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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저 Nov 20. 2022

오래도록 남는 여운_내 인생의 컬처

작은 추동을 일으키는 바람이 되길


음악, 영화, 책 여운이 남는 내 인생의 컬처를 찾았다.


AARON CARTER <I'm all about you>


감수성이 풍부했던 2001년, 친구들과 방과 후 자주 방문하는 아기자기한 팬시용품을 파는 덕천동 핫플레이스가 있었다. 좋아하는 가수의 앨범이 나오는 날에 핫플레이스는 더더욱 핫하게 변한다. 가게 사장님이 손수 적은 번호표를 받고 좋아하는 오빠들의 앨범을 사기 위해서 하염없이 기다린다. 아이돌 1세대인 신화, god를 좋아하는 친구들 틈에서 난 달랐다. 노란색 배경에 주황색 맨투맨을 입은 비슷한 또래인 금발의 미소년, 벡스트릿보이즈 닉 카터의 동생인 아론 카터! 국내 가수들 틈 사이 가게 내부에 붙여진 포스터를 보고 그때부터 푹 빠졌다. 중학생인 난 CD를 살 돈이 없어서 테이프로 만족해야 했다. 휴대용 마이마이로 아론 카터 앨범을 들으며, 지금처럼 휴대폰으로 검색해서 가사를 볼 수 있는 게 아니라서 인터넷에서 겨우 찾은 영문 가사를 출력해 들고 다니면서 흥얼거렸다. 영어 공부도 할 수 있으니, 팝 가수가 낫지 나만의 방어기제도 만들었다. 가장 좋아했던 곡은 변성기 전의 미국 미소년의 허스키하면서 살짝 비음이 섞인 발음이 매력적인 곡인 I'm all about you. 금발의 미소년에게 변성기가 찾아오고 외모가 변하기 전까지 2~3년은 줄 곳 좋아했었다. 2010년부터는 법적 문제에 휩쓸린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렸고, 얼마 전 뉴스에서 그의 비보를 알게 되었다. 무언가에 홀린 듯 아론 카터의 전 곡을 들었다. 지금은 노래를 듣는 도구인 카세트테이프도 가사를 출력할 필요도 없이 스마트폰에서 손가락 하나만 터치해도 가능했다. 익숙한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I'm all about you>라는 곡에서 나도 모르게 가사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신기했다. 10년 전, 귀밑까지 자른 단발머리를 하고 긴 교복을 입고, 방과 후 팬시점에 들러 친구들과 하하 호호 웃는 그때의 내가 생각났다. 일찌감치 스타가 되었지만 내내 불우했던 금발의 미소년은 가장 찬란했던 10대에 남긴 곡으로 마지막까지 여운을 남겼다. 남은 여운이 그때의 나인지, 금발의 미소년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Stephen Daldry <The Reader>


며칠이 지나도 종종 생각나고 생각에 깊게 빠져들게 했다. 개봉은 2009년도였지만, <The Reader>라는 동명을 원작 소설을 읽고 뒤늦게 영화를 찾아봤다. <타이타닉>, <이터널 선샤인>으로 익숙한 배우 케이트 윈슬렛이 여주인공 한나로 출연했다. 최근엔 영화를 보고 평론가의 유튜브를 찾아보는 습관이 생겼는데, 어느 알고리즘에 이끌려 더욱 뒤늦게 <The Reader> 영화 평론까지 봤다. 뇌리에 박혀서 잊히지 않았던 영화가 주는 분위기가 좋아서 몇 번을 봤었지만 언제나 한나가 자살하는 이유에 대해 줄 곳 생각했다.

서로 사랑한 10대 소년 마이클과 30대 여인 한나, 한나는 매번 마이클에게 책을 읽어주기를 청한다. 그러다 아무런 말 없이 떠난 한나, 8년이 흘러 마이클은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나치 전범 재판 피의자인 한나를 목격한다. 한나는 글을 몰랐다. 글을 모른다는 건 자신의 행위가 어떤 연관성을 띠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은유적 표현이다. 주인공에 공감하면 안 된다는 것을 의식적으로 알면서도 안타까운 마음이 더 들었다. 한나는 옳고 그름을 생각하기보다는 수용소 일 이전과 이후에도 그랬던 것처럼 주어진 일을 맡아 처리했을 뿐이었다. 모르는 것도 죄가 되는 것일까, 모른다는 자체로 면죄부를 줄 수 있을까? 글은 한나에게는 앎이었다고 생각한다. 감옥에서 스스로 글을 깨친 한나는 석방되기 전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글을 알게 되고, 옳고 그름을 알게 되니 뒤늦게 찾아온 죄책감도 있었을 테다. 읽고 생각하고 실천하며 성장하는 앎의 선순환에 대해 생각해 본다. 다만, 영화는 책과 달리 한나의 자살에 대해 열린 결말을 보여준다. 마이클에 대한 한나의 감정까지도 담아서.





황경신 《초콜릿 우체국》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책이다. <생각이 나서>로 대중적으로 유명해진 작가 황경선이 2004년 출간한 책. 20대 초, 불확실엔 미래에 몇 번이나 좌절하고 마음이 말랑말랑 해진 어느 날, 우연히 도서관에 들렀다가 발견했다. 그날따라 감정을 깊숙이 휘젓는 소설을 읽고 싶었다. 초콜릿으로 만든 우체국이라는 묘한 제목에 이끌러 손을 뻗었고, 후루룩 넘긴 책장을 쉽사리 덮지 못하고 도서관에 자리 잡고 읽었던 기억이 난다. 보통 책을 읽기 시작하면 덮을 때까지 다른 일을 하지 않는 편인데, 이 책만은 한 번에 읽기 아쉬워 한 챕터씩 아껴가면 읽었었다. 소설과 에세이를 합쳐 놓은 내용은 더 독특했다. 생각지도 못했던 시점에서 작가가 따뜻하게 이야기를 풀어내고, 현실과 동화 사이에서 묘한 줄타기를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무작정 골랐던 책이 책을 읽게 해주는 시작이 되었던 만큼 몇 번을 봐도 질리지 않는 책이다. 이때부터 황경선 작가의 장편 소설까지 모두 찾아서 봤었다. <나는 하나의 레몬에서 시작되었다>, <모두에게 해피엔딩>, <슬프지만 안녕>, <세븐틴> 등등. 모두가 일상에서 찾은 말랑하고 따뜻한 이야기였다.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었던 제일 좋아하는 글이다. <안녕과 안녕 사이, 헤어질 때의 안녕과 다시 만날 때의 안녕이 같은 말이라서 다행이다. 우리는 같은 곳에서 시작되어 잠시 멀어졌지만 언젠가는 다시 만난다. 지금보다 조금 더 좋은 곳에서, 지금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서.> 오랫동안 깊은 여운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멍하게 있었다. 읽고 읽는 것을 반복하여 이 글이 주는 것은 헤어짐의 안녕이 곧 만남의 안녕이 될 거라는 기대감이었지도 모른다. 자꾸만 읽고 싶게 만드는 동화 같은 단편이 삶의 한 줄이 빛이 되어 위로해 주는 것. 여전히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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