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넘어진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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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그게 진짜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보호자가 없이, 혼자 골목을 뛰어다니다가 넘어진 아이는 울지 않는다고. 꼭 보호자가 아니라도 누군가 자신을 일으켜주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바라보며 안 아프냐고 물어줄 만한 사람이 눈에 띄지 않으면 울지 않는다고. 나는 아이를 낳아서 키워본 적이 없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 때문에 이 말이 진짜인지 아닌지는 영영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생리통이 전혀 없는 여자는 별로 없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마 그 기간 동안 여자들은 크고 작은 통증과 우울함, 언짢음에 시달린다. 내 경우에 그건 그냥 아 짜증 나 하고 한 마디 뇌까리고 넘어가면 그걸로 족할 정도의 '적당한' 통증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언제나 그 무렵이 되면 입이 한 발은 튀어나와 배가 아프다, 허리가 아프다, 기분이 안 좋다며 징징거렸다. 하나도 아프지 않았던 건 아니고, 1만큼의 통증을 5나 6 정도, 가끔은 7이나 8 정도로 부풀려서 이야기했던 것이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냥 그렇게 아파서 어떡하니 하고 걱정해주는 그의 목소리가 좋았기 때문이었다.


외주 일을 하면서 만나게 되는 갖은 진상 갑들도 마찬가지였다. 이 바닥에서 밥을 먹은 지도 이젠 적지 않은 세월이 흘러갔고, 한 푼이라도 덜 주고 일을 맡기려는 사람들이 하게 마련인 몇 가지 행동 패턴에 대해서는 논문까지는 아니라도 꽤 장문의 글을 쓸 수 있을 정도로 인이 박혔다. 자연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는 범위도 많이 넓어졌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언제나 갑이 1만큼의 진상을 부리면 그걸 5나 6 정도, 가끔은 7이나 8 정도로 부풀려서 그에게 일러바치고는 씨근덕거렸다. 처음에 그는 정색을 하고 그 이야기를 들었고, 많은 남자들이 흔히 하는 실수대로 이런 부분은 그쪽이 잘못한 게 맞지만 이런 부분은 네 잘못도 없다고는 하기 힘들다는 식으로 '정무적인 판단'을 내려주려 들었고 그러다가 나와 몇 번 다투기도 했었다. 나중에 꽤나 노련해진 그는 내가 하는 말들을 적당히 귓등으로 들으면서 아이고, 저런, 미쳤네, 뭐 그런 놈들이 다 있냐 정도의 추임새를 넣고는 그 돈에 그 일 시키면서 바라는 것도 많다라던가 완전 양아치들이네 하는 식의 리액션을 성의껏 해주곤 했다. 애초에 내가 바란 것은 '맞장구'였지 이런 상황에 대처하는 FAQ가 아니었으므로 나는 그가 내 편이라는 것을 확인한 그쯤에서 만족하고 다시 내 자리로 돌아가곤 했다.


그리고 자연히, 저런 번거로운 프로세스들은 요 몇 달 새 내 삶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어제까지 나는 말도 안 되는 마감 일정에 시달렸다. 갑 측에서 주기로 약속한 자료들은 기본이 3일 심지어는 일주일씩 일정이 밀리면서 내가 결과물을 토해내야 하는 날짜는 하루도 미뤄지지 않았다. 그 와중에 상담하러 다닐 시간과 백중 기도를 하러 절에 다녀올 시간까지를 빼놓으려니 일정은 더더욱 빠듯해졌다. 그가 있었더라면 아마 응석과 어리광과 칭얼거림이 며칠을 갔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우리 일정은 밀리겠지만 당신 일정은 그대로'라는 갑 측의 메일을 받고도 짤막한 욕지거리나 한 마디 내뱉었을 뿐 군소리 없이 나를 몰아붙여 어제저녁 여덟 시쯤 그 일정을 맞추어 작업물을 넘겼다. 혼자 넘어진 아이는 울지 않는 법이기에.


요즘 불쑥 외롭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 이유는 아주 많고 다양하겠지만 그중에 이런 부분도 웬만큼은 차지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실컷 마음 놓고 비비던 언덕이 없어져 버려서. 이젠 아무도 내 징징거림을 들어주고 달래주는 사람이 없어서. 넘어져 깨진 무릎에서 피가 나도, 이젠 혼자 힘으로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야 하니까. 정말로 울고 싶을 만큼 아프고 창피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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