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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Mar 19. 2023

홈트로는 안 돼요

-340

날이 풀려서 바깥에 나가는 것에 대한 심리적인 저항감이 낮아진 탓인지 아님 이번주 운세가 그런 건지 소소하게 나갈 일이 거의 매일 생기고 있는 지난 주였다. 어제도 그랬다. 무료한 토요일에다 요즘 계속 마음을 괴롭히고 있는 이런저런 문제들에 대한 무용한 고민들까지 겹쳐서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고 있던 나에게 그렇게 청승 떨 거면 나갔다 오기라도 하라는 듯 급하게 시간을 맞춰 나갔다 와야 할 일이 생겼다. 덕분에 엉덩이라도 걷어 차인 것마냥 부리나케 나갔다 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버스 한 번을 타면 좀 편하게 갈 수 있는 길이긴 했다. 그러나 문제는 어제는 주말이었고 지상으로 다니는 버스로는 도착 시간을 가늠할 수 없다는 점에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버스로는 시간을 맞출 수 없을 것 같아 결국 중간에 내려 지하철로 갈아타야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지하철 역까지 가는 동안 발을 동동 구르며 검색을 해 보니 지하철을 갈아타도 시간이 빠듯했다. 나는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가방을 움켜쥐고 뛰기 시작했다. 평소 지하털 에스컬레이터에서 걸어 다니던 사람들을 '극혐'하던 나였지만 정작 내가 바빠지니 도리가 없었다. 나로서는 제법 눈썹이 휘날리게 뛰어 겨우 지하철을 타고 목적지 역에 내리는 데까지는 성공했는데, 이제부터가 문제였다. 목적지가 지하철 전동차 문 바로 앞에 있지 않은 바에야 거기서부터 지상까지를 한참 올라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뭐 도리가 없었다. 뛰어야 했다. 새로 뚫린 노선 역사라 그런지 척 보기에도 엄청나게 높은 계단이었지만.


아마 1년 전의 나였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1년 동안 나름 체중계 앞자리가 두 번 바뀐 나였던지라 요즘 친구들 말대로 '후반 15분 정대만' 상태가 되긴 했지만 어쨌든 그 높고 긴 계단을 무사히 뛰어올라가 시간 안에 도착할 수는 있었다. 가까스로 볼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다리게 뒤늦게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이거 왠지, 오늘 지나고 내일 되면 뭉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슬픈 예감은 늘 틀린 적이 없어서, 오늘 아침에 일어나니 허벅지 앞쪽 근육이 통째로 딴딴하게 뭉쳐서 의자에 앉았다 일어날 때마다 비명을 지르고 있다.


약간 억울하다. 나 그래도 나름 아침에 운동하는데. 예전처럼 숨쉬기 운동만 하면서 살고 있는 거 아닌데. 고까짓 계단 몇 칸 좀 뛰어 올라갔다고 이렇게까지 빌빌대다니. 역시 제대로 운동을 하려면 나가서 뛰든지, 걷든지, 자전거를 타든지 하는 게 제격이고 고까짓 홈트 조금 하는 정도로는 '실전근육'을 만드는 것에는 많이 부족한 모양이다.


운동을 진작부터, 좀 열심히 할 걸 그랬다. 이왕이면 그가 떠나기 전에 그랬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사람 일 모르는 거라지만, 그랬으면 이 때이른 이별도 조금은 늦출 수 있지 않았을까. 계단 몇 칸 뛰어올라갔다가 허벅지가 무참하게 뭉쳐버린 아침에, 그런 뒤늦은 후회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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