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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Jun 06. 2024

한 달 살기 중 손님치레

과유불급

 제주에서 지냈던 100일 동안 8팀의 지인을 만났다. 3월에 2팀, 4월에 2팀, 5월에 4팀이었다.

      

 3, 4월의 숙소는 타인을 재워줄 수 없기도 했고, 지인들에게 일정이 있기도 하여 우리는 한 끼 식사와 반나절 담화 타지에서의 만남을 기념했다.


 제주에서 살면서 가장 아쉬운 점을 꼽자면 친구들을 자주 못 만난다는 것이었다. 서울에 살 때, 나는 적어도 주 2회 이상 다양한 나이대의 각기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지인들과 만나고 대화하며 즐거움을 느끼던 사람이었다.

3,4월에 가졌던 월 2회 만남으로는 관계에 대한 목마름이 채워지지 않았다.


 5월에는 손님 초대를 염두에 두었기에 예산을 초과하더라도 3층 집을 구했다. 지인들에게 초대 의사를 밝히자, 총 7건의 방문 예약이 들어왔다. 3팀은 사정상 취소되고 4팀이 오기로 했는데, 어쩌다 보니 다들 일정이 셋째, 넷째 주였다. 5월의 마지막 2주 동안 그동안의 사람 그리움을 달래주기라도 하듯 손님이 쉴 틈 없이 방문하였다.


 행복에 행복을 더하면 더 커질 줄 알았던가 보다. 그러나 동일한 재화나 서비스를 추가로 소비함에 따라 만족도가 점차 감소한다는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 이번에도 어김없이 적용되었다.    

  

 첫 번째 친구 부부의 방문은 설렜다.

음식에 진심인 친구 남편 덕분에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우리는 밤마다 맥주를 놓고 몇 시간이고 사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특히 그들과 함께했던 취중 노을 감상은 제주살이 100일 중 가장 행복한 순간으로 기억된다.


 두 번째 강아지와 함께 온 옛 직장 동료의 방문은 평화로웠다. 인형인가 싶을 정도로 작고 얌전한 강아지의 존재 자체로 우리 사이엔 미소와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세 번째로 내가 사랑하는 친척들이 방문하였다. 얼굴만 봐도 좋은 사람들과 함께, 나도 그간의 도민 감성을 벗어던지고 관광객이 되어 제주를 누렸다. 몸은 피곤해도 마음이 행복하기에 괜찮다고 생각하였는데, 호기심에 들렀던 송당 스타벅스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방대한 부지를 끼고 있던 커피숍 크기에 압도당했나 아니면 붐비는 사람에 정신이 혼미 해졌던 걸까. 카페인에 예민한 내가 생각 없이 블랙티를 주문하고선 한 잔을 쭈욱 들이켰다.


 그날 새벽 4시가 넘도록 잠에 들지 못했고, 다음날 컨디션 저조로 나는 숙소에 남아야 했다. 대신 신랑 혼자 내 손님들과 함께 여행하였다. 나와는 친해도 그에겐 어려울 수 있는 친척 어른들이라 남편은 적잖게 긴장했으리라 짐작한다.


 3번째 손님이 떠나기 5시간 전에 4번째 손님이 도착했다. 컨디션이 회복되지 않은 상태로 4번째 손님을 맞이하다 나는 방전되었고, 뻗어버린 내 모습에 남편의 예민도는 올라갔다. 어쩔 수 없이 4번째 손님치레는 오롯이 남편 몫이 되었다.

     

 거기에 4번째 손님의 철없는 행동까지 더해지자 결국 신랑 인내심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어쩌면 기대의 차이였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우리가 모든 일정을 준비해 두고 그들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거라 기대하고 제주에 방문했을지도, 우리는 앞선 세 팀이 최대한 호스트 신경 덜 쓰이게 일정이나 차량 렌트 등을 알아서 준비해 왔기에 그 배려를 당연하게 여겼을 수 있다.


 물론 시점의 문제도 컸다. 앞서 말한 한계효용이 체감되다 못해 총효용이 (-)가 되는 타이밍에 그들이 방문했던 것이다. 우리가 감정적으로 사람이 그립고, 체력은 충전된 상태였다면 4번째 손님과도 훨씬 즐거웠으리라.

      

 내 손님 때문에 속에서 부글부글 끓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표정이 구겨진 채 틱틱거리는 남편 때문에 그들이 마음 상할까 그것도 신경 쓰였다. 무엇보다도 기분도 안 좋고 매우 피곤해 보이는 남편 눈치가 보여 난 좌불안석이었다.


 회사 다닐 때, 능력이 안 되면서 일 벌이고 감당 안 되니 옆 동료나 후임자에게 떠넘기는 사람에겐 엄청난 ‘씹힘’이라는 대가가 주어졌다. 이번에 내가 딱 제일 피해야 할 인간 유형이라는 멍부(멍청한데 부지런한) 꼴이었다. 순화하면 약부(몸은 약한데 마음이 부지런한)라고 해야 할까. 그때 회사의 그 선배는 어떤 마음이었을지, 뒤늦게 그의 입장을 헤아려 본다.


 결핍상태에서 온 욕심, 거절하지 못한 우유부단함, 내 체력에 대한 몰이해로 결국 모두에게 피해를 끼친 것 같아 마음이 괴로웠다. 사랑하고 고마운 사람들에게 제주에서의 잠자리를 제공하고 그들과 예쁜 추억을 쌓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래도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별했어야 했다.


 새벽까지 마음이 시끄러워 쉬이 잠을 못 이루고 뒤척이다가 안 좋은 꿈을 꾸어 6시가 안 되어 눈이 뜨였다. 말똥 해진 눈으로 숙소 천장을 멍하니 쳐다보는데 過猶不及(과유불급) 사자성어가 떠올라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자고 다짐하며, 끝까지 헌신적 자세로 최선을 다한 남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한 번 봐주소, 한 달간 왕으로 모실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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