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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슬기 May 26. 2019

월경을 세상에 소리쳐

<제2회 월경박람회>를 경험하며

월경


내 첫 월경은 뚜렷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가물거리는 기억으로는 초등학교 5학년 때였던 거 같다. 주변 친구들이 한두 명씩 월경을 하는 거 같았지만, 우리끼리도 그걸 공유하지 못했다. 그쯤 나 역시 월경을 시작했는데, 학교 화장실에서 경험한 월경의 전조는 다소 불편하고 찝찝했다. 이후 초등학교 때까지는 나의 월경 양을 알지 못해서 피가 종종 바지에 묻어 나오기도 했다. 이는 어린 나에게 창피하고 숨기고 싶은 것으로 기억된다. 그래서 그런지 월경에 대한 나의 감정은 부정적인 것들로 가득 차 있다. 돌아보면 왜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여성이라면 당연하게 하는 월경에 대해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은 건가 의문이 든다.



그 후 어른이 되어 생리대에 독성 물질이 검출된 사건인 일명 '생리대 파동'이 터졌다. 그때의 당혹감은 여전히 생생하다. 곧 월경 시기가 다가오고 있었는데 내가 가지고 있던 생리대를 다 버리고 싶었다. 이에 모든 사람이 각기 다르게 안전한 월경 용품을 찾으려 애썼다. 주변 지인들에게 좋은 제품을 추천해주기도 하고, 인기가 좋은 제품은 동이 나서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나를 비롯한 여성들에게 다소 전쟁상황같이 다급했는데, 다른 한쪽은 너무나 평화로워 보이기도 했다. 그 시기 나는 여러 브랜드를 찾았고, 그중 한 브랜드가 바로 이지앤모어(EASE&MORE)였다. 여성이 자신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만든 곳으로 모든 여성들의 건강한 월경 라이프를 미션으로 직접 사용하고 선별한 국내외 월경 용품을 소개 및 판매하는 월경 셀렉트샵이다. 나는 이 브랜드를 알아보며 신뢰하게 되었고 여기저기서 안전한 월경 용품을 찾아보고 사용하는 대신 '이지앤모어'에서 선별해준 제품을 확인하고 구매했다. 지금까지도 이지앤모어를 신뢰하며 애용하고 있다.




월경을 세상에 소리치는 <제2회 월경박람회>


그렇게 애정 하는 이지앤모어가 주최하는 '제2회 월경박람회'가 최근 주말 서울숲에서 열렸다.

반가움 마음으로 미리 표를 샀고, 월경박람회를 다녀왔다.


월경박람회를 알리면서 해당 행사에 함께 하는 브랜드들을 소개해주었고 나는 자연스럽게 월경박람회 입구부터 참가 브랜드들이 줄지어있는 모습을 떠올렸다. 그런데 월경박람회는 색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공간을 크게 2개의 구역으로 나눈다면 입구부터 시작되는 첫 번째 구역은 '월경 전시관'에 가까웠다.



간단한 설문으로 자신만의 캐릭터가 구현되는 것부터 월경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도록 연도별 월경용품을 소개했다. 또한 여성 개인, 여성 단체 및 조직, 여성 기업들을 월경 플레이어라고 지칭하고 이들의 다양한 활동들을 보여줬다. 이 부분이 매우 의미 있고 좋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많은 정보들이 있어서 오히려 잘 보지 않고 지나가게도 되었다. 그럼에도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바로 이 부분이다.



2018 나트라케어 광고 "생리"단어 등장

"그 날이 도대체 뭔데? 아무것도 하기 싫어.
그게 생리야"


2018년 그러니까 작년에 처음으로 광고에서 '생리'라는 단어가 나왔다는 것이 정말 놀라웠다. 최근 '생리'라는 용어도 포괄적인 말이라는 의견이 나오면서 '월경' 또는 '정혈' 등으로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는 흐름이 일고 있는데 이 역시 정말 짧은 기간에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그리고 그동안 우리가 이 월경을 얼마나 터부시 하며 숨겨왔는지 절절하게 인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인상 깊었던 것은 '포궁' 작품이었다. 공예 디자이너인 위클리제이가 만든 이 작품은 정말 아름다웠다. 그리고 포궁이 커다랗고 멋지게 표현되면서 이 월경박람회가 어떤 것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지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기억에 남은 '월경 플레이어'



이어지는 행사장을 따라가면 새로운 구역이 시작되는데 월경용품 연구소 콘셉트의 체험존과 지구 월경용품 Shop과 더불어 참가 브랜드들이 모여있다. 기존에 이용하고 있던 브랜드부터 관심 있게 지켜보던 브랜드들이 많아 나는 신이 나서 돌아다녔다. 그중에 내가 특히 좋았다고 생각되는 브랜드들을 소개해보려고 한다.



