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어디서 읽었는지 명확하지 않은 우화 하나가 있다.
어느 마을에 낯선 의사가 하나 찾아온다. 의사의 말로는, 자신은 죽은 사람을 되살려낼 수 있는 신비한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누구든 자신을 믿고 제일 먼저 요청하는 사람에게 그 기적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이 때아닌 말에 작은 마을은 발칵 뒤집어진다.
처음엔 돌아가신 아버지를 되살려달라는 아들이 나타난다. 그러나 아들의 형제들이 반대한다. 그들은 이미 아버지의 유산을 분배받아 전부 써버렸기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죽은 친구를 되살려달라는 사람이 찾아온다. 그러나 그의 아내가 반대한다. 그녀는 이미 다른 남자와 재혼해 행복하게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죽은 사람을 되살려달라는 사람은 많았지만 그때마다 다른 누군가가 그를 되살리는 데 반대한다. 결국 아무도 반대하지 않고 되살려낼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의사는 쓸쓸히 마을을 떠난다. 읽고 나서 한참 동안 씁쓸했던 기억이 있는 얘기였다.
나에게 그런 기회가 온다면 거절할 리가 없고, 만일에 어떤 짓궂은 신이 있어 나를 그를 처음 만난 27년 전으로 돌려보내 줄 테니 너의 선택에 따라 그와는 영영 모르는 사람으로 스쳐 지나갈 수 있는 기회를 준다고 하면 나는 그렇게 할까. 27년 후에, 지금의 이 쓰라린 시간을 지나가게 된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다면.
지금의 이 가슴 한쪽이 통째로 뜯겨나간 것 같은 기분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다면 좋을 것 같기도 하다. 물론 내 곁에 다른 누군가가 있었더라도 그 사람과도 언제든 작별했어야 했겠지만 최소한 이렇게 갑작스럽게, 날벼락 맞듯 헤어지지는 않아도 되지 않을까. 내게 조금 더 준비할 시간이 허락되지 않았을까. 내가 조금 덜 아플 방법이 뭐라도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도 하지 않는 건 아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이 싫어서 27년 전 5월의 어느 날 그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지나간 내 27년의 시간은 지금과는 아주 다른 방향으로 달려갔을 것이다. 지금 존재하는 '나'라는 인간을 만든 것은 8할 이상이 그와 함께 보낸 세월이기에. 27년 전 그날 그를 만나지 않은 내가 어떤 인간이 되었을까 하는 문제는 지금으로서는 너무 거리가 멀어져 버려 상상하기조차도 쉽지 않다. 지금의 상실감과 지나간 27년의 무게를 저울에 놓고 달면 어느 쪽이 무거울까. 나는 아무래도 지나간 27년의 무게를 선택할 수밖에는 없을 것 같다.
물론 우스갯소리로 이런 건 양쪽의 말을 다 들어봐야 하는 거고, 그에게 묻는다면 그는 조금 다른 말을 할 수도 있겠지. 27년 전으로 시간을 되돌려준다면 그쪽에서 나를 기를 쓰고 피해 갈지도 모른다. 그는 나 때문에 많은 힘든 시간을 보냈고 나 때문에 자신이 정해놓은 인생의 궤도가 엉클어졌으며 나 때문에 보지 않아도 될 일을 많이 보았고 알 필요가 없는 일들을 많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게 아니라도, 자신이 결국 이런 식으로 일찍 떠나가 뒤에 남을 내가 힘들어하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는 이 순간을 위해서라도 나를 피해 가려고 하지 않을까. 그는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기에.
문득 그런 생각을 하다가 피식 웃는다. 누구 마음대로. 나는 인연이 닿는 사람은 하나를 달에 갖다 놔도 결국은 만난다는 말을 믿는다. 우리는, 어떻게든 이런 식으로 이어질 운명이었을 것이다. 누가 남든, 누가 떠나든, 결국은 그 차이뿐이었을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