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책가게 Feb 19. 2018

라디오에도 소개된 우리의 연애 이야기

우리가 연인이 된 진짜 사연



그의 처음 이미지는 썩 좋지 않았어요.

살고 있던 고시원에 새로 온 총무인 그를 복도에서 처음 마주쳤을 때부터 인상을 쓰고 있었거든요.

제가 출퇴근할 때마다 그는 사무실에서 출입문을 내려다봐서, 꼭 감시를 하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입실 비를 내는 날 아침에 사무실을 지나가면 꼭 나와서 이렇게 얘기해요.

“오늘 입실 비 내는 날인 거 아시죠? 늦지 않게 입금해주세요”

‘뭐지... 이 사람? 한 번도 늦은 적 없고 알아서 낼 건데.. 못 믿는 건가?’


신발장 문을 닫고 올라오면 꼭 사무실에서 나와서,

“문을 그렇게 세게 닫으시면 안 되죠. 소리가 커서 고시원 전체가 울리잖아요”

 

친구를 데려와 같이 잔 다음 날 아침에도,

“그렇게 친구를 데리고 오면 다른 입실 생들도 다 데리고 오잖아요. 데려오시면 안 됩니다.”


마주칠 때마다 한 마디씩 하니, 이 사람이 나를 싫어한다고 생각했어요. 저한테만 너무 엄격했거든요.

다른 입실 생들에게 사근사근 눈웃음치며 친절하게 대하는 모습을 보면서 추측은 확신이 됐죠.




그러던 어느 날, 저는 친구와 함께 살 집을 구했어요. 그리고 그날에도 전화가 왔어요.

“저 고시원 총무인데요, 오늘 입실 비 내시는 날인데 입금이 아직 안됐네요?”

“아, 저 친구랑 같이 살려고 방 계약했거든요? 곧 짐 싸서 나갈 거니까 그때 한번에 계산할게요.”


이렇게 말하고 저는 속이 후련했어요.

이제 그 사람을 안 봐도 되니 '이제 자유다'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가계약금까지 낸 집이 친구 사정으로 계약이 어그러져버린 거예요. 그때 든 생각,

'그 사람... 계속 봐야 하나? 난 망했다'


반대로 그 사람은 저와 통화가 끝나고 심장이 쿵! 내려앉았대요.  

그동안 말 한번 걸려고 시도한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됐다고, 다신 못 보는 줄 알고요.

저는 그 사람의 속도 모르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다시 고시원으로 돌아왔죠.




그러던 어느 날 새벽 3시쯤 됐을까. 그날따라 하도 잠이 안 와서 불을 켰는데,

세상에~ 아주 큰, 그야말로 손바닥만 한 바퀴벌레가 벽에 딱 붙어있는 거예요.

1층이 횟집인데 열린 창문 틈으로 올라온 거더라고요.

그렇게 큰 벌레는 난생처음 본 저는, 잡을 생각은 꿈도 못 꾸고 한 밤중이라 연락도 못하겠고,

벌레만 계속 째려만 보다가 아침 6시가 되자마자 그 사람에게 전화했어요.


“저.. 206호인데요. 제 방에 커다란 벌레가 나왔는데 들어가서 좀 잡아주실래요?”

“예. 제가 잡아놓을게요. 걱정 마세요.”

통화를 마치고 안심한 저는 그 날 면접에다 친구와 약속까지 있어서,

또 그 사람과 마주치기도, 그 방에 들어가고 싶지도 않아서 외출했다가 오후 늦게 들어갔어요.


“저.. 벌레... 잡으셨어요?”

“아... 이 놈이 제가 가까이 가니 발소리를 듣고 숨어버렸네요. 하하하!!!

지금 들어가서 잡으면 되죠. 여기서 기다리세요.”

"뭐라고요? 아직까지 안 잡으셨으면 어떡해요~  전 총무님만 믿고 있었는데..."


나중에 들으니 그 사람은 저 없을 때 잡으면 저랑 얘기를 못하니 처음부터 안 잡고 기다리고 있었대요.

안 잡은 핑계가, 벌레도 여자와 남자 발소리를 구별한다나 뭐라나.


어쨌든 그 사람은 제 방에 들어가서 일부러 쿵쿵 소리까지 내며 바퀴벌레와 사투를 벌였어요.

“이 놈이 안 죽으려고 발악을 해서 잡느라 애를 좀 썼네요. 어쨌든 잡았으니까 걱정 마세요.

그런데 오늘 그 방에서 주무시는 건 힘드시겠죠?"


그 사람은 제 걱정에 방도 바꿔주고, 이불과 베개도 새 걸로 꺼내 주고,

옮긴 방에도 벌레가 나올까 봐 미리 살충제를 뿌려놨더라고요. 그때 살짝 감동했어요.

‘나 싫어하는 거 아니었나? 훗, 센스가 좀 있네.’


그날 밤 침대에 누워서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에 기분이 좋아져서 그 사람에게 문자를 보냈어요.

“오늘 감사했어요. 근데 총무님..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그 후로 저희는 문자를 주고받는 사이가 됐고 급속도로 친해졌죠.

둘 다 타향에서 상경해 힘들 때 서로 의지하는 가족이 되어주었고,

8년을 연애 끝에 작년 1월에 결혼해 진짜 가족이 됐어요.


이 사람을 놓치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아 제가 먼저 결혼하자고 했어요!  파란 하늘이든 뿌연 하늘이든 '이 사람'과 함께 보고 싶어서.


둘 다 불투명한 미래 때문에 참 많이도 고민한 결혼인데, 하고 보니 '진작에 결혼할 걸' 왜 그토록 멀리 돌아왔나 싶어요. 언젠가 좋은 날이 올 거라고 항상 격려하고 서로 용기를 주던 저희 바퀴벌레 부부.

이제까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갈등이 생기면 현명하게 대처할 겁니다.

결혼은 이미 만들어졌고, 결혼생활은 앞으로 만들어가는 거니까요.   




작가의 이전글 이 사람과 결혼하길 잘한 걸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