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함이 필요한 날엔 믹스커피를 마신다
엄마는 식후에 늘 예쁜 커피잔에 믹스커피 한 포를 휘휘 저어 마신다. 좋은 향의 건조분말에 프리마, 흰 설탕까지 듬뿍 든 달콤함이 잠시 행복해지는 '치트키'라고나 할까. 몇 달 전에 본가에 가서 믹스커피는 몸에 안 좋으니, 한 번씩은 원두커피를 드셔 보시라고 원두를 선물해 드렸다. 엄마는 "어? 이거 우리 집에 있는데?" 라며 양파가 담긴 드립 서버를 가져오시는 것이 아닌가. 엄마는 꽤 오래전 누군가에게 선물 받은 드립 세트를 부엌 선반 위에 방치해 두다가, "이건 뭐고" 하시며 정작 중요한 '드리퍼'는 버리고 '드립 서버'에 양파를 심어놓으신 것이다. 드리퍼에 끼운 필터에서 쫄쫄쫄 커피가 흘러나왔다. "뭐 괜찮은데, 난 믹스커피가 더 좋다~" 엄마는 이따금 에이스 과자를 뜨거운 믹스커피에 푹 담가 먹곤 했다. 딱딱했던 에이스에 달짝지근하고 향긋한 커피가 스며들어 촉촉한 식감으로 변하면 입에 넣자마자 사르르 녹아내렸다.
맞다. 나 역시 엄마처럼 믹스커피를 좋아한다. 요즘은 카페에 가더라도 아메리카노, 콜드 브루 등 다양한 쓴 커피들에 선택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지만, 나 역시 유독 달콤함이 필요한 날엔 믹스커피를 마신다. 대학 때 시험공부를 하면서 한잔, 시련의 아픔을 안고 우울함을 떨쳐 버리기 위해 또 한잔, 면접에서 떨어지고 다음 면접을 준비하기 위해 다시 또 한잔. 원두커피와는 다른 '진하게 타서 마시는 믹스커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그 시절 부모님의, 우리의 피로회복제가 아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