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에게 참을 수 없는 지점이 있어도 결혼을 결심하는 건, 그 사람과의 좋았던 기억들 때문일 거다. 하지만 그가 최악일 때 보여준 치명적인 단점을 평생 안고 갈 자신이 없을 땐, 이 결혼이 맞는 건지 망설여진다. 연애 때는 보기 좋고 예쁜 것만 하니까. 제일 맛있다는 집에서 정성스레 차려진 메뉴를 고르고, 핫하다는 장소에서 아름다운 모습을 찍는 등 만나면 할 일이 주로 정해진데 반해, 결혼하면 그 모든 것은 내 수고로 유지해야 하는 숙제가 된다.
결혼할 이유보다 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댄다면 수도 없을 거다. 행복하지 못한 결혼 케이스는 멀리 가지 않아도 주변에서 익히 들으니까. 내 이혼 소식을 듣고 잘했다던 친척들과 친구들의 목소리엔 모두이유가 있었으니까. 결혼해도 이전처럼 따뜻하게 보살펴 준다는 부부보다 그렇지 않은 경우를 더 많이 듣고 보니까.
결혼 전 순진했던 내가 가진 의문은 사랑과 결혼, 행복의 상관관계였다. 행복한 결혼이 참이기 위한 충분조건이 왜 사랑이 아닌 걸까? 왜 잘 살고 싶어서 선택한 결혼이 마냥 행복할 순 없는 걸까? 그 이유를 나는 몸소 알아내고 싶었다. 어쩌면 로맨틱하기만 하던 '사랑'이란 놈의 실체가 책임감과 부담감, 의무감이 동반하면 사라지고 마는 얄궂은 녀석인지도. 그 뒤엔 어마어마하고 무시무시한 '현실'이란 놈이 입김을 불어넣었겠지.
이름도 생소한 그곳 오지에서 살아냈던 삼 년의 시간들이 문득 떠오를 때가 있다. 오랜 세월 굳건했던 믿음이 결혼 후 조금씩 사라진 건 그 어마 무시했던 현실도 작용했겠지만, 결혼 1회 차의 그와 내가 서로의 참을 수 없는 지점을 인내하는 방식의 문제였는지도 모르겠다.
결혼 전 내 이상형은 존경할 만한 사람이었고, 그랬던 그에게 실망하게 된 데는 내 잘못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지나치게 솔직한 성격 때문에 거리낌 없다 못해 부부 사이의 선을 아슬아슬 넘나들면서도 그는 나를 다 이해할 거라고 생각했다. 사춘기 시절 짝사랑하던 남자애에게 애틋한 맘 꾹꾹 눌러 담은 편지를 쓸 때처럼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은 온데간데없고, 그저 내 모든 걸 '당연히' 사랑하고 아껴줄 거라고 믿었던 이기적인 마음에 상대를 지쳐버리게 한 잘못.
예의와 상식을 모르는 나이도 아니었는데 상대방에 배려와 관용만을 요구하는 철없는 ‘어른이’ 었던 걸까? 너무 가난해 마음의 여유조차 사라져 우린 서로에게 작은 의자 하나, 쉬고 갈 그늘 한 줌 마련해주지 못했다.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를 어떻게 유지해야 하는지를 배운 적도, 가르쳐 줄 어른도 없었다. 우리들이 배운 가정과 도덕 시간은 사랑하는 사람과 이루는 가정과 그 관계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것들을 가르쳐주진 않았으니까.
행복한 결혼 생활을 '다시' 준비하며, 잘 싸우는 방법을 고민한다. 연애 때는 상대방을 내게 맞추려고 싸우지만 결혼하면 어떻게든 살기 위해, 살고 싶어서 싸운다. 그러다 감정이 격해지면 상대를 이기기 위한 자존심 싸움이 돼버리고, 한바탕 전쟁이 휩쓸고 간 자리엔 상처 받은 '나'와 지친 '그'가 남는다.
이 과정을 수년간 겪으면, 상대를 지적하기 위한 싸움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걸 깨닫는다. 이제는 그저 싸움이 더 이상 커지지 않고 그의 화가 가라앉길 인내한다. "이기면 뭐 하니? 마음이 지옥인데"라는 명언과 '상대방에게 이성을 바라면 안 된다'는 사촌 언니의 뼈 있는 말이 이제는 이해가 되는 걸 보니 나도 나이가 들긴 했나 보다.
감정의 노예였던 결혼 1회 차엔 실패했지만, 2회 차의 결혼에도 결국 답은 사랑이라는 걸 증명할 거다. 죽기 살기로 싸워도 나를 제자리로 돌아오게 하는 건 결국 그에게 남은 애정이니까. 참을 수 없는 지점 때문에 가끔 회의감이 찾아올 때도 있겠지만, 가진 것 없는 이혼녀란조건에도 한없이 다정한 그 사람의믿음 또한 사랑의 힘 '로맨스'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