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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Mar 18. 2023

보고 싶다고 말하면 더 보고 싶은

-339

어제는 이래저래 힘든 날이었다. 오전의 평온이 무색하게도 나는 오후 내내 박살이 난 내 멘탈을 붙들고 어떻게든 수습하기 위해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참 이상한 일이다. 이미 일어난 일이고, 그렇게 될 걸 뻔히 알고 있는 일이 일어났는데도 한 번 요동치기 시작한 마음이 가라앉지를 않았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건 사람이 살아가는 데 의외로 중요한 요소인 모양이다.


그렇게 오후 내내 동동거리다가 마지막쯤엔 그냥 울컥해졌다. 나 힘들다고, 힘들어 죽겠다고 징징거리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며칠 전에 갔던 봉안당에 또 갔다. 언제나처럼 평온한 얼굴로 바라보는 그의 사진 앞에서 혼자 그렇게 좋은 데 가서 이 꼴 저 꼴 안 보고 사니까 좋냐고, 나 진짜 힘들어 죽겠다고, 거기까지나 갔으면 날 좀 도와주든지 그게 안 되면 좀 데려가기라도 하라고 생떼에 가까운 떼를 한참이나 썼다. 그렇게 한참을 주절거리다가 나왔다. 아마 요즘 힘들긴 힘든가 보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번 달만 네 번이나 찾아가서 거의 똑같은 레파토리로 떼를 쓰고 있으니까.


일교차가 많이 날 거라는 말을 듣고 점퍼를 입고 나왔는데 기온이 오른 탓인지 아니면 하루 종일 여기저기를 뛰어다닌 탓인지 나중엔 견딜 수 없이 더웠다. 이제 봄이구나 하는 서글픈 실감이 들었다. 삶에 아무런 걱정도 없이 그 사람이 떠난 봄이 어김없이 되돌아오는 것만 슬퍼하면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올해 그의 기일은 4월 말쯤이다. 그때쯤엔 또 뭘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 생각들까지 밀려들어 머리는 조금 더 복잡해졌다.


봉안당을 나와 비탈을 올라가는 옆 둔덕에 무언가 조그맣고 올망졸망한 것들이 있었다. 저게 뭐지 하고 그 번잡스러운 와중에도 걸음을 멈추고 살펴보았다. 꽃이었다. 아. 꽃피는구나. 길거리 나무들에 새 순이 올라온 것은 익히 몇 번이나 보았고 멀리 갈 것도 없이 집에도 새 잎을 틔운 무화과가 있지만, 역시 잎과 꽃은 조금 그 의미가 다른 모양이었다. 나는 한참이나 그 자리에 발을 멈추고 그 이름 모를 꽃을 바라보다가 핸드폰을 꺼내 사진 한 장을 찍었다. 나름, 그가 떠나고 처음으로 혼자 맞는 첫 봄의 첫 봄꽃인 셈이다.


집에 와서 찾아본 바에 의하면 이 조그만 꽃은 제비꽃 종류인 모양이다. 저 작고 연약한 생명도 영하 20도를 우습게 오르내리던 그 추위를 견디고 꽃을 피웠구나 하는 생각, 혼자 마주한 세상은 때론 너무 무섭고 때론 너무 힘들지만 그래도 어쨌든 하는 데까지는 해봐야지 않겠냐는 생각을 해 본다. 그래도 아직은 모든 게 너무 무섭고 두렵다. 그래서 아마도 당분간은, 심심하면 봉안당에 쳐들어가 그의 평온한 잠을 흔들어 깨우고, 이거 좀 어떻게 해줘 보라고 생떼를 쓸 것 같다. 보고 싶어서. 보고 싶다고 말하면 더 보고 싶어진다는 한 아이돌의 노래 가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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