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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동안

-510

by 문득

그는 잘생긴 사람은 아니었다. 아마 이 브런치의 아주 초기 글을 기억하시는 분 중에는 내가 그의 사진을 가지고 초상화를 의뢰했다가 너무 예쁘고 잘 생기게 그린 그림을 보고 수정을 부탁했던 글을 기억하시는 분이 계실 것이다. 그는 잘생긴 사람은 아니었고 키가 크거나 체격이 멋진 사람도 못 되었다. 그가 섭섭하게 생각한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이 사실은 내가 예쁘지도 않고 착하지도 않고 키도 난쟁이똥자루만 한 데다 심지어 날씬하지도 않다는 사실만큼이나 객관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에 말이다.


그러나 그를 만나본 모든 사람이 공감하는 점이 하나 있었다. 그는 음성이 좋았고 노래도 잘 불렀다. 이건 내 생각이 아니라 그의 지인이나 그를 만나본 나의 지인들 모두가 한 명의 예외도 없이 하는 말이니 아마 사실인 게 맞을 것이다. 그리고 이승환의 '천일동안'은 그런 그의 노래방 18번 애창곡이기도 했다.


도대체 무슨 짓을 어떻게 해 온 건지 모르지만 브런치에 쓴 글이 오늘로 꼭 천 개를 채웠다. 중간에 서너 달 병원 신세를 지느라 글을 쓰지 못한 시간을 빼더라도, 나는 만 3년이 조금 안 되는 시간 동안 매일매일 이 브런치에 와서 울고 웃고 한숨 쉬고 푸념하며 내 속에 쌓인 것들을 털어놓아왔다. 그런 식으로 날마다 하나씩 더해온 숫자이니 999나 1000이나 1001이나 뭐 별다를 게 있겠나 생각하기도 했지만 막상 천 번째의 지면을 앞에 놓고 앉으니 감회가 좀 새롭기도 하다. 시간은 흘러갔고, 나는 또 이렇게 꾸역꾸역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받은 기분이라고나 해야 할까. 그가 내 곁에 있던 시간은 9705일이다. 그러니 그는 천일이 아홉 번 반복되고 열 번째를 향해 가던 어느 날 내 곁에서 떠나간 것이다. 그리고 오늘은 그가 내 곁에서 떠나간 날로부터 정확히 1111번째 되는 날이다. 나는 이제 그가 없는 천일을 겨우 한 번 살아낸 셈이다.


며칠 전에 올린 글에서도 잠시 이야기한 것 같지만, 이번 시즌은 이쯤에서 쉼표를 한 번 찍고 잠시 쉬어가야 할 것 같다. 물론 시즌이 바뀐다고 내가 그를 까맣게 잊는 일이 일어나진 않을 것이고 내 앞에 산적한 여러 가지 구구절절한 문제들이 알아서 풀려있지도 않을 것이다. 나는 언제나처럼 이 브런치에 멍때리다가 유통기한을 넘겨버린 라면 이야기나 그의 봉안당에 올라가는 길에 본 풀꽃 이야기나 혼자 형광등을 갈지 못해 낑낑대다가 급기야 크다 만 내 키를 원망하게 된 등등의 들으나 안 들으나 뻔한 이야기를 늘어놓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는 해도 이쯤에서는 한 번 크게 심호흡을 해야 하지 않을까도 싶다. 그래도 한 자리에 붙어 앉아 글 천 개를 쓴다는 게 막 그렇게 쉬운 일까지는 아니기에 말이다.


이 브런치에 들르시는 모든 분들, 이 남루한 글에 소중한 마음을 보태주시는 모든 분들이 늘 행복하셨으면 좋겠다. 아울러 이 브런치에 오시는 그 어떤 분들에게도 너무나 갑작스러운 이별만은 없기를, 사람이 사람과 영영 헤어지지 않는 방법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겠지만 부디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만이라도 주어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아마 그것이야말로 내가 드릴 수 있는 가장 진실된 기도일 것이기에.


4524.jpg 이 이미지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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