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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무 일도 없어도 일주일에 두 번은 외출하는 일정이 있다. 월요일의 상담과 금요일의 백중 기도가 그것이다. 이참에 신앙을 가져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권유는 여기저기서 많이 듣고 있고 그게 마음을 다스리는 데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일 것 같다는 생각도 들긴 한다. 그러나 선뜻 마음이 움직이지 않아 그러지는 못하고 있다. 그래서 요즘 하는 백중 기도라는 것도 매주 금요일 아침 시간 맞춰서 절에 가서 연꽃초 하나를 봉헌하고 그를 위한 종이옷 한 벌을 올린 후 차려진 제사상에 절을 하고 초파일에 그의 앞으로 올려놓은 연등을 한 번 보고 돌아 나오는 것이 전부인 약식이며 꽤나 길게 이어지는 예불에 끝까지 참석하고 나오지는 않는다. 내 멋대로 그는 이해해 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처음 백중 기도를 하러 가던 날은 사람이 무척 많아서 적이 당황했었다. 제사가 5주 차쯤 진행된 지금은 참석하는 사람의 수가 많이 줄긴 했지만, 그래도 내 예상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매주 같은 시간에 절에 나와 떠나간 사람들의 명복을 빌고 있다. 처음엔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어쩔 줄을 몰라하던 나도 이젠 제법 눈치가 생겨서 일일이 누군가를 붙잡고 물어보지 않고도 내가 해야 할 일을 혼자 알아서 잘하고 있다. 초와 종이옷을 살 때는 현찰이 필요하기에 집에서 출발할 때 미리 만 원짜리 한 장 정도는 준비해 가야 한다는 것도 알고 법당에 들어갈 때 신발을 어디쯤에 벗어두면 다른 사람들의 것과 헷갈리지 않고 한 번에 찾을 수 있는가 하는 것도 이젠 안다.
모셔놓는 넋을 위해 올리는 종이옷의 겉에는 올리는 사람의 이름과 주소, 이 옷을 받을 고인의 이름을 쓰는(그냥 이름만 쓰는 건 아니고 약간의 형식이 필요하다) 칸이 있다. 법당 근처에 보살님 몇 분이 그 이름 쓰는 일을 해 주고 있었지만 초제 때는 사람이 너무 많아 도저히 줄을 서서 기다릴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곁눈질로 형식을 훔쳐본 후 내가 직접 이름과 주소를 썼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실감했다. 아, 내 글씨가 좀 나아졌구나.
엉망진창인 글씨는 오랫동안 나의 컴플렉스였다. 손으로 뭔가 쓴 것을 내놓아야 할 때, 나는 늘 반사적으로 남의 것 뒤로 감추거나 뒷면이 위로 오도록 엎어서 내곤 했다. 그가 떠나던 날 경찰서에 진술을 하러 갔다가 이렇게 혼자 끌어안고 있다가는 죽을 것 같아서 상담 센터를 찾아갔을 때도, 상담 전 작성해야 하는 서류를 작성해 놓고 그 서류를 들여다보는 상담사 선생님께 글씨가 엉망이라 죄송하다는 인사를 빼먹지 않고 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요즘 종이옷의 겉봉투에 이름과 주소를 쓰는 내 글씨는 그래도 이젠 제법 또박또박해졌다. 최소한 굳이 서류를 엎어서 내지는 않아도 될 정도까지는 되었다고 할까.
하루에 다섯 장씩을 쓰고 있는 내 글씨 연습은 이제 석 달째가 가까워 오고 있다. 아직도 마음이 급해지면 어김없이 지렁이 기어가는 원래의 글씨가 튀어나오곤 하지만, 그래도 숨을 한 번 들이쉬고 조금 찬찬히 쓰자고 마음을 고쳐먹는 것만으로도 내 글씨는 많이 반듯해지고 정갈해진다. 단순히 마음의 '모드'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뭔가가 그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은 내게는 색다른 경험이다. 또 그것이 평생 이럴 거라고 내심 체념하고 있었던 글씨의 영역이기까지 해서.
나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나아지고 있을 것이다. 이제 3주쯤 남은 백중 때는, 더 나아진 글씨로 그의 이름을 쓸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