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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동별곡 Dec 03. 2018

예술 마을을 꿈꾸는 사람들*

[마을탐사 프로젝트] 성수동 탐사단을 소개합니다

무더운 2018년 7월. ‘성수동 탐사단’ 4인이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였다. ‘성수동 탐사단’은 성동별곡 마을탐사 프로젝트의 한 팀으로, 성수동만의 매력을 발견하고 그것을 주민과 함께하는 마을특화 프로그램으로 발전시키려는 문화기획자와 예술가들의 모임이다.


연극으로 모두가 진심으로 연결될 수 있다고 믿는 극연출가 정소원, 함께 춤을 추는 것으로 삶을 나눌 수 있다고 믿는 현대무용가 밝넝쿨, 자유로운 인생을 끊임없이 지어나가는 건축가이자 문화기획자 권경준, 오토바이를 타고 성수동에 날아온 누구보다 따뜻한 마음의 청년 작가 로코리기까지.


모두가 ‘성수동’이라는 동네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모였지만, 각자 살아온 이야기도, 경험도, 하고 싶은 것들도 모두 다를 터. 성수동 탐사단은 어떤 하나의 목표를 처음부터 설정하고 나아가기보다는,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더 많이 듣고 고심하며 각자 프로젝트의 목표를 잡아갔다. 서로 처음 모여 각자의 경험을 나눈 탐사단 4인의 이야기는 성수동의 예술 문화 기획을 꽃피우는 중요한 씨앗이 되었다. 그 이야기를 들어보자.





나를 표현하는 수단, 너와 소통하기 위한 연극, 함께 즐기기 위한 예술
극연출가 정소원



어떻게 연극 연출을 시작하게 되었나


전에는 예술과 전혀 상관없이 살며 대치동에서 수학강사로 일을 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갑자기 예술이, 연극이 나에게 다가왔다. 문화 예술은 마음을 치유하는 힘과 소통하는 힘이 있다는 믿음이 생겼고, 연극을 시작하게 되었다. 연극의 힘은 현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진정성 그 자체다. 그 힘을 온전히 느끼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만나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한양대 대학원에도 진학해 연극 연출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연극이 나에게 주는 의미


나는 누구보다 표현이 서툰 사람이었다. 하지만 연극을 통해 나의 이야기를 점차 꺼내놓게 되었고, 연극을 통해 사람들과 진정으로 소통하기 시작했다. 그 경험은 나에게 정말로 소중했다.


극연출가로서 목표와 그동안 해 왔던 작업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즐거워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고자 하루하루 진심을 다해 작업을 하고 있다. 작년에 대한민국 콘텐츠진흥원에서 운영한 상품 공간 스터디셀러 과정을 들으면서 탐스터디의 광고영상을 찍었다. 감성코드가 있는 학원 광고 영상으로 장려상을 수상했다.




춤은 배우는 것이 아니라 누리는 것
현대무용가 밝넝쿨



성수아트홀 상주예술단체 ‘오! 마이라이프 무브먼트 씨어터’에 대해


2017년 성수아트홀 상주예술단체와 함께 뮤지컬 공연을 협연하면서 인연이 시작되었다. 이후 단독 무용 공연을 올렸다. 이후에는 성수아트홀 대관 공연이 대부분 무용 공연이 될 정도로 관심을 끌었다. 2018년 성수아트홀 상주예술단체가 되면서 이 지역 주민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작업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다.


성수동을 선택한 이유


성수동은 마을 밖에서 바라봤을 때와 안에서 경험할 수 있는 문화 예술에 대한 온도차가 큰 동네라고 생각한다. 내가 만드는 공연이 이 부분의 온도 격차를 줄이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처음에는 이 동네에 대해서 잘 몰랐고,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도 몰랐다. 그때 ‘성수동 탐사단’을 알게 되었고 참여하게 되었다. 탐사 활동을 통해 성수동이라는 지역을 깊이 이해하고 싶다.


