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있는 만큼만

-101

by 문득

어쩌면 다들 기억하실지도 모르는 오래된 광고 하나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밤늦은 시간 택시를 타고 귀가하는 중인 중년 남자가 있다. 택시 운전석에는 기사가 딸과 함께 찍은 사진이 붙어 있다. 그 사진을 보던 중년 남자는 핸드폰을 꺼내 딸에게 전화를 한다. 택시에서 내려 집으로 돌아가는 남자의 뒷모습에 우리 딸, 하늘에서는 잘 있니? 라는 멘트가 깔린다. 별로 길지 않은 광고였는데도 텔레비전으로 송출되는 것을 처음 본 순간 충격을 받아 그 자리에서 한동안 움직이지를 못했었다. 가끔 그림을 보러 가는 한 일러스트레이터의 인스타그램에서, 군대에 가서 사망한 아들에게 20년이 넘도록 편지를 보내고 계시는 한 아버지의 사연을 읽고도 비슷한 기분에 한동안 멍해져 있었다. 예전엔 그냥 가슴이 먹먹하다는 정도의 기분이었는데 이제는 그분들이 왜 그렇게밖에 할 수 없는지를 알겠어서, 나 또한 그러고 있어서 한층 더 복잡한 기분으로 그 사연들을 지켜보게 된다.


나는 그의 핸드폰을 해지하지 못했다. 그리고 뭔가 좋은 일이 있거나, 반대로 미치도록 화가 나거나 슬프거나 서럽거나 외로울 때는 카톡 창을 열고 그에게 카톡을 보낸다. 오늘 날씨가 덥다는 말도 하고 거래처 담당자랑 싸웠다는 말도 하고 옆 나라 전 총리가 총에 맞아 죽었다더라는 이야기도 하고 장 볼 때 무엇 무엇을 빼뜨려먹고 안 사서 편의점 가서 몇 배나 비싸게 주고 샀다는 말을 하며 내가 그렇지 뭐 하는 식의 자책도 한다. 그리고 조금은 눈 가리고 아웅이지만 그의 핸드폰을 열어 카톡을 확인해서 옆에 붙은 1자를 전부 없앤다. 그러고 나면, 비록 대답은 없을지라도 그가 어디선가 내 이야기를 듣고 있다는 묘한 안도감이 든다.


사실 핸드폰만이 문제는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 집에는 아직 그의 물건이, 그의 흔적이 아무것도 없어지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아니, 이 말은 맞지 않다. 책상 위 그의 컴퓨터에 띄워진 두부 유부초밥 레시피 페이지는 내가 이미 몇 번이나 껐다가 '일부러' 다시 띄워놓은 것이니 사실 그가 띄워놓은 그 페이지는 이미 아닌 셈이다. 그가 쓰던 물건들이며 그가 입던 옷들도 마찬가지다. 이미 쓸 사람이 없어진 그 물건들을 굳이 그 자리에 놓아두는 것은 그냥 그의 부재를 인정하기 싫은 나의 생떼일 뿐 사실은 이젠 아무 의미도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남겨진 사람들의 이런 마음을 배려해서 49제 전에 고인의 물건들을 다 정리해야 한다는 절차가 생긴 것인지도 모르겠다. 차마 내키지 않지만 절차상 그렇게 하는 거라는 핑계를 댈 수 있게끔.


가끔 내가 그를 기억하는 것, 혹은 이렇듯 구질구질하게 그를 붙들고 있는 것이 어디까지, 언제까지 허용되는 것일지가 궁금할 때가 있다. 당장 위에 쓴 그의 핸드폰 이야기만 해도 실제로 나를 아는 지인들 중에는 이 이야기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이 말을 내 입으로 누군가에게 털어놓은 것은 상담사 선생님 한 명에게뿐이다. 어쩌면 나는 반사적으로 알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이 말을 들었을 때. 몇몇 사람은 나를 이해하겠지만 꼭 그만큼의 다른 몇몇 사람은 그러지 말라거나, 그러면 안 된다거나, 저꾸 그런 식으로 붙들면 떠난 사람도 편히 쉬지 못한다든가 하는 식의 내가 별로 듣고 싶지 않은 말을 할 것이라는 사실을.


그러나 그게 다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나에게는 아직 무리인 것 같다. 어느 날 갑자기 누군가가 들이닥쳐 그의 물건들을 모두 빼앗아간다면 나는 아마 기를 쓰고 그 사람에게 저항할 것이 분명하다. 벌써 백일도 넘게 지났지만 나에겐 아직도 이 이별은 새삼스럽고, 힘들다. 그래서 나는 나를 몰아붙이지 않고 조금 봐주고 있는 중이다. 뭔가를 정리할 엄두가 나지 않으면 그래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까지 미루고, 그만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일들은 이제 그만해도 될 것 같다는 마음이 들 때까지는 계속하기로. 그게 뭐든 무리하지 말고,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고.


백 번째 글이 끝나고 백한 번째 글로 또 이런 청승을 아침부터 떨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은 어쩔 수 없다. 나는 오늘도 백중기도를 올리러 다니지도 않던 절에 갈 테고, 적당하게 구름이 낀 날씨를 보고 오늘도 덥지 말고 갔다 오라고 그가 나를 위해 애를 쓰고 있구나 하고 생각할 테고, 집에 돌아와 신발도 벗기 전부터 커다란 목소리로 오빠 갔다 왔어 하는 인사부터 건넬 것이기 때문이다. 그건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말과는 조금은 그 궤가 다른 말이기 때문이다. 아직은 그러지까지 않고 살아가기에는 내가 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냥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아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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