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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Jul 25. 2024

속초 한달살기 3일 만에 포기하다.

속초 빤스런 사태 발생

대관령을 떠나기 전, 숙소 주인 분께서 다음 여행지를 물었다.

“속초로 가요.”

나의 대답에 그녀는 손까지 모아 잡고

“와~너무 부러워요! 진짜 좋으시겠어요.”

진심 어린 리액션을 보여주었다. 참으려 해도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여름 한 달은 산에서, 다른 한 달은 바다에서. 이 얼마나 알차고 행복한 여름인가, 완벽한 계획이라고 속으로 우쭐거리며 속초로 향했다.      



낯선 에서의 한달살이 첫날은 설렘 80에 걱정 20으로 시작한다.

 

설렘으로 숙소 문을 여는데, 까꿍~양파가 신발장 바닥을 굴러다니며 반겨주었다.    

뭐지? 청소하고 급하게 나가다 양파 한 개를 떨어뜨렸나 보다. 그래, 그럴 수 있지.’

양파는 애교이자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한 예고라는걸 그땐 몰랐다.


싱크대 하부장에는 아름답게 싹이 난 물렁한 고구마가 있었고, 그 외에 다 적을 순 없지만 실망스러운 점들이 곳곳에서 발견되었다.


80이었던 설렘은 슈슈슉 바람 소리를 내며 빠져나갔고, 그 자리엔 짜증과 분노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내가 자리를 잡아갔다.      


제주에서 그랬듯, 숙소의 이불을 삶고, 청소가 덜 된 곳의 먼지를 닦으며 속초의 첫날을 보냈다. ‘이불이야 세탁기가 빠는 거고, 청소는 내가 슬슬 하지 뭐.’ 남들의 부러움을 받으며 시작한 이번 달도 행복함으로 귀결되어야 했기에 머릿속에선 애써 상황을 합리화했다.          




속초의 숙소는 원룸 오피스텔이었다.

지난달 숙소 예산을 초과한 만큼 이번 달에는 비용을 아끼기 위해 선택한 집이었다. 사람이 있다가 없으면 못 산다더니, 대관령 대 자연 속 2층짜리 전원주택에서 살다가 갑자기 도심의 분리형 원룸에서 둘이 지내려니 여간 답답한 게 아니었다.


“우리 투자 망해서 원룸 얻어 들어온 것 같다.” 남편이 웃으며 가볍게 던진 말에 난 웃을 수 없었다.

“그 표현 정확하네. 진짜 그런 것 같아 우울해.”


기분은 스스로가 다루어야 할 문제라면, 숙소더위는 어찌할 수 없는 난제였다.

이불 세탁 후 건조기를 돌렸더니 작은 집안에 열기가 빠지지 않아 푹푹 쪄댔다. 창문을 열거나 에어컨을 틀면 되지 않느냐고?


바로 그것이 문제였다.

숙소 양옆으로 거의 붙다시피 가깝게 고층 건물이 공사 중이었고, 인부들은 줄을 타며 외벽 작업이 한창이었다. 덕분에 숙소 소개에 ‘오션뷰’라고 적혀있던 오션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바다는 굳이 안 봐도 되는데, 창문을 열 수 없는  고역이었다. 더위와 답답함을 못 이기고 창을 열면 먼지와 유독 물질이 들어와 두통이 일었다. 창을 닫고 에어컨을 틀어도 머리가 아픈 건 매한가지였다.

     

그럼 현관문이라도 열까, 이건 더 아니다.

입주 3년이 지난 오피스텔이지만, 창문 하나 없이 현관문이 마주 본 채 다닥다닥 늘어선 복도에는 새 건물 특유의 매캐한 냄새가 여전히 진동했다.     


두통을 나만 느끼는 게 아니었다. 남편도 똑같은 증상을 호소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속 우리는 무작정 밖으로 뛰쳐나가 바닷가로 향했다. 밤바다에 앉아 숨이라도 쉬고, 기분이 나아지기를 바라며 나무 그네 하나를 차지했다.


청년들이 쏘는 폭죽과 맥주에 취한 사람들이 벌이는 댄스파티에 신난 여름 밤바다. 그 안에서 유독 신나지 않은 사람, 부부는 고개를 푹 숙이고 당장 예약 가능한 숙소를 찾느라 바빴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 이월된 지난달 데이터를 다 쓸 때까지, 엉덩이가 뻐근해지도록 그네를 탔다.    


                   

불안했다.     


9년 전, 나의 전 직장은 정부 정책에 따라 지방 혁신도시로 이전을 했다.


이주 첫날의 충격을 잊지 못한다. 시멘트가 갓 마른 상태의 우리 회사 건물 외 사방이 공사 중이라 바람이 불면 누런 먼지바람이 황량하게 일었다. 도시 전체가 모조리 공사 중인 공사 현장 속으로 들어간 셈이었다. “이런 곳에서 어떻게 지내.” 여기저기서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사무실에 있는 낮시간, 새 건물과 새 집기에서 내뿜는 유독 물질로 눈과 목이 따가웠다. 도저히 못 참고 창을 열면 옆 건물 공사 먼지가 금세 창틀에 누렇게 쌓이곤 했다. 창문을 닫고 있기도 그렇다고 열기도 찝찝한 환경이었다.


하루 종일 직원들의 폐로 새 건물이 내뿜는 환경호르몬을 정화시키고 퇴근하면, 혁신 도시 내 새로 지은 아파트로 돌아갔다. 엘리베이터 버튼의 비닐도 덜 벗긴 새 아파트가 우리들의 사택이었기 때문이다.


그곳엔 편의점을 제외하곤 식당도 거의 없는 상황이었는데 밥 먹으러 시내 다녀오는 것 또한 쉽지 않았다. 40분에 한 대, 50분에 한 대씩 다니는 버스 두 대가 혁신도시와 구시가지연결해 줄 뿐이었다. 점점 편의점 음식으로 저녁식사를 때우는 날이 늘어갔다.


그러던 6개월 뒤, 나는 혈액암_급성백혈병에 걸렸다. 우리 집안의 외가 친가 수십 명을 통틀어 이 병을 앓은 사람은 내가 최초다. 혈액암이 아니더라도 암 경력자가 썩 많지 않은 나름 건강한 유전자를 지닌 집안인데, 당시 30대였던 내가 발병 즉시 말기암이라 볼 수 있는 병에 걸린 거다.

나는 전 직장의 지방 이전 후 암환자 1호였고, 2호 3호 4호 5호...계속해서 소식이 들려왔다.


나는 그 후 새집이 싫어졌다. 아니 무섭다.

새집에서 뿜는 매캐한 환경호르몬 냄새를 맡으면 온몸이 반응한다. 피부는 가렵고 눈은 따가우며 가슴은 답답해진다.


              

"여보 나 불안해서 여기 못 있겠어."

"어, 나가자. 가자. 빨리 가자."

나의 마음을 아는 남편은 우당탕 짐을 싸서, 내 손을 꼭 잡고 탈출하다시피 그곳을 빠져나왔다.


숙소를 예약했던 앱에는 입주 후 환불 불가라고 쓰여 있었지만 돈 백몇십만 원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다행히 숙소 주인분이 좋은 분이라 일부를 제하고 돌려받았습니다). 무조건 인내가 미덕이 아니라는 사실을 몸소 겪었던 사람이다. 우선 사람이 살고 봐야 하고, 피할 것은 피하고 봐야 한다.


부푼 마음으로 시작한 속초 한달살기는 2박 3일 만에 끝이 났다.


한달살기를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우리 집'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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