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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동별곡 Dec 21. 2018

음악극 '옥수동 이야기' 제작일지**

[공동창작 프로젝트] 어쩌면사무소 장상미 선생님과 함께 걷는 길

10월의 마지막 날. 깊이 무르익은 햇빛과 떨어진 낙엽에서 진한 가을 냄새가 풍기는 날이었다. 작업실, 잡화점, 책방 등등 하나의 수식어로는 부족한 독특한 공간, ‘어쩌면 사무소’에 성동별곡 공동창작 프로젝트 팀이 모였다. 어쩌면 사무소를 지키는 장상미 선생님이 직접 내린 따뜻한 커피를 나눠 마신 뒤, 팀원들은 장상미 선생님이 자주 걷는다는 동네 산책길을 함께 걸어보기로 했다.


‘어쩌면 사무소’는 동네를 걷고 또 걸으며 점점 커진, ‘우리가 사는 공간’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된 특별한 공간이다. ‘어쩌면 사무소’의 이야기를 연극으로 만들어 올리기 위해 고민하던 성동별곡 공동창작 프로젝트 팀은 이 공간을 더욱 깊게 이해하기 위해 주민 기획자로 참여하고 있는 장상미 선생님의 산책길에 함께했다. 동네를 천천히 한 바퀴 걸으며,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을 조금 더 잘 이해하게 되길 바라면서. 




어쩌면 사무소의 뒤쪽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올라가면 가파른 오르막길에 집들이 층층이 들어서 있다. 집들은 서로 어깨를 딱 붙이고 계단처럼 점점 높은 곳으로 이어진다. 모두가 헉헉대며 걸어가는데, 이 동네의 베테랑 택배기사님은 좁고 가파른 골목도 익숙하다는 듯 여유 만만하다. 





좁은 골목을 따라 올라가면 어느새 숲과 맞닿은 빌라들 위로 성큼 올라서게 된다. 빨간 벽돌담 너머로 남산과 그 위에 우뚝 솟은 남산 타워가 보인다. 내가 사는 동네를 새로운 시각으로, 한 마리의 새처럼 위에서 내려다보면 느낌이 전혀 달라진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수많은 집들 속에는 어떤 이야기가 숨어있을지 궁금해하며, 팀원들은 마음속에 성큼 들어온 풍경을 눈과 스케치 영상으로 담았다. 





장상미 선생님의 사무소 출근길이 되기도 했다는 응봉 근린공원은 가을의 따뜻함으로 꽉 채워져 있었다. 동네 주민들의 손때가 묻은 오래된 운동 기구들과 단단하게 땅이 다져진 낡은 배드민턴장은 오래된 친구들처럼 느껴졌다. 누구든 앉아 쉴 수 있도록 너른 품을 펼치고 있는 전망대에서 또 다른 동네를 내려다보며 팀원들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구상했다. 우리 동네에도 이런 푸근한 공원이 있다면 정말 좋겠다며 모두 입을 모았다.





조망대에서 남산 타워를 다시 보고 내려오는 길. 서울에서 가장 높은 등산로 입구라는 응봉근린공원 입구 앞까지 집들은 가득 차올라 있었다. 반고개 쉼터를 지키는 길고양이들과 키 큰 늙은 은행나무, 커다란 돌 위에 그대로 지어진 빌라와 가파른 골목길 한쪽에 계단처럼 만들어진 작은 화단을 보며 약수동 이야기 길을 걸었다. 집과 집 사이의 길 위에는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무척 많아 보였다.





그렇게 빌라들 사이를 걸어서 다시 어쩌면 사무소로 돌아왔다. 공동창작 프로젝트 팀은 모여앉아 차를 마시면서 어쩌면 사무소가 시작된 이야기를 들었다. 2012년 문을 열어 1년간 운영하기로 했던 어쩌면 사무소는 어쩌면, 어쩌면, 하면서 결국 6년을 그 자리에서 지내왔다. 개인의 자립과 공존, 연대를 위해 시작한 실험적인 공간은 매년 일 년씩 밖에 더 기약할 수가 없었다. 화단에도 나무는 못 심고 일년생 풀과 꽃들만 심었다. 하지만 나무를 심었으면 그것이 꽤 자랐을 시간만큼, 어쩌면 사무소는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여전히 실험적인 공간으로 동네를 지키고 있다. 어쩌면 사무소는 이제 어쩌면, 약수동에서 꽤 오래된 한 그루의 나무가 된 것이 아닐까.



 성동별곡 공동창작 프로젝트 팀은 12월에 있을 공연을 위해, 어쩌면 사무소에서 연습을 계속해 나가기로 했다. 동네를 몇 번이고 걷고 또 걸으면서, 오랫동안 동네를 지킨 어쩌면 사무소에서 차를 마시고 밥을 먹으면서, 많은 영감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면서.  




  -끝




에디터  임규리

편   집  손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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