YOUNiiCON


유니콘은 월경박람회에서 체험존을 진행했던 브랜드이다. 나와 타인의 몸과 성을 이해하기 위한 젠더교육 솔루션을 제공하는 소셜벤처로 현재는 특히 초등학생 대상으로 성, 감정, 관계 등을 포괄하는 성교육을 제공한다. 실제로 해당 체험을 참여해보지 못했지만, 직간접적으로 월경을 경험하기에 좋은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거 같았다. 미션을 갖고 지속해서 성교육을 진행하며 성교육 가이드북도 만드는 곳이니 성교육이 필요하다면 이곳을 찾으면 좋을 거 같다.



DALGORI



우연히 갱년기에 대해 알게 되면서 엄마를 다시 돌아본 적이 있었다. 홀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어 이런저런 정보를 찾아서 보내드렸고, 그러다가 알게 된 곳이 달고리였다. 달고리는 완경박스를 통해 갱년기 여성에게 위로와 감사, 응원을 전하는 곳이라고 한다. 달고리 대표 역시 자신의 어머니를 위해 이 제품을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그 마음이 완경박스 제품 하나하나에 녹여진 거 같아 인상 깊었다.



NAMOW



나마우는 우먼을 거꾸로 표현한 이름답게 월경컵을 일상생활에서 더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손컵 티슈를 제공한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디자인으로 나를 확 사로잡은 이곳! 매력적인 색조합과 월경을 표현한 거 같은 이미지가 좋았다. 만약 월경컵을 사용하고 있거나 사용할 계획이라면 나마우의 손컵 티슈가 정말 필요할거라 생각한다.



ALTDIF


알디프는 언제부턴가 인스타그램으로 팔로우하던 브랜드였다. 다양한 차를 제공하면서 패키지가 이뻐서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또한 여성 관련된 행사나 세미나를 이곳에서 진행하는 모습을 보며 더욱 관심이 생겼다. 언젠가 매장을 가야지 가야지 하고 못가다 이곳에서 만나 반가웠다. 여러 가지의 차를 시향, 시음을 진행했고 마음에 쏙 들던 '낮의 차'를 구매했다.



월경 전 또는 월경 중에 여성에게 도움이 될 성분으로 구성해서 좋았고 과일의 상큼함이 느껴지면서 부드러웠다. 이름도 어쩜 이리 찰떡으로 지었는지 낮이 떠오르고 낮에 마시면 좋을 차이다.



womankind


우먼카인드는 처음 나올 때부터 구매해서 읽어왔던 계간지이다. 이는 여성의 언어로 말하고 여성의 눈으로 새로운 가치를 읽어내는 문화 잡지이다. 우먼카인드 매거진을 읽으며 지칠 때 힘을 얻기도 했고 방향성을 잃었을 때 그것을 수용하게도 만들어줬다. 그만큼 나에게 의미가 있다. 어찌 보면 철학책 같기도 하고 다르게 보면 사회 이슈를 다루는 것 같기도 하다. 무엇보다 여성의 언어로 여성인 나를 이해하고 지지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마침 월경박람회에서 할인도 하길래 신간 계간지를 냉큼 사 왔다. 그 덕분에 보약 한채 지은 것처럼 마음이 든든해져서 돌아왔다.








월경을 이렇게 크고 다양하게 경험한 적이 있었는가 돌아보았다. 친구에게 소곤거리며 생리대를 빌리고 편의점에서 생리대를 사며 검은 봉지에 싸서 줬다. 가족들과 사는 집에서는 생리대를 버리는 것을 티 나지 않고 자연스럽게 하려고 매번 노력했다. 그렇게 살았던 나도 바뀌고 세상도 조금씩 바뀌어서 '월경박람회'라는 행사도 생겨났다.



이 월경박람회 덕분에 나는 매달 하는 월경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부정적으로 생각하던 월경을 제대로 살펴보고 여러 제품들을 구매하면서 월경을 이전보다 수용하게 된 거 같다. 그런 의미에서 두 번째로 열린 월경박람회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이 좋은 행사가 지속되길 진심으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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