현대무용가로서 나에게 ‘무용’이란


서울문화재단의 서울댄스프로젝트 사업에 3년간 참여하면서 100인의 춤판을 만든 경험이 있다. 그때 무용의 본질이란 ‘커뮤니티’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생각하는 ‘커뮤니티’란 다 함께 공유하는 것, 나누는 것이다. 무용을 처음 시작했을 때, 무술처럼 도제식 성향이 강한 무용계에서 소신을 지키고 살기가 정말 어려웠다. 소통이 없었다. 돌파구를 찾아 해외로 나갔고, 2010년부터 자비로 ‘50빌리지 프로젝트’를 5개 국가의 무용수들과 진행했다. 세계 각국의 마을 10곳에서 공연을 했다. 해외에서 열심히 활동하자 다시 한국에서 작업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춤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소통하려고 한다. 성수동 주민 100명과 함께 춤을 추면서 그들의 내밀한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한계가 명확한 건축과 한계가 없는 문화 기획
건축가&문화기획자 권경준



건축가에서 문화기획자가 된 계기


1994년 중앙대 건축학과를 졸업한 뒤 16년간 건축 사무소에서 일했다. 예술가는 경계가 없는 직업이라고 생각하는데, 내가 몸담아 온 건축은 땅의 경계 안에서 건물을 짓는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었다. 파주 운정동에 지었던 U-정보 센터와 춘천 고슴도치 섬에 지어질 리조트를 설계했던 것이 내가 했던 가장 자유로운 작업이었다. 굉장히 실험적인 설계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건축 승인을 받은 뒤 퇴사했다. 최근 들어 건축의 경계가 많이 허물어지고 있다고 하지만, 내가 해왔던 건축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건축을 하면서도 (아마 예술적 활동에 대한 아쉬움 때문에) 정보처리학원 그래픽 강사를 했고, 가수 서영은과 친분이 있어 1년 정도 음반 기획사를 운영한 적도 있다. 심지어 이탈리안 레스토랑까지 운영을 해봤다. 정말 다양한 활동을 했다. 그래서 한계가 없는 문화기획을 선택한 게 아닌 가 싶다.


‘스튜디오 제이’와 기획하고 있는 일


다양하게 활동하면서 빠박 김종훈 작가의 스튜디오 설계를 맡게 되었다. 그때 인연이 되어 공동의 작업실을 꾸리게 되었다. 김 작가는 외향적이고 나는 내향적이지만, 취향은 너무나도 잘 맞아 함께 ‘스튜디오 제이’를 운영하게 되었다. 노숙인 자활프로그램으로 인연을 맺은 ‘희망 사진관’의 작가와도 인연이 깊다. 현대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소리 책 제작을 꿈꾸는 사회적 기업 ‘보글보글 문화 솥단지’를 인큐베이팅 중이다.




나는 나지막한 성수동 건물 옥상에서 바라본 해와 달이 좋은 한량
청년작가 로코리기



어쩌다 ‘성수동 한량’이 되었나


나는 한때 잘 나가는 타투이스트였다. 어린 나이에 꽤 큰돈을 벌기도 했는데, 행복하지 않더라. 답답한 마음에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다 우연히 도착한 곳이 서울 숲이었다. 여느 서울의 풍경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이후 지금 현재 일하는 공방 근처에서 집시처럼 살다가 터를 잡았다. 작은 공방을 빌려 그림도 그리고, 공예도 하고, 가끔 오래 알고 지낸 친구들에게 타투를 해주기도 하면서 정말 한량처럼 지냈다. 나지막한 성수동 옥상에서 달과 별, 해를 보고 있으면 마냥 좋다. 옥상에서 작은 식물도 기르고, 자수를 놓기도 한다. 돈을 벌려면 어떻게든 벌 수 있겠지만, 일부로 돈을 벌지 않고 있다. 그래서 나는 한량이다.


성수동에서 하고 싶은 일


‘성수동 탐사단’ 활동을 통해 발달장애 아이들과 자유롭게 뛰어 노는 프로그램을 하고 싶었다. 그동안 사실 복지관이나 공공기관에서 나를 잘 상대해주지 않았다. 미술을 전공했고, 진심으로 봉사 활동을 하고 싶어 하더라도 내 첫인상이 날라리 같지 않은가. 하지만 마을 탐사 프로젝트는 내가 관심 있는 분야를 제대로 기획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어주었다. 그래서 진심으로 하고 싶었다. 안타깝게도 최근에 오토바이 사고가 나면서 지금 컨디션이 무척 좋지 않다. 성수동으로 날 데려와주었던 그 오토바이였다. 완전히 회복이 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이번 프로젝트가 끝날 때까지 좋은 인연을 이어가고, 좋은 기획을 만들어가고 싶다.



성수동 탐사단 4인은 무더운 여름부터 어느덧 쌀쌀해진 바람이 목덜미를 훑고 지나가는 9월이 오기까지 3개월 동안 꾸준히 성수동 구석구석을 뒤지며 보물을 찾아냈다. 이후에도 만남을 지속하고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성장한 이들의 프로젝트는 성수동 탐사단의 프로젝트 일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에디터  임규리

편   집  손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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