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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아주 오랫동안 장례는 '어른의 일'이었다. 나이를 마흔도 넘게 먹은 요즘도 이 일을 겪기 전까지는 그랬다. 언제 어떤 일이 생기든, 대개의 경우 그 일을 앞장서서 해결하는 진짜 '어른'은 따로 있고, 나는 그냥 몇 가지 시키는 자잘한 일이나 몸 사리지 않고 하면 된다. 뭐 그 정도의 감각이었다. 그래서 살아가는 동안 피해 갈 수 없는 일이면서도 나는 사람이 떠나간 후의 뒷수습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도 못했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알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 더욱 정확한 표현일 것 같다. 내 손으로 직접 장례를 치러야 할 만큼 가까운 사람을 먼저 보내는 슬픔도, 그 뒤에 남겨질 막막함도 모두 그냥 모르는 채로 살고 싶었다.
그러나 인생 모든 일이 그렇듯, 내가 알고 싶지 않다고 끝까지 모르는 채로 속 편하게 지나갈 수는 없는 일이다.
누가 뭐래도 우리는 둘 다 이런 일을 벌써부터 준비하기에는 아직 젊은 나이였고, 그래서 그야말로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전날 밤 분명히 내 곁에서 잠들었던 사람이 불과 몇 시간 사이 다시는 못 볼 곳으로 떠났다는 일에만 넋이 빠져 있어도 모자랄 판에 영안실 사용 비용이니 화장 비용이니 봉안당 비용이니 하는 지극히 속되다 못해 서글프기까지 한 일들에까지 치여야 했다. 그는 병원 등 소위 사인을 확인해 줄 수 있을 만한 곳에서 마지막을 맞은 게 아니었기 때문에 경찰에 불려 다니며 그 전후 사정에 대한 진술도 해야 했다. 그의 부검이 있던 날은 경찰들이 집으로 찾아와 집에 있는 모든 종류의 약들-그러니까 진통제, 종합감기약, 내가 알레르기성 비염 때문에 가끔 먹는 항히스타민제 등-을 한 알씩 모두 수거해 갔다. 그냥 절차상 하는 업무라고 그들은 말했지만 나는 그의 부검 결과가 나오는 한 달 후쯤 음독 등의 뭔가 수상쩍은 소견이 발견되면 그때 대조할 약품이 필요해서 미리 '샘플'을 수집하는 것이구나 하는 것을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었다. 별 이상이 없으면 그냥 연락 안 드릴 거고 뭔가 이상 소견이 나오면 연락드릴 거라고 그들은 말했다. 그리고 백 일이 넘어서까지도 경찰서에서는 아무 연락도 없었다.
그렇게 부랴부랴, 마치 등을 떠밀듯 보내버리는 와중에 겨우 잡은 곳이라 그의 봉안당은 위치가 그리 썩 좋지는 않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야만 그의 유골함과 그 속에 내가 넣어둔 사진을 마주 볼 수 있다. 위치도 위치이거니와 나는 그를 사방 30센티는 되나 싶은 그 좁은 봉안당 안에 모신 것이 요즘도 내내 마음에 걸린다. 그는 답답한 걸 죽기보다 싫어하는 사람이었고 그 성격이 지금이라고 해서 변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매번 이런저런 일로 봉안당에 가서 그의 얼굴을 볼 때마다 말한다. 이렇게 좁고 답답한 곳에 모셔서 미안하다고. 그런데 정말로 너무 경황이 없었다고. 부디 이해해 달라고.
그래서 내게는 하나의 작은 목표가 생겼다. 그의 1주기를 맞기 전까지 준비를 해서 이장을 하기로. 수목장이 어떨까. 그런 생각을 해 본다. 아주 예전부터도 영화나 드라마에서 먼저 떠난 그리운 사람을 보러 나무를 찾아가는 장면들을 보면서 저런 건 참 아이디어가 좋다는 이야기를 그와 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막상 내가 겪고 보니 더욱 그런 것 같다. 그 손바닥만 한 봉안당 유리문 안에 있는 것보다는, 그래도 햇살과 바람을 맞고 더러 비도 눈도 맞으면서, 그렇게 하늘을 보면서 지낼 수 있게 해 주는 게 맞지 않을까. 그리고 거기엔 한 가지 숨은 이유가 더 있다. 나도 언젠가 쉴 곳이 필요할 테니까. 그에게 일어난 일이 내게도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겠고, 그에게는 나라도 있었다지만 이제 내게는 아무도 없으니까. 그를 먼저 쉬게 해 놓고 언젠가 내게도 만일의 일이 생기면 그 곁에 가면 되게끔, 그런 준비를 해놓고 싶기도 해서.
아이러니하게도 갑작스러운 우울함과 힘겨움에 신음할 때 나를 가장 빨리 진정시키는 것은 이 수목장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 어떤 깊은 슬픔에 빠져 있다가도 이 생각을 떠올리면 머리가 식고 나대던 심장이 차분해진다. 그의 1주기까지는 이제 아홉 달 남짓밖에 남지 않았다. 내가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그 일정은 또 뒤로 미루어질지도 모른다. 그 가엾은 사람을 그 좁고 답답한 곳에 언제까지 놓아둘 거냐고, 그렇게 매섭게 나 자신을 몇 번 꾸짖고 나면 그래도 뭐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이 조금은 생긴다. 그리고 다시 한번 절감한다. 내가 참, 그간 그에게 너무 많은 것들을 의지한 채로 열아홉에 성장이 멈춘 어린애로 살고 있었음을.
이렇게 알고 싶지 않았던 일들을 강제로 알게 되어가면서, 사람은 그렇게 어른이 되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