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은 조금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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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꽃병에 꽃을 꽂을 때 물은 꽃대의 끝을 적실만큼, 조금만 담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지가 한 달 정도가 지났다.


그 말을 듣고 그렇게 해봐야겠다 생각은 하면서도 내심 반신반의했다. 꽃병 안에 보존액 같은 것을 넣는 '획기적인' 방법도 아니고, 고작 담는 물의 양을 줄이는 정도로 꽃이 버티는 시간이 그렇게 크게 늘어날 거라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았다. 늘어나도 하루 이틀 정도이겠고 시드는 속도가 조금 더뎌지는 정도이겠지. 어차피 사다가 꽂아놓을 꽃이고 손해날 것은 없으니 한 번 해보기나 하자. 이런 기분이었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그간 일주일을 채 버티지 못하고 시든 수많은 꽃들에게 나는 그간 참 못할 짓을 하고 있었다.


꽃집 아주머니에게서 꽃병에 물을 조금만 담으라는 주의를 받고 사온 첫 꽃은 거베라였다. 거베라는 꽃이 크고 꽃대가 굵어 내 기준으로는 '정말 잘 시들게 생긴' 꽃이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시들기 시작하면 그 사실이 너무나 눈에 잘 띌 타입의 꽃이었다. 한 두어 달 이런저런 종류의 꽃들을 사다 꽃병에 꽂아본 얄팍한 식견으로는 기껏해야 4, 5일, 길어야 일주일을 버티면 장하다고 칭찬해 줄 만한 그런 꽃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시큰둥하게 사 온 거베라는 무려 열흘을 버텼다. 그나마도 보기 싫게 시든 것이 아니라 활짝 피어 있던 꽃이 조금씩 움츠려 드는 정도였다. 그의 책상에 둘 꽃만 아니었더라면 하루 이틀 정도는 더 놓아둘 수도 있었겠지만 그에게 시들기 시작하는 꽃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 다른 꽃을 사기로 했다.


그다음으로 산 꽃은 보라 공작초였다. 그 꽃은 사흘밖에 가지 못했는데, 이건 나름의 예외였다. 도매 시장에서 새 꽃을 들여오기 직전 타이밍이라 남아있는 꽃들이 전부 시들시들하다고, 단골손님에게 이런 걸 돈 받고 팔 수는 없다며 꽃집 아주머니께서 그냥 한 단 공짜로 주신 꽃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것치고는 한 이틀은 제법 괜찮았는데, 하루 부산에 다녀오느라 한참 푹푹 찌던 7월 초 무렵 하루 창문을 꼭꼭 닫고 집을 비웠다 돌아와 보니 꽃들이 하루 사이 급격하게 시들어 있었다. 그러니 이 경우는 제대로 된 실험군이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제일 최근에 꽃병에 꽂은 시네신스는 오늘로 무려 16일이 지났다. 우리 집에 온 꽃들 중 최장수 기록이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아침마다 물을 갈고 꽃대를 잘라줄 때 확인하는 꽃대의 상태들이 아직도 제법 괜찮다는 것이다. 시네신스 전에 가장 오래갔던 꽃은 2주를 갔던 스타티스였는데 이 녀석들은 아침에 꽃대를 잘라줄 때마다 손가락 한두 마디 길이만큼이 시꺼멓게 변해있곤 했었다. 그러나 지금 꽂아둔 시네신스는 그렇지도 않다. 지금 상태를 봐서는 이번 주말을 지나고 다음 주까지도 그럭저럭 잘 버티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이 작고 소담한 꽃은 기특하게 이 덥고 습한 날씨를 잘 버티고 있다. 정말로 뭐든지 알아야 면장을 하는 모양이다. 정말 나쁜 뜻은 아니었는데. 뿌리가 뽑힌 애들이니 물이라도 실컷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딱 그 정도의 생각이었을 뿐인데. 이래서 퀸의 노래 중에도 너무 깊은 사랑은 결국 당신을 죽일 거라는 노래가 있는 모양이다.


너무 애쓰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다. 너무 힘주지 말아야겠다고도 생각한다. 애면글면 애를 쓰는 것은 물론 내 자유겠지만 그것이 꼭 그만큼의 결실을 가져오지는 않으며, 그 사실은 때로는 나약한 나를 너무 슬프게 할 테니까. 그냥 지금으로서는 그 화사하고 아름다운 생명체들이 내 곁에 살아있는 시간을 조금 늘리는 아주 쉽고 간단한 방법 하나를 알아낸 것으로 만족하려고 한다. 조금 늦었지만, 이런 식으로 하나씩 배워가는 것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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