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우울하고 싶지 않습니다.

by 책가게

올해만큼 한 해가 빨리 흘러간 적은 없었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유난히 일이 풀리지 않아서인지 하루하루가 그저 버티는 시간 같았다. 시간이 지나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고 경찰과 상담센터, 정신과까지 찾을 만큼 정신적 고비가 찾아왔다.


무력감이 극에 달했을 때 하루 종일 누워서 휴대폰만 들여다보았다. 그러다 우연히 유튜브 <최민준의 아들 TV>에서 '자존감은 소속감과 자기 효능감에서 나온다'라고 했다. 그의 한 마디는 나를 살려주는 동아줄 같았다. 전에는 진부하다고 생각했던 '자존감'이는 단어가 지하 100층까지 떨어진 내 마음의 원인을 짚어주는 듯했다.


당시의 나는 소속감도 자기 효능감도, 그 어떤 것도 바닥난 상태였다. 경력을 살린 일자리를 어렵게 구해도 한두 달만에 그만 나오란 해고 통보가 반복됐다. 자격증 이수를 위한 실습 기관에서는 4주간 발에 땀나도록 뛰어다녔지만 "이 쪽 일과 맞지 않다"는 센터장의 평가를 들었고, 잠시나마 살아났던 활기마저 빠져나가 버렸다.




내가 하는 대부분의 말이 묵살되는 억압적인 친정에서 자라, 말 한마디 제대로 꺼내본 적이 없었다. 스스로에 대한 확신도 없었다. 학창 시절 또한 불평이 많고 예민했다. 대화하는 방법을 몰라 친구와의 관계도 불안정했다. 친구의 말에 맞장구치며 공감하기보다, 누군가를 향한 험담으로 내 감정을 인정받으려 했다. 그게 내가 상대와 소속감을 느끼는 방식이었던 걸까.


가족에서도, 학교에서도 나는 늘 어딘가 떠 있는 사람이었다. 성인이 되어서는 그 텅 빈 마음을 연애로 채우려고 했다. 하지만 여기저기 구멍 난 그릇 같은 마음을 타인이 채울 순 없었다. 한 곳에 만족하지 못하고 '여기보다 나은 곳이 있을 거야'라며 직장도 철새처럼 옮겨 다녔다. 행복 또한 '지금, 여기'가 아닌 유토피아에 있다고 생각했다.


몸도 마음도 완전히 지쳐있던 차에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그는 처음부터 친절하지 못한 사람이었고 나에게는 착하고 수용적인 아내의 역할을 바랐다. 욱하면 괴물처럼 변하는 그였지만, 나는 정착할 곳이 필요했고 그저 가정을 이루고 싶었다. 아이가 생기면 그도 변할 거라 기대하며 경솔하게 재혼을 결심했다. 그러나 결혼 후 그의 폭언은 더욱 심해졌고, 나는 매일 재혼을 후회하며 남편의 싫은 점만 되뇌었다.


중학생 때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라고 다짐했지만, 결국 나는 친정엄마의 삶의 태도를 자연스럽게 내면화했다. 남편은 나와 결혼한 이유가 '착해서'라고 했다. 남편과의 갈등이 극에 달하면 나는 친정엄마에게서 배운 방식대로 그에게 반응했다. 상대의 기분을 살피고, 나는 늘 움츠러드는 방식으로. 나는 단지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었을 뿐이지만, 내 행복을 남에게 내어주며 살아온 너무나 수동적인 사람이었다.



나는 불행했다. 남의 감정을 살피고 눈치를 보며 늘 누군가에게 기대어 살았다. 그렇게 살아온 방식을 나이 마흔이 넘어서야 인식했다. 이 삶의 태도를 바꾸지 못한다면, 나는 죽을 때까지 불행할 것이고, 평생 후회할 것이다.


이불속에서 박차고 나오는 순간, 삶의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 첫 번째 발걸음으로 내 이름을 바꾸기로 결심했다. 권위적인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으로 수동적으로 살기보다 이제는 내 인생을 주도적으로 살아가겠다는 선언이다.


내가 인정받지 못했다고 해서 스스로 그런 사람이라 단정 짓는 것은 위험하다. 나를 갉아먹는 생각은 그만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자. 후회하지 않으려면 지금, 이 순간부터 선택해야 한다. 내 감정의 주인도, 내 삶의 주인도 나이기 때문이다.


나를 가련한 희생양이나 울분에 찬 피해자가 되기보다
기왕이면, 내가 처한 상황의 주인이 되기로 하자.
- 엄유진, <순간을 달리는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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