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빛의 아름다움이 충분히 발휘되는 8.2초
너와 나의 만남은 평범했다. 2019년 늦은 여름, 우리는 긴 장마가 이어지던 날 통닭집에서 만났다. 어색한 분위기 속 질문과 대답이 오고 갔다. 활동적이고 여행을 좋아하는 나와 달리 넌 집에서 유튜브를 보며 뒹굴 거리기를 좋아한다며 수줍게 웃었다. 긴장한 모습이 나쁘지 않았다. 며칠 뒤 원주의 대규모 축제인 '댄싱카니발' 행사에서 두 번째 만났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는 곧 거세졌고, 금방 옷이 젖었다. 붐비는 사람들 틈에 간신히 자리 잡자 넌 몇 가지 주전부리를 가져오겠다고 했다. '철퍼덕' 한 손에 어묵과 또 한 손엔 간장을 담은 용기를 가져오다 미끄러지며 비에 젖어 축축해진 바지에 간장이 쏟아졌다. "망했다…" 네가 중얼거리는 목소리를 들었다. 고약한 간장 냄새가 코 끝을 찌릿하게 자극했지만, 당황하는 모습이 싫진 않았다. 세 번째 만남은 원주천을 따라 이어지는 산책길이었다. 갑자기 일기예보에도 없던 소나기가 쏟아지는 것이 아닌가. 근처 정자에 앉아 20분을 기다렸지만 좀처럼 비는 그칠 생각이 없었다. 넌 집이 가까우니 우산을 가져오겠다고 했다. 5분 정도 지났을까. 소나기에 온 몸이 흠뻑 젖은 채 한 손에는 우산을 들고 뛰어온 네가 보였다. 환하게 웃으며.
남자가 여자에서 첫눈에 반하는 시간은 눈빛의 아름다움이 충분히 발휘되는 8.2초, 반면 여자는 남자처럼 한 순간에 빠져드는 경우는 잘 없다고 한다. 그럼에도 내가 호감을 가진 건 세 번째 만남에서 아무 짧은 순간이었다. ”싱그러운 초록빛 여름날, 뿌리가 다른 두 나무가 어우러져 하나가 되려 합니다." 어쨌든 우리의 만남은 2년 뒤 이른 여름 좋은 결실을 맺었다. 문득 신영복 선생의 '함께 맞는 비' 구절이 떠오른다.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입니다. 함께 비를 맞지 않는 위로는 따뜻하지 않습니다.' 함께 비를 맞으며 걷기 좋은 사람이기를 바란다. 너와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