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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동별곡 Dec 04. 2018

옥수동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들 *

[공동창작 프로젝트] 주민 기획자 '장상미+전은정' 을 소개합니다

누군가의 공간은 그 사람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준다. 손때가 묻은 가구들, 직접 만든 소품들, 서랍 속에 가득 차 있는 비밀스럽고 개인적인 물건들은 모두 그 주인의 ‘형용사’가 된다. 누군가의 공간을 책이 가득 메우고 있다면, 그 사람에 대해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책방 주인이 직접 출판하거나 본인의 안목과 취향에 따라 골라둔 책은 물론, 한쪽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헌 책들은 그 공간의 주인을 그대로 닮는다. 

(그래서 이번 인터뷰의 사진은 인터뷰이의 얼굴이 아닌 공간을 담아보았다)


‘성동별곡 공동 창작 프로젝트’에 참여한 장상미, 전은정 주민 기획자는 모두 작은 책방 겸 작업실, 공동 창작 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의 이야기는 공동 창작 프로젝트 팀의 ‘뮤즈’라고 할 수 있다. 재개발 후 사라진 옥수동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장상미 주민 기획자는 그 옆의 약수동에 사무실을 차리고 여전히 옥수동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재개발이 된 후 새롭게 변한 옥수동에 정착한 전은정 주민 기획자는 자연과 인간이 함께 살아가는 또 다른 시선으로 옥수동을 바라본다. 이 두 사람의 공간에서 진행된, 짧지만 따뜻하고 친밀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줄 기회를 만드는 거죠
어쩌면 사무소 장상미 주민 기획자


@어쩌면 사무소 실내외 모습


성동별곡 공동 창작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계기


성동별곡 프로젝트에 참여하시는 분이 내가 쓴 책을 읽었는지, 먼저 섭외 연락을 받았다. 옥수동에 관련한 얘기라면 나는 일단 다 귀를 기울인다. 공동 창작 프로젝트에 대해 들었을 때, 어떻게 이 이야기들이 극본이 되고 작품이 될지 궁금했었다. 옥수동에 대한 책을 쓰긴 했지만, 사실 그 책을 읽은 독자들의 감상을 직접 들을 기회는 없었다. 나는 내가 일방적으로 얘기하기보다는 진심으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그래서 오히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게 나한테 정말 좋은 경험이 되었다. 


지금은 없는 동네, 재개발 전 옥수동에 대해 계속 말하는 이유


재개발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자신이 몸을 담고 살아냈던 터전에서 밀려났다. 그런데 그런 깊은 트라우마가 한 번도 제대로 다뤄지고 위로받은 적이 있었나. ‘요즘 세상 얼마나 좋아졌냐’, ‘돈 받았으면 됐지’, 이런 논리에 치여서 진짜 상처는 꺼낼 기회조차 없었을 거다. 상처를 꺼내도 ‘왜 그렇게 계속 구질구질하게 살려 하냐’며 구박받았을 것이고. 나는 옥수동에서 평생을 산 것도 아니다. 하지만 재개발로 살던 집에서 밀려났던 경험은 설명할 수 없는 마음 한구석의 멍울로 남았다. 거기서 정말 오래 살아왔던 분들은 어떻겠는가. 정작 이 상처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에 관심도 없는 게 문제다. 작은 시도지만, 자신이 살던 동네가 ‘지금은 없는 동네’가 되어버린 그 이상하게 쓸쓸하고 슬픈 기분을 다독이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곳에 살던 사람들은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동네가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산책을 하며 사진을 찍고, 글을 써서 기억을 남기려 했다. 정말 많은 생각을 한 시간이었다.  


‘어쩌면 사무소’에 대하여


‘어쩌면’이라는 이름을 달고 무한히 자유로운 공간이다. 멋지고 완벽한 그런 공간은 아니고, 일상의 눈물과 짜증과 웃음과 기쁨이 있는 공간이다. 처음에 책을 냈을 때, 지인들이 이렇게까지 개인적인 얘기를 해도 되는 거냐며 깜짝 놀랐었다. 그런데 나는 오히려 뭔가 멋있는 주제나 의미는 못 지어내겠더라. (웃음) 책을 쓰려면 그런 걸 아주 조금은 지어내야 했는데, 어쨌든 제목이랑 목차가 나와야 하고 어떤 책이냐는 건 있어야 하지 않나. (웃음) 그 과정이 오히려 힘들었다. 그래서 ‘어쩌면 사무소’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정말 밑바닥까지 솔직하게 드러냈다. 그렇게 어쩌면 사무소와 함께 지금까지 왔다.  


