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혼한 지 4년 차가 됐다. 한 번의 이혼경력에도 남자 보는 눈은 높아지지 못했다. 남편은 충동적인 성격과 무기력한 기질, 강한 자존심에 조금만 거슬려도 크게 분노했다. 비수가 되어 꽂히는 막말, 아이 앞에서도 이어지는 폭언과 외도에 그와 헤어질 생각은 수 백 번도 더했다. 경찰 신고도 수십 번, 그만큼 상담도 여러 번 받았지만 남편은 내가 원하는 자상한 남자가 되진 못했다.
연애 때 이를 알면서도 재혼에 신중하지 못했던 내 잘못도 있으니 그의 기질과 성향을 이해하려고 했지만, 그가 내뱉은 폭언들은 죽을 때까지 용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주변에선 이혼이 답이라고 하지만 두 번 이혼이라는 결정은 쉽지 않다. 점점 커가는 아이를 그에게 맡길 순 없고 집도 절도 없는 상황에서 무조건 헤어지는 것이 맞는 선택일까. 벼랑 끝에 몰린 지금 후회하지 않을 완벽한 정답이 있을까. 수천번 고민하지만 여전히 답은 오리무중이다. 감정이 가라앉으면 언제나처럼 달라지겠다고 결심한 그를 좀 더 그의 입장에서 지켜보기로 했다.
먼저 여름에는 작업장 온도가 40도까지 올라가고, 추우면 손발이 꽁꽁 얼어붙는 회사의 열악한 환경에서 큰 불평 없이 일하는 모습이 먼저 보였다. 화가 나도 아침 7시면 어김없이 회사로 출근하는 성실함과 책임감도 눈에 들어왔다. 자신을 집안의 가장으로 대우해 주길 바라는 그의 말대로 '고생했다'는 말을 자주 해주었다. 아이에게는 아빠라는 가장의 위치를 설명해 주고, 퇴근 후 아이에게 방해받지 않는 휴식시간을 보장해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를 위해서가 아닌 나와 가정을 위한 처절한 노력이었다. 남편의 분노스위치를 누르지 않기 위해 그가 싫어하는 소리보다 긍정적인 얘기로 전환시켰다. 달라진 내게서 뭔가를 느꼈는지 남편은 전처럼 작은 일에 분노하지 않았고, 내 노력을 고마워했다. 아이를 가지기 전에 함께 했던 보드게임을 다시 꺼냈고, 서툴고 거칠지만 대화와 웃음도 조금씩 늘어났다.
내게 잘못한 것만 생각하며 원망만 했던 남편을 다른 각도로 바라보기로 했다.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도록 경제적으로 뒷받침해 주고, 피곤한데도 아이와 최선을 다해 놀아주는 점. 부족한 음식 솜씨와 서툰 집안일에도 잔소리하지 않는 점이 그도 나름 노력해 왔구나. 나만 이 관계를 불행하다고 생각하진 않았구나. 그도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 애썼구나.
자극적이고 생산적인 경험만이 행복을 주는 거라 생각했는데 나이를 먹으면서, 아이가 커가면서 소소한 일상이 감사하다. 엄마들 세계의 은근한 비교와 질투, 경쟁심리에 피곤을 느껴 시선을 돌려보니 엄마를 바라보는 아이의 함박웃음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평범한 일상에 집중하니 '이런 게 행복이지'하며 만족하고 감사하는 시간이 점점 늘어났다. 남과의 비교는 덧없음을 깨닫는 게 포인트다.
뭐가 그리 못마땅했는지 나는 살면서 불평불만이 많고 불편한 장소와 불편한 사람도 많았다. 언제나 자극적인 쾌락을 좇았고 남들이 다 가는 핫한 곳을 가지 않으면 뒤처지는 것 같았다. 나를 불편해하고 싫어하는 기미를 느끼면 잠 못 이루는 밤도 많았다.
남편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거슬리는 점을 내 구미에 맞게 고치려 했는데 그가 나를 불행하게 하는 이유만 찾았다. 그런 그를 지켜보고 이해하려 애쓰니 세상을 보는 시각이 유연해졌다.
자연스레 내 마음도 돌아보고 성찰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타인을 이해하는 공부가 됐다.
나와는 결이 다르고 기질이 아예 반대인 사람은 물론 이기적이고 편향적인 사람, 속물적이고 강약약강인 사람은 나를 이해 못 하고 싫어하는 게 당연하다. 상대를 굳이 내 입장에서 고치려 하지 않고 관계에 연연하지 않으니 사람 만나기가 편해졌다. 진심으로 응원하고 힘들 때 걱정해 주는 주변 사람들에 '나는 고마운 게 많은 행복한 사람이구나' 확신하고 자존감도 조금씩 회복됐다.
15년 만에 만난 대학동창들은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냐며 물었다. 무슨 일에서든 예민하고 늘 뾰족한 고슴도치 같은 사람이었는데 한결 유연해진 나를 보고 놀랐다. 어렸을 때부터 집에서도 늘 주눅들며 긴장하던 나는, 매사에 투덜거렸고 관계도 서툴렀다. 언제나 백 프로 마음에 들어야만 만족했고 완벽한 것만 인정했다. 의심하고 방어하는 것이 나를 지키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살면서 우리가 완벽한 존재가 될 수 없듯이, 정답만을 선택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완벽주의에 절어있고, 평가하고 평가받는 세상에 살고 있다. 나는 완벽한 존재인 것처럼 착각하고 내 눈앞의 상대도 완벽한 인간이길 바란다. 마치 정답 같은 인생을 살 수 있는 것처럼.
행복 또한 완벽한 상태 또는 남들이 인정하는 것을 이루었을 때나 쾌락이라는 고자극에 있는 줄 알았는데, 오히려 아무것도 아닌 평범한 일상에 꼭꼭 숨어있었다. 40년이 걸려서 찾은 행복이다. 행복은 상대적이 아니라 절대적이다. 조급해하지 말고 삶의 감사함을 인정하고 자신의 행복을 발견하자.
관계가 성가시면 삶도 성가실 수밖에 없다. 삶이 곧 관계이기 때문이다.
- 남인숙, <인생을 바꾸는 결혼 수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