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피는 그때가
꽃들이 만발한 봄은 숙이 씨의 계절이다. 외출 준비에 한창인 숙이 씨는 선물 받은 연한 색 립스틱을 손으로 살짝 집어 올렸다가 다시 내려놓는다. 익숙한 듯 쨍한 분홍색 립스틱을 입술에 바르고 ‘역시 화사해 보이네.’라며 만족한 듯 미소 짓는다. 어느새 벚꽃이 진 자리엔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는 이팝나무가 흐트러진 눈처럼 봄의 정취를 자아낸다. 집 근처 공원을 거닐다 멈춰 서서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어머~ 예쁘다야.” 봄의 계절 오월을 장식하는 튤립, 델피늄, 청포, 데이지, 이름 모를 들꽃까지 각양각색의 꽃들이 그녀의 스마트폰 정원을 장식한다. 별안간 TV에서 흘러나온 노랫말에 눈물이 툭 하고 터진 날이 있었다. 가수 김진호의 <엄마의 프로필 사진은 왜 꽃밭일까> 가사를 읊조리며, 꽃밭에서 사진을 찍는 이유가 꽃이 피고 벌들이 찾아오고 그 안에서 자기가 사랑했던 과거들이 다시 피어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라고 했다. 숙이 씨도 어릴 적엔 엄마가 꽃을 좋아하고 나이가 들면 왜 그렇게 붉은색 옷을 입는지 이해를 못 했다고 했다. 스물넷 결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나고 당장 닥친 일을 해결하느라 주변을 돌아보지 못했고, 30여 년이 흐른 뒤 조금씩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알록달록 꽃을 보고 지나가 버린 젊음에 대한 그리움이 생기고, 유한한 시간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진다고 꽃이 아닌 건 아니지만 꽃이 피는 그때를 그리워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변화 속에 머물고 싶다. 꽃이 폈을 때 생생하게 느껴지는 젊음의 순간을 남기고 싶어서 오늘도 꽃밭에서 사진을 찍어본다.
오늘 생일을 맞은 숙이 씨의 프로필 사진을 본다. 노란 유채꽃밭 속에 폭 파묻혀 다시 피어나고 싶은 마음, 청춘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드러내 본다. ‘엄마’라는 말이 들리면 별안간 뭉클해진다. 우리의 시간이 무한한 것으로 생각했던 철없던 시절을 벗어나 유한한 시간이 언젠가 끝나버리고야 말 것이라는 사실을 늘 마음 한구석에 품고 지낸다. 숙이 씨의 꽃밭인 우리는 생기 있고 아름답게 피어서 좋은 벌들을 만나 또다시 피어나겠지. 언제까지나 숙이 씨의 꽃밭 안에 있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