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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저 Jul 06. 2021

버스 안의 시간은 무의미하지 않다

어쩔 수 없이 운전을 하지만 좋아하진 않는다.


느지막이 면허를 따고 운전을 시작했다. 주변 상황이 만든 나의 선택이랄까.  근무지는 경남 합천이었다. 언젠가 귀촌을 꿈꿨으나 시골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할 줄은 몰랐다.  8시가 되자 거리는 어둑해졌고, 유일한 마트에만 몇몇의 사람이 오고 갔다. 가로등조차 없는 마을에는 고요함이 감돌았다. 야로면에서 회사가 있는 가야면까지 거리는 7.6km, 10 이면 도착하는 짧은 거리였지만,  운전도 하지 못하는 뚜벅이였다.  시간마다 오는 버스에 올라타  마을을 돌아 도착하면  30분이 걸렸다. 퇴근길은 더욱 고난이었다. 자가로 퇴근하는 직원의 동태를 살폈다가 눈치껏 따라나섰다.   만에 어쩔  없이 면허를 취득하기로 결심했다.


어쩔  없이 운전을 하지만 좋아하진 않는다. 매주 부산 본가에 가기 위해 버스를 탔다. 회사 앞에서 버스를 타고 고령에 도착해서 부산으로 가는 시외버스로 갈아탄다.   자리  좌석 우측 창가 자리는 나의 지정석이다. 기다리는 시간까지  포함하면 편도  시간이 걸린다. 그럼에도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순간이 좋았다. '차도 있고 운전도 하는데  버스를 타냐' 직원들의 말에도  확고했다. '버스를 타는 것이 편하다'라고.


버스는 등하교를 든든하게 책임져준 존재이자, 여행에 두 발이 되어준 조력자였다. 백팩을 메고 버스에 올라 창가 자리에 앉아 멍하니 바깥을 바라보는 순간, 창밖 횡단보도의 걸음이 느린 할머니를 보는 순간, 빗방울이 창문에 맺혀 흘러내리는 걸 보며 몇 년 후 나의 모습을 상상하던 모든 순간, 버스 안의 시간은 무의미하지 않다. 햇살 아래 조금씩 푸른빛이 번지는 가로수들이 있고 누군가 심어 놓은 봄꽃들이 있다. 쉬지 않고 되풀이되는 계절도 볼 수 있다. 나에게 잠시 숨을 고르며 멍하니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기도 하다. 지금도 어쩔 수 없이 운전을 하지만 버스를 타는 것이 역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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