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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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지난 4월부터 지금까지 나의 변화를 가장 정확하게 옆에서 지켜본 사람은 월요일마다 만나는 상담사 선생님일 것이다. 그리고 아마 이 모든 일들에 대해 나 다음으로 상세하게 많은 것을 알고 계신 분이기도 할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속 편하게 떠나가버린 그보다도 더.


처음 얼마간 선생님은 집으로 돌아가지 말고 쉼터 같은 곳에 가 있는 것이 어떠냐고 권했다. 이런 상황에 지탱해 줄 사람 하나 없이 혼자 있는 것은 너무 위험하며, 꼭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혼자 힘으로 밥을 챙겨 먹고 자신을 돌보는 것조차 쉽지 않을 테니 도움을 받는 게 좋겠다는 뜻이었다. 그 말씀에 나는 혼자 해보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왜 그랬는지, 정확한 이유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아마 그가 떠났다는 사실을 실감하지 못해서, 내가 집에 돌아가지 않으면 그를 집에 혼자 놓아두는 게 될 거라고 생각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요즘은 조금 덜 하지만 아직도 선생님은 나의 기본적인 건강 상태에 대해 걱정을 많이 한다. 얼굴이 처음 올 때에 비해 반쪽이 되셨다고, 식사는 안 거르고 있는 게 맞는지 잠은 하루에 몇 시간이나 자는지 하는 것들을 상담할 때마다 잊지 않고 묻는다. 그러면 나는 대답한다. 잘 자고 잘 먹어요. 그런데 먹는 것도 자는 것도 '재미'가 없어요.


생각해 보면 내가 밥을 먹지 못한 것은 그가 떠나고 난 후 삼우재를 지내기까지 3일 정도였다. 그때는 정말이지 씹어서 삼켜야 할 뭔가를 먹을 엄두가 도저히 나지 않아서 편의점에서 파는 프로틴 음료를 몇 병 사다가 냉장고에 넣어두고 그걸 두세 병 마시는 걸로 하루를 때웠다. 그렇게 맞은 그의 삼우제 날은 너무나 할 일이 많아서 정작 그를 떠나보낸다는 사실 앞에 슬퍼할 시간조차도 없었다. 그렇게 하루를 꼬박 시달리고 집에 돌아와 나는 며칠 만에 처음으로 밥을 먹었다. 오늘은, 오늘만은 내가 밥을 먹어도 섭섭해하지 않겠지 하는 생각에.


그리고 그날 이후로, 나는 하루도 곡기를 끊고 지나간 날은 없다. 제대로 차려먹는 밥이라고는 점심 한 끼뿐이지만, 그거야 뭐 일부러 간헐적 단식이라든지를 하는 분들도 많으니까. 요컨대 나는 슬픔에 짓눌려 먹을 것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는 상태는 아니다. 그랬던 기간은 너무나 짧게 끝나버렸다. 그러나 다만, 이젠 뭔가를 먹는 것이 '재미'가 없다. 그와 함께 있을 때는 뭔가를 먹는다는 건 참 재미있는 일이었다. 처음 만들어보는 음식은 이게 도대체 어떤 맛일지 궁금해하는 재미가 있었고 다음번에 해먹을 때는 이렇게 바꿔보면 더 맛있지 않을까를 이야기하는 재미가 있었다. 자주 해 먹는 음식이라면 지난번에 먹을 때와는 어떤 점이 달라졌는지, 그래서 어떤 부분이 좋아졌는지를 말하고 듣는 재미가 있었다. 우리가 그렇게나 사다가 재 놓던 빵들도 마찬가지였다. 이 집의 빵은 어떤 부분이 좋은지, 명성에 비해 어떤 부분이 좀 별로인지, 이 빵은 여기 말고 다른 어느 빵집의 빵이 맛있었던지 하는 것들을 이야기하느라 우리는 가끔 정작 먹고 있는 빵의 맛을 잊어버리곤 했다.


먹는다는 행위에 살기 위한 영양분 공급 말고도 재미를 찾는다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는 걸 나는 요즘에서야 알았다. 그래서 그 재미가 사라져 버린 먹는다는 행위는 요즘의 내게는 아침에 늘 하는 방청소나 침대 정리와 크게 차이가 없다. 치킨이라든가 피자 같은, 주기적으로 한 번씩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던 음식들조차도 요즘은 전혀 당기지를 않는다. 그리고 그 사실이 씁쓸하거나 안타깝게 느껴지지조차 않는다. 인생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한도 자체가 줄어들어버린 기분이랄까.


먹는 것만 그런 건 아니다. 요즘의 내 삶은 보정을 잘못해 색감이 통째로 죽어버린 사진처럼 전체적으로 희뿌옇게 변했다. 아마도 나의 슬픔은 이런 색깔인 모양이다. 가슴을 쥐어뜯고 목을 놓아 우는 그런 강렬함조차 빠진, 어딘가 낡고 색이 바랜 것 같은 건조함이. 잔뜩 찌푸린 오늘의 아침 하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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