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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슬기 Feb 17. 2019

내가 속초를 사랑하는 이유

속초를 사랑하게 만드는 3가지 브랜드

내가 처음 속초를 온 이유는 간단했다.

서울과 가까웠고, 산과 바다가 모두 있으니 혼자 가도 심심하지 않을 거 같았다.


그 후 나는 시간이 나면 종종 속초에 갔고, 1년에 2번씩은 방문하며 최근 1-2년 안에 5번 정도는 갔던 거 같다. 가족들은 이번에 속초를 가냐며 다른 곳에도 가라고 하지만, 나는 다른 곳을 가면서도 속초를 가는 것을 뺄 수 없었다. 이제는 속초를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고향이 없는 서울 출생의 나에게 속초는 고향의 느낌을 주는 편안한 곳이다. 그러나 이것이 단순히 내가 속초를 많이 찾아가서 익숙해서만은 아니다. 그래서 이곳에서 속초를 사랑하게 만드는 3가지 브랜드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내가 속초에 올 때마다 고집하는
'완벽한 날들'


여행을 갈 때, 내가 중요하게 생각한 것을 바로 '숙소'이다. 나는 숙소를 잠만 자는 곳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저녁이 되면 밖에 있기보다는 숙소에 들어와 편히 쉬기를 바라고, 내 집만큼 혹은 내 집보다 더 좋은 공간을 누리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그래서 숙소를 선택할 때 신경을 많이 쓴다.


그런 내가 신뢰하는 웹사이트가 하나 있다면 '스테이폴리오(stayfolio)'이다. 이곳에는 여러 가지 기준으로 선택된 숙소만이 소개된다. 그래서 여행을 갈 장소가 정해지면, 나는 이곳에서 지역을 검색한다. 당시 스테이폴리오에 소개된 '완벽한 날들'을 보고 처음 방문하게 되었다. 이후 여러 번의 속초 방문을 할 때마다 한 번을 제외하고는 '완벽한 날들'에서 묵었다. 속초에도 여러 숙소가 있지만, 내가 이곳을 고집하는 이유를 생각해보았다.




성장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보이는 서점


'완벽한 날들'은 1층을 서점으로 운영하고 있다. 서점을 좋아하기에 이곳을 숙소로 정한 것도 있지만, 갈 때마다 성장하는 모습이 보이는 모습에 감탄을 하는 서점이다. 1년 2번 정도 방문하지만 매번 서점의 배치가 달라진다. 긴 테이블이 생겼다가 없어지고, 책이 다르게 배치되어있다. 이 모습이 단순히 위치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고민의 모습이 역력하게 느껴진다. 생긴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기에 이러한 시행착오가 이 서점을 멋지게 만들어가는 것이리라 생각한다.


이러한 노력이 다른 이들에게도 느껴지는지, 갈 때마다 서점에 사람이 많아지는 거 같다. 이전에는 낮에도 텅텅 비어있었는데, 요즘은 낮 시간에는 사람들로 잔잔한 활기가 넘친다. 최근에는 직원도 채용하여 SNS에 속초에서 지내는 모습을 만화로 보여주기도 한다. 사실 직원을 채용하는 공고를 보고 살짝 고민을 하기도 했다. 이곳에서 지내면 일하는 삶도 괜찮을 것이라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편안한 고요함이 흐르는 게스트 하우스


홀로 여행하는 나에게는 주로 게스트 하우스를 묶게 되는데, '완벽한 날들'은 게스트 하우스이지만, 홀로 있는 것이 편하고 자연스러운 곳이다. 1인실도 써보고, 6인실도 써봤는데, 개인적으로는 6인실이 창문도 크고 공간도 넓어서 더욱 편했다.


6인실의 경우 2층 침대 3개로 구성되어있는데, 그럼에도 신기하게 내 침대 자리에 있으면 온전히 혼자 있는 느낌이 든다. 그 이유는 바로 침대 머리맡 쪽에 적당한 크기에 나무 가벽이다. 이 나무 가벽이 시야를 가려주는데, 이것이 신의 한수이다. 내 시야가 가려지니 내 얼굴도 가려지고 타인의 얼굴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완전히 가린 것은 아니라 답답하지도 않다. 게스트 하우스의 불편함은 낯선 이의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도 보이는 점인데, 이 나무 가벽으로 그런 불편함이 현저히 줄었다. 그래서 내가 1인실 보다는 넓지만, 아늑한 '완벽한 날들'의 6인실을 선호하는지 모르겠다.


