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 없이 운전을 하지만 좋아하진 않는다.
느지막이 면허를 따고 운전을 시작했다. 주변 상황이 만든 나의 선택이랄까. 첫 근무지는 경남 합천이었다. 언젠가 귀촌을 꿈꿨으나 시골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할 줄은 몰랐다. 밤 8시가 되자 거리는 어둑해졌고, 유일한 마트에만 몇몇의 사람이 오고 갔다. 가로등조차 없는 마을에는 고요함이 감돌았다. 야로면에서 회사가 있는 가야면까지 거리는 7.6km, 10분 이면 도착하는 짧은 거리였지만, 난 운전도 하지 못하는 뚜벅이였다. 한 시간마다 오는 버스에 올라타 온 마을을 돌아 도착하면 딱 30분이 걸렸다. 퇴근길은 더욱 고난이었다. 자가로 퇴근하는 직원의 동태를 살폈다가 눈치껏 따라나섰다. 한 달 만에 어쩔 수 없이 면허를 취득하기로 결심했다.
어쩔 수 없이 운전을 하지만 좋아하진 않는다. 매주 부산 본가에 가기 위해 버스를 탔다. 회사 앞에서 버스를 타고 고령에 도착해서 부산으로 가는 시외버스로 갈아탄다. 맨 뒤 자리 앞 좌석 우측 창가 자리는 나의 지정석이다. 기다리는 시간까지 다 포함하면 편도 네 시간이 걸린다. 그럼에도 난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순간이 좋았다. '차도 있고 운전도 하는데 왜 버스를 타냐' 직원들의 말에도 난 확고했다. '버스를 타는 것이 편하다'라고.
버스는 등하교를 든든하게 책임져준 존재이자, 여행에 두 발이 되어준 조력자였다. 백팩을 메고 버스에 올라 창가 자리에 앉아 멍하니 바깥을 바라보는 순간, 창밖 횡단보도의 걸음이 느린 할머니를 보는 순간, 빗방울이 창문에 맺혀 흘러내리는 걸 보며 몇 년 후 나의 모습을 상상하던 모든 순간, 버스 안의 시간은 무의미하지 않다. 햇살 아래 조금씩 푸른빛이 번지는 가로수들이 있고 누군가 심어 놓은 봄꽃들이 있다. 쉬지 않고 되풀이되는 계절도 볼 수 있다. 나에게 잠시 숨을 고르며 멍하니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기도 하다. 지금도 어쩔 수 없이 운전을 하지만 버스를 타는 것이 역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