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암 환자의 복직, 행복한 듯 불행한 듯

by 윤슬

질병 휴직 2년을 마치고 복직하게 되었다. 여전히 체력은 매우 떨어지고 조혈모세포이식의 부작용으로 통증이 없는 때는 한순간도 없었으나, 예전의 나를 다시 찾고 싶다는 마음의 소리를 무시할 수 없어 복직을 결심했다.

첫 출근, 그날의 감상이 블로그에 남아있어 퍼 왔다.



2017.8.16

집을 다 헤집어도 사원증이 보이질 않는다. 혹시나 해서 추억의 상자를 열어봤는데 그 안에 들어있었다. 이제 추억이 되었다며 그 속에 넣었었나 보다. 사원증을 다시 목에 거는데 콩닥콩닥 설렘이 일었다.

다리 제모를 하고 양말 대신 투명 스타킹을 신고, 운동화 대신 신발장 끝에 보관해 두었던 구두를 꺼내 신었다. 트레이닝복을 벗고 정장을 입고 핸드백을 들었다.

출퇴근길, 동료들과 점심을 먹으러 나가던 길, 만 번은 넘게 걸었을 청계천 거리에 다시 섰다. 너무나 익숙한 거리에 너무나 익숙한 내가 있다. 기분이 묘했다.

지난 2년의 시간이 마치 긴 꿈이었던 듯 다시 현실로 돌아온 것 같았다.


영화 속 한 장면과 같았던 복직 첫 출근길의 느낌이 참 소중하다.



많은 선후배의 배려와 도움을 받아 천천히 복직 생활에 적응해 나갔다. 아직도 그때의 에피소드들을 떠올리면 눈두덩이가 뜨끈해지며, '내가 받았던 사랑을 나도 사회에 갚으며 살아가야지' 다짐하게 된다.


일을 하며, 내가 여전히 사회에서 필요한 존재라는 자각과 내 자리로 돌아왔다는 안도감, 그리고 매월 21일이 되면 통장을 채워주는 월급에 행복했다.


그러나 감상으로 현실을 감당하기는 버거웠다.


몸이 힘들다 보니 집중도가 상당히 떨어졌다. 치료 부작용으로 안구 통증이 심해 글을 읽기 힘들었는데, 애써 읽은 내용이 머릿속에 남는 게 없이 쉬 날아갔다. 2년간 회사 인트라넷 시스템도 달라져 어리바리 충만한 신입이 되었건만 더 많은 후배가 생겨 중견 사원 역할은 해야만 했다.


회사에서는 육아, 질병 등의 이유로 단축근무가 가능하였기에 일 4시간 근무를 신청하였다. 그러나 진짜 4시간만 일하고 퇴근했던 날은 거의 없던 것 같다. 4시간짜리 근무자라 해도 팀에서 TO 1명을 잡아먹으니, 내가 덜 하는 만큼 나와 함께 하는 자들이 더 일해야 했기 때문이다.


일하다 보면 4시간은 너무 빠듯했고, 퇴근하려 하면 꼭 전화가 오고, 누군가가 찾아오고, 급한 회의가 그 시간쯤 잡혔다. 모른척하고 퇴근할 만큼 얼굴이 두껍지는 않았다.


그러면서도 늘 제 몫을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팀장님과 팀원들에게 미안했다.

남편은 처음부터 복직을 탐탁하지 않게 여겼다. 치료 도중 내가 생과 사를 오갈 때마다 옆에서 오롯이 지켜봤던 사람이라, 어쩌면 나보다 그의 마음에 더 트라우마가 남았을 것이다. 절대 일 욕심 내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복직을 수긍했던 그다.


퇴근 시간인 오후 2시가 아니라 밤 11시까지 야근하고 집으로 돌아왔던 날, 그는 어쩌려고 이러느냐며 몹시 화를 냈고, 난 다시는 이런 일 없을 거다 거듭 사과를 했다.


일을 제대로 못하면 팀원들에게 미안했고, 일을 좀 하면 남편한테 미안했다. 그 시절 “미안해, 죄송합니다.”를 입에 달고 살았다.

습관적으로 그 말을 뱉으며 나는 진정 무엇이 미안한 건지 헷갈렸다.


월급은 반만 받았어도 일의 시간과 성과는 평균의 반은 넘었으리라 자부한다.


그래도 연말이 되어 다면평가를 할 때면 난 당연한 듯 팀에서 점수 깔아주는 사람이 되었다. 자타 간 ‘승진포기자’로 암묵적 동의가 이루어졌기에, 내 평가를 가장 낮게 주는 대신 승진을 밀어줘야 하는 사람에게 더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었다.


10년 넘게 직장생활을 하며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낮은 인사고과 성적에 헛웃음이 터졌다. 복직 첫 해엔 그러려니 했다. 그러나 다음 해에도 난 전사 꼴찌 수준의 결과를 받았고, 그다음 해에는 입사동기 반 정도가 승진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그저 뒤에서 박수만 보내야 했다.


슬픈 것은 그런 결과에 화가 나기는커녕, 감히 욕심조차 낼 수 없는 현실이었다. 반만 일하는 자라 인사고과 꼴등을 해도, 승진자 리스트에서 누락되어도 너무나 당연한 거였다. 오히려 그 반대의 상황이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이성적으로는 이렇게라도 회사를 다니는 게 감지덕지다 했지만 사람인지라 감정 깊은 곳은 아려왔다.


패럴림픽에 나가야 하는 사람이 올림픽에 잘 못 참가한 느낌이었다. 드디어 나 자신에게 미안해졌고, 이렇게까지 하면서 직장을 다니는 것이 맞는 걸까 고민이 되었다.


복직 후 시간은 참 행복했고 동시에 불행했다. 병을 얻기 전의 나를 찾은 것 같아 행복했으나, 결코 예전의 나를 찾을 수 없음에 불행했다.

이전 01화[1화] 암에 걸리다, 젠장 걸리자마자 말기라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