또한 이곳에서는 묵는 사람들은 대체로 여성이고, 홀로 온 사람들이 대다수이다. 그리고 다들 책을 좋아하는 거 같다. 그래서 서로 억지로 말을 걸지도 않고 조용히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낸다. 이에 '완벽한 날들' 숙소는 말을 하지 않아도 어색하지 않은 편안한 고요함이 흐른다.





'동아서점', 왜 이곳에서 책을 사지 않고는 나올 수 없을까?


속초에 도착하면 완벽한 날들에 들러 짐을 맡기고, 밥을 먹고 동아서점에 간다. 여행을 갈 때도 가방 속에 책 1권을 넣어가곤 한다. 그럼에도 나는 동아서점에 가서 책을 산다. 왜 나는 이곳에서 책을 사지 않고는 나올 수 없는 것일까? 이곳이 속초에서 63년째 운영되는 서점이고, 3대째 이어오는 곳으로 2대인 아버지와 3대인 아들이 함께 운영하는 곳이라는 것이 매력적이지만, 이것을 둘째치고 내가 왜 이곳을 이리도 좋아하는지 생각해보았다.




적당한 크기와 적당한 사람의 수


이것이 동아서점만의 특징은 아니지만, 이곳에서는 항상 이 2가지의 특징을 보여준다. 적당한 크기와 적당한 사람의 수. 동아서점은 속초의 종합 서점답게 다양한 종류의 책을 구비하고 있고, 그만큼 작지 않은 규모를 갖추고 있다. 적당히 넓고 여유로운 공간은 사람을 편안하게 만들어 준다. 또한 동아서점에는 항상 적당한 사람들이 자리하고 있다. 너무 많지도, 너무 적지도 않은 적당하다. 도서관에 가는 기분이 든달까? 적당한 크기와 적당한 사람의 수는 내가 이 속에 자연스럽게 묻어갈 수 있게 해 준다. 주목받지도 않으며 천천히 책을 고르고 구경할 수 있다.


나는 작은 동네 책방을 사랑하지만, 작은 공간에 서점 주인 외에 아무도 없는 상황은 종종 부담스럽다. 왠지 어색하고 답답한 기분이 든다. 마음 편히 책을 둘러보기에 공간이 협소하기도 하고, 서점 주인에게 눈치가 보이기도 한다. 서점 주인이 눈치를 주지 않고 자신의 일을 해도 그렇다. 이에 동아서점의 이 2가지 특징은 편안함을 주는 특징이 되었다.




동아서점의 색깔을 보여주는 큐레이션과 손글씨


요즘 큐레이션을 하지 않는 서비스가 있을까 싶을 정도지만, 만족스러운 큐레이션을 제공받은 것은 손에 꼽는다. 큐레이션은 뭔가 브랜드만의 안목과 관점을 가지면서도 내가 모르지만, 알면 좋아할 만한 것을 알려줄 거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러나 내가 주로 접한 큐레이션 서비스는 내가 검색한 정보들을 데이터 값을 취합해 보여주거나, 팔리는 것과 팔리지 않는 것을 잘 섞어서 카테고리 지어서 보여주며 구매를 유도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동아서점의 큐레이션은 조금 다르다. 어떤 데이터 값도 없고, 억지로 카테고리를 짓지도 않는다.  동아서점 주인의 시선과 관점이 드러나며, 속초라는 지역성도 녹아져 있다. 또는 책 그 자체를 잘 보여주기 위한 카테고리로 책 보다 책을 소개한 큐레이션에 마음이 뺏겨서 책을 사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동아서점의 큐레이션과 그에 관련된 문구를 보면서 감탄했던 지점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다음에는 동아서점의 그 큐레이션만 자세히 살펴봐야겠다.


특히 동아서점의 색깔을 선명하게 만드는 것은 손글씨다. 아마도 현재 서점을 운영하는 아들 내외의 손글씨이지 않을까 싶다. 아날로그에 약하고, 손글씨 감성에 취하는 사람이라면, 책과 사람을 연결하는 동아서점의 손글씨를 좋아할 것이다. 디자인적인 부분을 떠나 손글씨는 그 사람의 고유한 매력이 듬뿍 담긴 것이다. 이에 취향의 문제로 모두가 좋아하기는 힘들어도, 좋아하는 소수의 마음을 파고드는 지점이 손글씨라고 생각한다.





