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우리, 나이테는 보이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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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어릴 땐 스무 살이 넘으면 저절로 '어른'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누구에게 물어보지 않아도 세상 모든 일을 저절로 다 알게 될 줄로 생각했다. 어림없는 일이었다. 내가 지나온 스무 살은, 그냥 '기분이 우울할 때 편의점에 가서 합법적으로 맥주를 살 수 있는 고등학생'일뿐이었다. 어떤 면에서는 지나간 열아홉 살 때보다 오히려 퇴행한 듯이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다.


20대 때는 서른이 넘으면 어른이 될 줄 알았다. 그때쯤이면 자리도 잡았을 테고, 사회의 쓴 맛 단 맛도 다 봤을 테고, 누구에게서 무슨 말을 들어도 적당히 니힐한 표정을 지으며 내 그럴 줄 알았지 하고 반응하는 담담한 어른이 될 줄 알았다. 역시나 택도 없는 일이었다. 나의 30대는 때 아닌 좌충우돌과 시행착오, 실수연발들로 가득했다. 끼리끼리 모인다고나 해야 할지, 내 주변의 사람들도 대개 비슷한 인생을 살고 있어 별로 내 나이를 실감하지 못했던 것 같기도 하다.


30대 때는 마흔이 넘으면 그때야말로 어른이 될 줄 알았다. 이젠 입에 발린 말로라도 청년이라고 할 수 없는 연령대이지 않은가. 그때쯤에는 정말로 도도히 흘러가는 큰 강처럼, 잔잔한 파도가 치는 바다처럼 내게 어떤 일이 일어나든 크게 당황하지 않고, 크게 흔들리지도 않고 무덤덤하게 내 갈 길을 알아서 잘 찾아갈 수 있을 줄 알았다. 40대의 중간 정도 온 지금 중간결산을 해 보자면 '텄다'. 지금껏 안 된 것이 앞으로 몇 년 사이 갑자기 되는 일 같은 건 일어날 리도 없고 실제로 일어나지도 않는다. 나는 아마 지금껏 살아온 대로, 우왕좌왕 갈팡질팡하는 사이에 50대가 될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와 그리 달라지지 않은 50대를 살아가겠지.


이런 일을 겪기에 제 나이가 너무 어린 것이 아닐까요, 하는 말을 상담사 선생님에게 해 본 적이 있다. 그의 부재 앞에 가장 크게 느껴지는 감정 중의 하나는 '막막함'이다. 물론 나는 그의 일을 겪으면서 사람이 누구나 7, 80까지 사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남들이 다 그런다고 해서 나도 그럴 수 있을 거라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다. 나 또한 내일 당장, 아니 오늘 당장이라도 내 의지와는 상관없는 일로 멀리 떠나갈 수 있다. 그러나 꼭 그만큼이나 사실인 것은 인간에게는 소위 기대수명이라는 것이 있다는 사실이고 그 기대수명을 기준으로 했을 때 내게는 아직 너무 많은 나날이 남아있다는 사실이다. 그 긴 시간을, 지금껏 모든 것을 함께 해 온 사람을 떠나보내고 혼자 보내야 한다는 것은 때로는 견딜 수 없는 먹먹함이다. 그래서 가끔 그런 생각을 해 본다. 그가 떠난 것이 10년만 후였더라도 내게 남은 나날은 지금보다는 훨씬 짧았을 것이고, 그랬더라면 지금만큼 힘들지는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하고. 그리고 10년 후의 나는 최소한 지금보다는 조금은 더 의연하지 않았을까 하고. 지금껏 40여 년을 살아온 결과 10년 후의 나는 조금은 다를 거라는 기대는 한 번도 이루어진 적이 없는데도, 나를 덮친 이 거대한 슬픔 앞에 나는 또 그렇게 생각하고 만다.


나의 물음에 상담사 선생님은 그건 꼭 그렇지 않다고 답을 주셨다. 문제의 본질은 사랑하는 사람을 너무나 갑작스럽게 잃었다는 점에 있을 뿐, 그 일이 언제 발생했느냐는 부차적인 문제라고도. 사람에게는 누구나 그 나이에 맞는 슬픔과 불안이 있으며, 이 일은 내가 몇 살 때 일어났더라도 그 방향이 조금 다를 뿐 지금과 똑같은 강도로 나를 괴롭혔을 것이라고도. 지금은 그 말이 맞다고 생각한다. 지나온 나날 내내 10년 후의 나에게 배신당하고 살았듯이, 50대의 내가 지금의 나보다 썩 믿음직하거나 든든할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이 일이 10년을 유예하고 그때 일어났더라도 나는 아마 지금과 똑같이 슬퍼하고 탄식했겠지. 그때쯤에는 나잇값 못한다는 자책감까지 더해져 더 괴로울지도 모른다. 지금은 그 점에서만큼은 별다른 자책을 느끼지 않는 것도 사실이니까.


거대한 인생 앞에서 사람은 언제까지나 갈 길을 모르고 우왕좌왕하는 어린애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나이테는 잘 보이지 않고, 그나마도 찬란한 빛에 눈이 멀어 꺼져가기에. 어느 노래의 가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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