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정신과 약을 4일 만에 끊은 이유.

by 책가게

남편과 다투기만 하면 이혼 생각을 했다. 생각이 많고 예민한 나는 그렇게 매번 도망칠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론 행복은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글을 쓰며 마음을 다잡았다. 이미 최악인 남편과의 결혼 생활을 긍정적으로 돌아볼 노력을 참 바지런히 했다.


폭언하고 막말하는 남편이 나를 힘들게 해도 그를 고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예민한 내 성정이 온화해지면 폭력적인 남편이 바뀔 거고 아이가 생기면 좋아질 거라 생각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좋아지지 않으니 그에게서 벗어나야 했지만, 그럴 용기도 없었다. 연애할 때도 알았으면서 결국 그와 결혼했으니 그가 바뀌지 않는 건 내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이미 한 번의 이혼 경력은 내게 결함이 있다고 증명하는 것 같아, 남편보다는 나를 의심하며 끊임없이 괴로워했다.


이혼 전적이 있음에도 남자 보는 눈이 좋아지지 않은 내가 한심했다. 매일 맘카페를 드나들며 나보다 불행한 사연을 찾아 위로 삼았다. TV속 막장 부부들의 사연들도 나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쌍방으로 잘못한 부부를 보면서 나는 남편을 저렇게 들들 볶지 않는데 왜 남편은 나를 괴롭게 하는지, 아이에게 따스한 아빠를 만들어주지 못하는 것을 자책했다.

남편을 만나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억만 번도 넘는다. 불가능한 것도 반복해서 되뇌면 가능할 것 같았고, 꿈을 꾸면 과거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은 착각도 들었다. 낮동안 현실세계에 살며 마음을 다잡아도, 퇴근 후 집에 돌아온 남편의 폭언에 물들어지진 않았다. 경찰 신고를 하고 숱하게 상담을 받아도 좋아지는 건 일시적이었고, 남편의 기분에 따라 집안의 공기가 달라지니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불안한 마음이 절정에 이르렀다. 해야 할 일을 미루고, 여기저기 널브러진 빨래만큼 내 정신도 널브러져 있었다. 상담소를 정신없이 찾아다녔고, 진심으로 공감해 주며 위로하는 전문가의 도움에도 남편에게서 정신적으로 분리되지 못했다. 그렇게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정신과를 찾았다.


특별히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뜬 눈으로 보내는 밤이 늘어가고,
청소나 주변 정리하는 것을 이유 없이 자꾸 미루게 되거나,
잘 챙겨 먹었던 식사도 바쁘지도 않은데 대충 때우거나 거르게 될 때,
단지 내 '몸'이 피곤하고 게을러져서라고 생각하며 넘어가 버리는 일들이
사실은 내 '마음'이 지치고 힘든 상태라는 증거일 수 있다.
힘들 때 나 자신을 괴롭히는 일이 슬프지만 제일 쉬운 일이니까.

-더블유, <오늘은 힘껏 날 안아주기로 했다>


내 얘길 들은 젊은 의사는 남편은 절대 바뀌지 않을 테니 선택지는 하나뿐이라고 했다. 그 말의 뜻을 애써 외면했다. 남편이 바뀌지 않는다는 말이 사형선고처럼 들렸다. 사실 힘들어도 약에 의존하고 싶지는 않았다. 기분도 자신이 선택할 수 있고, 내면도 강하다고 생각했는데 할 수 있는 게 없다니 심리적으로 무너졌다. 돌이킬 없는 과거와 바꿀 수 없는 남편, 내가 괴롭다는 그 사실에 취해있었다.


집안일은 점점 쌓이고, 식사는 허기질 때만 대충 때웠다. 해야 할 일을 미루면서도 나는 '우울하니까 그래'라며 상황을 합리화했다. 나는 우울한 기분에 도취되어 있었다. 약을 먹으면 조금이라도 나아질 줄 알았지만 오히려 더욱 몽롱해졌다. 예민한 감각이 둔해질 수 있다더니 이거였구나. 약이 맞지 않는 것 같아 4일 차에 바꿨지만 기분은 그대로였다.


여전히 무기력했던 4일째 아침, 네 살 아들이 말했다. "엄마가 너무 자랑스러워." 나는 매일 심리적으로 무너지고 있었고 나약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자랑스러운 엄마라는 말을 들을 자격이 없었으므로 인정하지 못했지만 삶의 태도를 바꾸기엔 충분했다. 도망칠 준비만 하고 있던 내게. 그리고 인터넷에서 우연히 이 글을 보았다. 그리고 약 먹기를 중단했다.

우울함에 도취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내게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든 구절.
머릿속에 생각이 많은 이유는 생각을 글로 적지 않기 때문이고
불안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행동하지 않기 때문이고
매일 해야 할 일을 미루는 이유는 구체적인 계획이 없기 때문이고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이유는 생각을 제대로 정리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문제는 해결책이 존재한다.
지금 필요한 건 그것을 실행할 용기뿐이다.

-지브리 애니메이션, [귀를 기울이면]


다시 펜을 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쓰기 시작했다. 어차피 남편은 바뀌지 않는다. 아무리 경찰이 출동하고 고소장이 집으로 날아들어도 그는 자기 기분대로 움직였다. 바꿀 수 있는 건 내 마음가짐과 태도뿐이다. 비싼 값을 주고 얻은 것은 그 사실뿐이었다. 나를 불행하게 만들었던 것은 나 자신이었다.


그동안 '남편'이라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 때문에 '나' 자신을 불행에 빠뜨리고 지옥에 살고 있었다.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것을, 고집과 욕심 때문에 놓지 못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남편과의 정신적인 분리였다. 그의 기분에 내가 휩쓸리지 않는 것. 그의 기분과 화라는 감정, 즉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에 괴로워하지 말자. 내가 해야 할 일은 주어진 오늘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2025. 07.28 <정신과 약을 4일 만에 끊고 쓴 일기>
내가 할 수 있는 것,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에 집중하자. 내가 선택한 것에서 회피하지 말고 인정하고 받아들이자.

모든 것은 내 선택의 결과이다. 나는 나다. 모든 것은 내가 만든 결과다. 스스로를 인정하자.
나의 특별함이 내 인생이다. 누가 조언하는 것은 정답이 아니다. 그의 주관일 뿐이니 휩쓸리지 말자. 그는 그의 인생을 살고 나는 내 인생을 산다.

내 인생대로, 내 속도대로 내가 가야 할 방향은 내가 정한다. 남이 정한 대로 내 인생의 무게를 정하지 말자. 그는 그가 정한 인생의 무게와 방향대로 가는 것이고 나는 내 마음속 목소리를 따라서 간다.

내가 정한 행복의 방향대로. 남이 하는 게 행복해 보여도 불안해할 필요 없다. 내 마음이 행복을 얘기한다면 그게 정답이다. 답은 내가 알고 있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어떤 누구의 인생도 결코 가볍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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