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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Aug 22. 2024

서울 입성, 한여름의 옥탑방 살이

여름의 절정을 대전에서 파리 올림픽과 더불어 보냈다. 낮에는 집에서 취미생활을 하다가 해가 누그러질 때쯤 저녁 식사를 위해 왕복 30분을 걸어 옆 동네에 다녀왔다. 밤이 되면 중학교 운동장을 돌았고, 돌아와 찬물 샤워로 하루를 마감했다. 심심한 듯 평안하게 대전에서 20일을 지냈다. 공주 당일 여행, 장태산 휴양림, 시립미술관, 그리고 성심당을 다녀온 것은 대전을 떠나기 며칠 전, 이대로 떠나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8월 중순부터 말까지 몰려있는 세 차례의 병원 예약과 집안일 때문에 8월 하순을 서울에서 지내기로 했다. 태어나 40여 년을 살았던 서울로 여행을 가다니, 새롭고 설렜다.


서울 가는 날이 다가오면서 나는 '시장에 가면~' 게임을 하듯 '서울에 가면~'을 읊어댔다.


서울 가면 치과 가야지

서울 가면 미용실 가서 머리 좀 해야겠다

서울 가면 ***김밥 먹고 싶다. 아! ♡♡◇◇◇식당도 잊지 말아야겠지?

서울 가면 그리웠던 친구들 만날 수 있겠네

서울 가면 교회 가야지

...     


나의 '서울에 가면~'이 끝없이 나오는 동안 남편은 단 하나의 소망을 언급했다.


서울 가면 공연 예약하자. 뮤지컬 보고 싶다.          


지금까지 한달살이 지역을 떠날 때가 되면, 다음 여행지에 대한 기대보다 현 지역을 떠나는 아쉬움이 더 컸는데, 이번에는 반대였다. 대전을 떠나기 전날 늦게 잠이 들었지만, 다음 날 아침 일찍 눈이 뜨였다. 빠르게 짐을 싸서 체크아웃 시간을 넉넉히 남겨둔 채 대전을 떠나왔다.




톨게이트를 지나 꽉 막힌 길과 익숙한 표지판을 보니 "아~집에 왔구나." 마음이 푸근해졌다.      



묘했다.

늘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했던 나인데, 6개월 떠나 있었다고 서울이 기다려지고, 서울에서 반겨주는 건 미세먼지와 도로에 넘치는 차량이지만 집에 왔다며 기분이 좋아진다는 것이.

     

상기된 볼만큼 마음도 부푼 채, 내비게이션 안내에 따라 숙소 앞에 도착했다.


‘어? 어디지?’


숙소앱에는 분명 4층으로 나와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도착한 곳은 3층짜리 빨간 벽돌 상가 건물이었다.

4층이 어딨어? 고개의 각도를 조금 더 트니 건물 옥상에 검은색 컨테이너(로 보이는 건물)가 올려져 있다. 증축하여 옥탑방을 만든 모양이다.


설마 저.. 저건가?


내리쬐는 한낮의 햇살에 눈을 찌푸리며 위를 올려다보다 "망했다" 소리가 작게 새어 나왔다.

'한여름에 컨테이너 박스 안에서 보름을 어떻게 살지?'

     

28인치 캐리어 두 개와 배낭 2개, 보조 가방 2개를 몇 번에 걸쳐서 엘리베이터 없는 4층 높이 옥탑까지 이동시켰다. 숨이 차고 땀범벅이 되어 숙소 문을 열었더니 한여름의 열기에 후끈해진, 밖보다 더 더운 공기가 가득한 작은 방과 부엌이 나왔다.


실용성은 매우 떨어지나 인테리어만 예쁜, sns 사진용 공간 같았다. 제주 외도에 이어 또 숙소 사진빨에 속아 잘못 골랐다. 속초에서 숙소 옆 공사 문제를 겪은 터라 주변이 공사 중인지만 살폈지 설마 옥탑방일 줄이야 전혀 생각 못 했던 상황이다.


아... 이러지 말지...

4층이라면서요? 요즘은 옥탑방을 4층이라 부르나요?


대전에서 20평대 아파트에서 20일간 지낸 금액과 정확하게 같은 돈을 10평도 안 되는 컨테이너 옥탑방을 2주간 빌리는데 지불했다니 ㅜㅠ 서울 온다고 좋아했는데 도착하자마자 이 도시는 나의 뒤통수를 후려갈긴다.




사람이 적응의 동물이라더니 한여름의 옥탑방 살이도 그럭저럭 지낼만하다.


창밖을 보다가 올여름 폭염에 죽음까지 이른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기사가 떠올랐다. 우리는 이곳에서 겨우 2주를 지낼 뿐이고 그마저 24시간 에어컨을 틀면 괜찮은데, 에어컨 없이 옥탑방에서 사는 분들 어떡하나 걱정이다.


'서울에 가면~'을 하나씩 수행하느라 일정이 빡빡해 집에 있는 시간이 덜해 그나마 다행이다. 남편의 하나뿐인 서울 바람은 깨졌다. 보고 싶은 뮤지컬이 매진이란다. 서울로 오길 기다렸지만, 다시 서울을 떠나길 기다리는 모순 속에서 2024년의 늦여름이 지나간다.


서울, 참 쉽지 않은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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