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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같은 동네에 살던 친한 친구가 하나 있었다. 시장 골목을 끼고 있던 우리 동네 신발 가게 딸이었다. 조금 통통한 뺨에 목소리가 꾀꼬리같이 예쁘고, 그래서 노래 잘하는 아이로 학년에서는 꽤 유명한 아이였다. 공부를 조금 잘하는 것 말고는 아무런 특징도 재주도 없던 나는 그 친구를 참 부러워했고 좋아했다.
그 친구와 친해지기 위해서는 한 가지 조건이 있었다. 교회에 나가야 했다. 그 댁 어머님은 굉장히 독실한 기독교 신자셨다. 집사였던지 권사였던지, 그런 직함도 있으셨던 것 같다. 친구는 일요일 아침마다 어머니와 함께 교회를 갔다. 그리고 내게도 같이 교회에 다닐 것을 종용했다. 노래를 잘하던 친구는 당연히 교회에서도 성가대였고, 가끔은 나이가 많은 언니 오빠들을 제치고 혼자 찬송가를 독창하기도 했다. 그때의 친구는 참 반짝반짝 빛나 보였다.
그러나 나의 어설픈 신앙생활은 얼마 가지 못했다. 이해도 안 되고 별로 와닿지도 않는 하나님과 예수님의 사랑을 공부하기 위해 일요일 아침의 꿀맛 같은 늦잠과 디즈니 만화동산을 포기하는 것은 당시의 내게는 너무 가혹한 일이었다. 그게 퍽 서운했던지 친구와의 사이는 그 후로 눈에 띄게 서먹해졌고, 몇 년 후 내가 이사를 가면서 우리의 인연은 완전히 끊겼다.
나는 교회에도 절에도 성당에도 모두 일정 기간 이상 소속되어 본 적이 있다. 그러나 그중 어느 곳도 오래가지 못했다. 그 이유는 결국 저 어린 날의 이유와 동일하다. 일주일에 하루 아니면 이틀이 고작인 금쪽같은 휴일을 내가 아닌 신을 위해 쓰는 것이 싫었던 것이다. 나는 여전히 휴일 아침의 늦잠이 좋고 조금쯤 게으름을 부려도 아무도 나를 탓하지 않는 그 여유가 좋으며, 다른 무언가를 위해 그것들을 포기할 만한 동기를 아직은 발견하지 못했다. 그 원초적이면서도 단순한 이유가, 결국 내가 종교에 오래 몸담지 못한 가장 큰 이유였다.
그리고 나는 어제로서 7주 동안, 매주 금요일에 열리는 백중 법회에 개근했다.
처음 한 3주간은 가는 길을 잘 몰라서 포털에 검색한 환승경로를 보고 그대로 따라갔다. 길은 크게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버스가 자주 다니는 대신 갈아타기 위해 고개 하나를 넘어가야 했고 다른 하나는 내린 자리에서 바로 환승을 할 수 있는 대신 버스가 한 시간에 한 두대밖에 다니지 않았다.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봤지만 둘 다 결과는 썩 만족스럽지 않았다. 3주 차 정도에는 딴에는 잔머리를 좀 굴리다가 버스가 영 엉뚱한 데 서버리는 바람에 7월 초의 그 뙤약볕 아래 절까지 3킬로미터를 걸어가야 했다. 원래 내리던 환승 정류장에서 두어 정거장만 더 가서 갈아타면 버스가 조금 돌아가긴 해도 훨씬 쉽고 편하게 갈 수 있겠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 4주 차 정도 들어서였다. 그 사실을 검증해 본 4주 차 금요일에 나는 더없이 으쓱해져 그의 액자 앞에서 한참이나 자랑을 늘어놓았다.
금요일 오전에 자리를 비운다는 건 대단히 번거로운 일이다. 그 몇 시간 동안 아무 방해도 받지 않기 위해 어지간한 마감은 목요일 밤까지 다 마쳐야 하고(금요일이 마감이면 암묵적으로 주말까지는 작업 일정을 벌 수 있지만 목요일 저녁에 마감을 하려면 그런 여유는 포기해야 한다) 자주 전화를 걸어 사람을 괴롭히는 몇몇 거래처에는 제가 금요일 오전엔 통화가 힘드니 카톡을 주시던가 점심시간 이후로 연락 주시라는 말을 꼭 잊지 않고 해두어야 한다. 그렇게 신신당부를 해도 을의 사정 따위 알 바 없는 거래처에서는 자기들이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 불쑥불쑥 연락을 하므로 바깥에 나와 있는 내내 내 마음은 불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7주 동안 그런 귀찮고 불편하고 번거로운 것들을 다 이겨내 가며 그를 위한 법회에 다녔다. 이제 다음 주 금요일이 백중이고, 그날 마지막으로 절에 갔다가 봉안당에 가서 그를 보고 오면 나의 백중 기도는 얼추 마무리가 되는 셈이다.
나 성질 못돼서 이런 거 못하는 거 알지. 근데 내가 오빠 좋은 데 가라고 이러고 있다. 집으로 돌아와 부랴부랴 창문을 열어 후끈해진 집안 공기를 빼고 찬물 한 잔을 마시며, 그렇게 중얼거린다. 오빠가 그런 내 마음을 아냐고. 어마 알 거다. 알겠지. 모르진 않을 것이다. 이 더운 날씨에 성질 맞지 않는 짓 하느라 욕본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언제나 그는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사람이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