공동 창작 프로젝트에 바라는 점


특별히 어떤 것을 바라지는 않는다. 공동 창작 프로젝트 팀들이 여기에 와서 밥도 먹고 회의도 했었다. 같이 산책도 하고 이야기도 많이 나누면서 서로 알아갔다. 작품이 어떻게 나올지는 아직 모르겠는데, 과정이 너무 재밌어서 기대가 된다. 




우리는 풀처럼 함께 사는 거예요
목수책방(옥수책빵) 전은정 주민 기획자


@목수책방(옥수책빵) 실내외 모습


성동별곡 공동 창작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계기


다른 주민 기획자로 참여하시는 장상미 선생님과 아는 사이였다. 장상미 선생님은 이미 사라진 오래된 옥수동의 기억을 가진 분이고, 나는 이미 옥수동이 변한 뒤 정착한 사람이다. 양쪽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풀어 가면 재밌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셨던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장상미 선생님과 함께 섭외가 된 것 같다.


옥수동에 정착하게 된 이유


사실 나는 옥수동과는 전혀 인연이 없었다. 이쪽에서 책방을 운영하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었다. 장세이 작가와 함께 독립 출판사와 책방을 운영하기로 하면서 책방 겸 작업실을 찾고 있었는데, 남산타워 근처에 살던 장세이 작가가 이곳(목수책방/옥수책빵)을 찾아냈다. 일단 우리의 사정에 맞는 규모였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굳이 다른 곳을 찾을 필요도 없었던 게, 이곳에 들어서는 순간 ‘여기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옥수동 책방 주인이 말하는, ‘동네 책방’의 의미


동네 책방은 애초에 책을 많이 팔기 위한 곳이 아니다. ‘커뮤니티’를 만들기 위한 곳이다. 물론 기대만큼 동네 주민들이 이 공간을 많이 이용하지는 않는다. 특히 목수책방/옥수책빵의 경우는 생태 전문 책방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대중적인 관심이 적은 분야다. 동네 책방이 대형 서점이나 카페처럼 쉽게 들어가기 어려운 곳이라는 걸 안다. 그 장벽을 어떻게 허물 수 있을지는 여전히 고민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작은 동네의 공간들을 통해 단단한 풀뿌리 연대를 만들어야, 더 다양한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동네 책방을 만든다는 건, 동네를 사랑하는 것, 주변 사람들과 연대하는 것이다.


주민 기획자로 참여하게 된 이유


커뮤니티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사람들이 많이 모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이런 공간에서 이런 일을 하고 있다’는 홍보를 해야 하는데, 작은 동네 책방으로서는 그게 쉽지 않다. 장사를 하려는 홍보 말고, 진짜 주민들이 모여 그 지역의 커뮤니티를 만들 수 있도록 연결 고리를 만드는 과정이 필요했다. 그런 점을 보충해줄 수 있는 성동문화재단과 함께 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지역 주민들과의 통로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성동별곡’도 결국 지역의 네트워킹을 만들고 동네 자원을 개발하려는 프로젝트다. 이런 자리가 앞으로도 더 많이 생겨서 동네의 아직 알려지지 않은 공간과 자원이 잘 쓰이고, 네트워크를 통해 다양한 목소리가 커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동 창작 프로젝트에 바라는 점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간다는 과정이 중요하기 때문에 내용에 대해서는 내가 특별히 뭘 바라지는 않는다. 시도 자체가 참신하고 좋았다. 이번 공동 창작 프로젝트는 (성동구에 있는 대학인) 한양대학교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그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앞으로는 더 많은 동네 주민들도 참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역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계속 만들어 갈 수 있다면 더 좋겠다. 공동 창작 프로젝트 팀들이 몇 번 이곳으로 와서 함께 회의도 하고 작업도 했었는데, 취재도 열심히 하고, 서로 끊임없이 얘기하면서 말 그대로 ‘공동 창작’을 하고 있는데 정말 재밌어 보였다. 옥수동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장상미 선생님의 이야기 위주로 가고, 나는 그냥 책방 주인 정도. (웃음) 재해석이 많이 되겠지만 중요한 가치는 남을 것이다.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궁금하다.




장상미와 전은정 주민 기획자의 내밀한 공간이자, 동시에 모두에게 열려있는 공간은 따뜻하고 포근했다. 각자의 취향과 가치관이 분명히 드러나지만, 그 누구라도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는 부드러움과 유연함이 있었다. 두 사람의 입에서 가장 많이 나온 말은 ‘함께’였다. 결국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것이고, 함께 울고 웃고 싸우며 함께 성장하는 것이니까. ‘어쩌면, 우리 함께’라는 말의 힘은 생각보다 훨씬 강했다.   




에디터  임규리

편   집  손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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