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에 휘둘릴 것인가 VS감정을 선택할 것인가
고쳐지지 않는 말버릇이 있다. 일이 끝나면 ‘괜히 했네’, ‘이러지 말고 저렇게 할걸’하는 후회가 익어버려 굳어진 습관이다. 마치 모든 일이 내 맘대로 되기라도 하는 것처럼. 해내지도 못하면서 완벽을 꿈꾸는 사람처럼. 인생은 뜻대로 되지 않는 걸 모르는 사람처럼.
후회로 자책하는 동안 나는 언제나 과거에 머물러 있었다. 대과거인 ‘그때 그 사람을 만나지 않았어야 했는데’부터, ‘아까 그 말은 하지 말걸’까지. 말로는 행복을 외치면서 늘 불행을 선택해 왔다. 원망과 자책, 남 탓으로 이어지는 이 나쁜 습관을 고치지 않면 나는 영원히 불행할 것이다.
완결되지 않은 과거와 화해할 때 우리는 현재를 살 수 있다. 과거에 목매는 사람은 과거를 다시 겪기 마련이다.
-크리스 코트 먼, 해롤드 시니츠키 <감정을 선택하라>
앞으로 어떻게 살 거냐는 질문의 답은 그 수만큼 다양하지만 목적은 결국 '행복'에 이르는 것 아닐까. 그 감정은 지극히 주관적이라 감정의 주인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지만, 소용돌이치는 감정의 한복판에서 고요함을 갖기란 만만치 않다.
일에 확신이 필요하듯 행복 또한 확신이 필요하다. 결혼 전 우리는 설레는 마음으로 프러포즈 반지를 끼운다. 꽃길만 걷겠다는 마음으로 슈즈를 신고,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신부라는 호칭에 설레며 앞으로의 결혼 생활을 기대한다. 옆에 있는 이 사람과 함께면 평생 행복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을 가진다.
하지만 기대했던 그에게서 나온 말 한마디에 실망하고,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원망하고, 이럴 거면 결혼하지 않았을 거라며 꽃길을 방해한 그에게 분노한다. 남자는 피곤해서 결혼하고 여자는 호기심에 결혼한다고 오스카 와일드가 말했다. 그래놓고 둘 다 실망한다며 웃픈 명언을 남겼지만 모든 걸 내려놓고 살기엔 내 젊음이 아깝고 인생에 거는 기대가 작지 않다.
허구한 날 부부싸움을 하는 부모님이 저녁엔 서로의 식사를 챙기는 걸 보고, 행복은 어쩌면 심플한 감정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조금 전까지 험한 말을 했던 부모님이 금세 웃으며 스킨십할 때는 기괴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런 부모님의 관계가 어릴 적 내 눈엔 단순해 보였다.
'어차피 헤어지지도 않을 거면서 그냥 사이좋게 지낼 순 없나? 웃으면 안 싸울 것 같은데 도대체 왜 저런 걸로 화를 내실까?'
나는 부모님처럼 싸우지 않고 화목한 가정을 꾸리겠다고 자신했지만 결혼 생활은 마음먹은 대로 쉽지 않다. 밉다가도 고맙고, 안쓰럽다가도 괘씸한 남편. 안정된 것 같으면서도 불안하고, 좋다가도 어딘가 허탈한 일상. 아이를 보면 사랑스럽다가도 짜증이 솟구치는 이 아이러니한 감정의 정체는 뭘까? 나는 행복한 걸까, 불행한 걸까?
매일같이 싸우던 부모님을 보면서 행복의 감정은 무슨 모양일까 궁금했던 초등학생 때, 행복이 뭐냐는 글짓기 숙제에 이렇게 썼던 것을 기억한다.
'행복은 자기만족이다'
어릴 적 느꼈던 감정이 답이 될 수 있을까? 그때나 지금이나 내가 내린 답은 행복이란 감정은 그냥 그러기로 결정하는 거다.
감정의 주체는 내 것이니 다른 사람 때문에, 어떤 일이 날 불행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면 떨쳐버려야 한다. 남의 말 한마디에 무너지기로 했으면 그 감정은 내 것이 아니다.
부정적인 감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계속 되뇐다면 팔이 아파도 무거운 물건을 계속 들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냥 내려놓으면 된다. 감정은 내 것이므로 오롯이 내가 선택하기에 달렸다. 감정을 선택할 수 있다는 말은 진짜다.
어떤 사람이 나를 화나게 하는 것은 내가 그 감정을 선택한 것이지, 그가 나를 화나게 만든 것은 아니다. 어떤 현상과 사건을 놓고 나타나는 반응양식은 바로 내가 만든 것이다.
- 이재명 명상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