 5월에는 지인의 방문이 여러 차례 있었다. 그중 3쌍의 부부 방문자들과 며칠의 시간을 보내면서 어쩌면 저렇게도 부부가 다를까 놀라웠다. 다른 것은 우리 부부만의 이야기는 아니었던 거다. 다들 깎고 깎이며 같이 사는 방법을 모색해 왔을 테다. 우리보다 더 달라 보이는 다른 부부를 보면서 그들이 겪었을 일들을 짐작해 보니 안쓰러워지기도 했지만, 서로 다른 사람끼리 만나 함께 사는 것 자체로 우리 모두는 기적을 실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우리 남편, 내가 힘들었던 이유와는 정반대로 나 때문에 얼마나 많이 참고 견디었을지(내가 그러했듯이ㅋ). 여행 초반의 전쟁이 휴전을 넘어 정전이 될 수 있도록 내 제안을 따라 주어 고마울 뿐이다.      


 앞으로도 환경이 바뀌면 현재의 방식이 아닌 새로운 방법을 모색해야겠지만 두 사람이 마음을 열고 있다면 처음보다 쉽고 빠르게 대처해 갈 것이라 믿는다.


 (+) 지난번 글에서 언급하였던 한 달에 한 번씩 이사로 인한 J와 P의 부딪힘은,

이동 전날 오후부터 짐정리를 시작하여 차에 미리 실어두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답니다. 야호~!!!


잘 지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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