'칠성조선소'
오래된 조선소에서 시작된 이야기


이번에 속초에서 처음 가본 곳이 바로 '칠성조선소'였다. 대충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속초의 오래된 조선소 공간을 살려 카페를 만들었다고 이해했다. 그래서 머릿속에 이미 그려지는 풍경이 있었다. 공장 같이 넓은 공간에 노출 콘크리트나 전선, 전구 등 인더스트리얼 느낌의 인테리어가 되어있고, 커피 향이 물씬 느껴지는 모습. 속초의 앤트러사이트 정도일까? 하면서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칠성조선소'는 내 예상을 깨버렸다.




실향민인 할아버지가 세운 조선소


청초호를 바라보고 있는 '칠성조선소'는 60년 전에 실향민인 한 사람이 목선을 제작하는 조선소를 세운 것으로 시작된다. 당시 목선은 인기가 좋아 호황을 누렸다고 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목선이 FRP(섬유 강화 플라스틱) 선으로 대체되고 '칠성조선소'는 실향민의 아들이 수리 조선소로 명맥을 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2019년인 지금은 할아버지가 세운 조선소를 손자가 이어받아 카누나 카약 등을 만드는 레저 선박 브랜드를 일구고 있다. 그리고 '칠성조선소'의 다양한 공간을 카페, 살롱, 전시 공간 등으로 구성해 복합공간을 이뤄냈다.


유럽에는 100년 넘은 브랜드가 다수 존재하고, 일본에도 100년 이상된 노포라 불리는 식당이나 상점들이 많지만, 여러 전쟁을 겪어 폐허에서 다시 일어난 우리나라는 10년만 넘어도 꽤 오래되었다는 느낌을 준다. 이에 '칠성조선소'는 60년 넘은 이야기가 있고, 그 공간이 현재에도 살아 움직이고 있으니 어찌 매력적이지 않을 수 있을까? 이야기가 담긴 공간을 애정 하는 사람이라면, 이곳을 좋아할 수밖에 없다.




오래된 조선소에서 시작된 이야기


'칠성조선소'의 이야기를 누가 들어도 흥미롭고, 영감을 주기 충분하다. 그래서일까? 이곳에서 여러 브랜드가 함께 공간을 꾸미고 콘텐츠를 만들어냈다. 과거 조선소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가족이 살았던 단독주택을 카페로 개조했다. 그리고 칠성조선소에서 영감을 받아 책 '나는 속초의 배목수입니다.' 가 기획 및 제작되었고, 속초의 배목수의 이야기를 담은 아트필름이 만들어졌다. 선박을 만들던 넓은 공간에 한 벽면에 아트필름이 상영되고, 과거 오래된 선박과 선박을 만들어낸 기계들이 자리하고 있다. 또 한쪽에는 '동아서점'과 '완벽한 날들'이 북큐레이션을 하고 오래된 조선소 공간에 책들을 배치했다. 이는 전체적으로 또 하나의 전시로 보였다.


오래된 조선소에서 시작된 이야기. 이곳의 이야기로 책이 만들어지고, 아트필름이 생겨나고, 전시가 이뤄지며 종종 아티스트의 공연이 진행되기도 한다. 청초호 앞에서 '칠성조선소'를 바라보며 과거와 현재가 정말로 공존하는 기분이 들었다.








완벽한 날들, 동아서점, 칠성조선소는 모두 속초에 모여있고, 이들은 '동쪽 끝 바다 여행자를 위한 작은 안내서' 라는 것으로 자신들을 엮어 사람들을 불러모으고 또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 이 모습을 보며 '속초'라는 지역의 브랜딩은 이 3곳이 힘을 합쳐 만들어가는 것이라 느껴졌다.



바다와 산이 있고, 아기자기한 매력을 가진 속초.

이 속초에는 이곳을 사랑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3가지의 브랜드가 있다.

나이가 들어도 매년 속초에 내려와 이 3가지 브랜드가 변화하고 성장해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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