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의 이름

-509

by 문득

이제 글을 두 개만 더 쓰면 천 개를 채운다. 아니, 이 글을 빼면 한 개가 남는다. 좀 징하다는 생각을 한다. 회사에 다니는 것도 아니고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하다 못해 키우는 반려동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여러 사람과 함께 나누고픈 그럴듯한 지식이나 꿀팁이 있는 것도 아닌데 글이 천 꼭지라니. 개학을 하면 숙제 검사를 하던 학생 시절에도 이렇게 일기를 열심히 써 본 기억은 없지 싶다.


글을 한 편 써서 던져놓고 나면 대개 눈에 익은 닉들이 와서 라이킷을 눌러주고 가신다. 예전엔 꽤 자주 보였는데 지금은 보이지 않는 닉들에 대해서는 요즘은 어떻게 지내시는지 좀 궁금해지기도 한다. 물론 거기까지다. 내 글은 천하 명문도 아닌 데다가 이 글 한 편을 다 읽어서 뭔가가 남는 쓸모 있는 글도 아니기 때문이다. 막말로 읽지 않아도 사는 데 아무런 지장도 없는 글을 쓰고 있으니 그렇게 멀어진 분들과의 인연은 그냥 그만큼이겠구나 하고 생각한다. 다만 그분들에게는 내가 겪은 것 같은 갑작스러운 상실 따위는 없었으면 하는 작은 기도를 할 뿐이다.


가끔 같은 분이 글이 천 개 가까이 쌓인 이 브런치를 돌면서 글을 주루룩 읽고 라이킷을 연달아 남기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는 좀 머쓱해진다. 아니 뭐 별로 재미도 없고 볼 것도 없는 글인데 그렇게까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어제도 한 분, 그런 손님이 다녀가셨다. 다만 문제는 이분의 닉이 그의 이름과 같았다는 것이다. 그의 이름은 한자는 다르지만 보통명사로도 존재하는 단어이기 때문에 이 닉이 인터넷에서만 통용되는 것인지 혹은 그분의 실명인지조차도 알 수 없지만 그냥 그 눈에 익은 이름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벼락이라도 맞듯 멍하니 그럴 리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브런치 알림 창에 줄줄이 뜬 그분의 닉을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급기야는 그분의 프로필을 살짝 확인해 보기까지 했다. 정말로 그 사람일 리는, 정말로 절대로 결단코 없다는 걸 알면서도.


하긴 또 모르는 일이다. 그렇게 불쑥 떠나와 놓고 내내 마음이 쓰여서 몰래몰래 이 브런치에 와서 글을 읽고 가는지도. 내가 하는 삽질엔 혀를 차고 내가 떠는 미련엔 답답해하고 내가 혼자 아프거나 슬플 때는 발을 동동 구르면서, 이 복잡한 세상 따위 까마득히 내려다보이는 그 어딘가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떠난 사람을 붙잡고 있어도 되는 건 3년까지라고 많은 보살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지만, 그리고 그 3년은 이미 얼마 전에 끝이 났지만 난 아직도 이 사람을 영영 놓아 보내진 못했고 아마 앞으로도 그리 쉬울 것 같진 않다. 상처가 아무는 것은 찰과상 정도까지만이며, 손가락 하나가 잘려나간 자리에 새 손가락이 돋아 자라지는 않듯이.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꽃 배송은 계획대로 되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