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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평대 아파트에서 원룸 오피스텔로 이사해 보셨나요?

겨울 서울살이의 혹독함

by 윤슬

서울의 숙소는 원룸 오피스텔이었다.


화장실과 주방이 마주보고 있었고, 좁은 복도를 지나면 거실 겸 방이 나오는 전형적인 한국식 원룸 구조였다. 거실에는 더블침대 하나와 소파침대가 놓여 있었다. 나는 침대를 쓰고, 남편은 소파를 펴서 침대로 만들어 사용하였다. 두 사람이 누우면 좁은 집이 꽉 찼다.


40평 대 아파트에서 지내다 원룸으로 숙소를 옮기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화장실과 마주 보는 부엌 사이 복도를 지날 때면 우리는 서로에게 "좀 비켜줄래?" 부탁을 하며 지나다녔다.

부엌의 조리 공간이 좁아 음식을 해 먹기 쉽지 않았고, 개수대가 작아 설거지를 할 때면 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화장실에서는 하수구 냄새가 올라왔다. 샤워 후 물기를 말리기 위해 화장실 문을 열어두면 작은 집에 악취가 들어찼다.


모든 악조건 중 가장 받아들이기 힘든 것은 비용이었다.

이곳의 보름치 비용이 거제도의 준신축 아파트 한 달 숙소비와 맞먹었기 때문이다. 물론 거제에서 운이 좋아 숙소를 저렴하게 구한 것은 사실이나,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이건 너무하지 싶었다.


삶의 질이 하루아침에 수직 하강하였다.


서울에서의 일정은 병원에서 시작하여 병원으로 끝났다.

서울 온 김에 진료 예약을 몰아서 잡았더니 매일 다른 병원에 가야 했다. 날은 춥고 숙소는 불편한데 기 빨리는 병원 스케줄을 감행하느라 몸과 마음은 빠른 속도로 지쳐갔다.


결국 감기에 걸린 채, 경기도 일산의 조금 큰 원룸 오피스텔로 옮겼다.

공간이 넓어지고, 악취가 안 나니 그나마 숨통이 트였다.

대신 그곳엔 어린 시절 할머니댁 추억을 소환하는 심한 웃풍이 있었다. 천정 온풍기 난방 방식이라, 온풍기를 켜면 건조해서 기침이 쉴 새 없이 나고 끄면 찬 공기에 콧물이 흘렀다. 자다가도 깨서 온풍기를 켰다 껐다를 반복하며 며칠을 끙끙 앓았다.


안 되겠어서 경기도의 호텔로 숙소를 옮겼다.

이게 뭐 하는 짓인지.


지난여름 속초 한 달 살기를 포기하고 떠났던 날 이후 처음으로 우리 집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서울은 시민으로 살 때보다 여행자 신분으로 방문했을 때 훨씬 더 쉽지 않은 곳이었다.

춥고, 차갑고, 후진데 비쌌다.


서울에서 지내며 남편이 자주 흥얼거리던 노래가 있다.

"아무래도 난 돌아가야겠어. 이곳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아~♪"


전과 달리 노래 가사가 귀에 쏙쏙 꽂혔다.

지방에서 올라온 청년들의 첫 서울살이가 얼마나 혹독했을지 헤아리며 원곡을 찾아들었다.


그래, 여긴 아닌 것 같다. 우리 떠나자.


더 이상 아닌 것을 버티면서 살고 싶지 않다.

마음이 미래에 자주 가 있던 사람이라, 미래를 위해 기꺼이 현재를 희생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살아왔다.


마흔을 훌쩍 넘긴 시점, 남은 시간이 살아온 시간보다 짧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누리고 즐기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버티고 참지는 말자. 열심을 다했던 스스로에게 상을 주지 못할지 언정 벌은 주지 않으리. 이게 내가 나를 사랑하는 방식이라 마음먹었다.


서울에 오면서 계획했던 일 대부분을 못한 채 급하게 서울 보름살이를 접었다.


바쁘고, 아프고, 힘들었지만 단단한 결심 하나를 안고 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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