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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Jul 03. 2024

맛이 틀려

-219

지난 주말부터 이번주 초까지는 간만에 몸을 좀 움직여야 할 일이 더러 생기는 분위기다. 아침에는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이제나 저제나 발만 동동 구르고, 오후 들어 비가 좀 잦아든 틈에 재빨리 집 밖으로 이런저런 것들을 좀 내놔야 해서 티셔츠가 땀 때문에 등에 들러붙도록 나름 빡세게 일했다. 그러느라 점심은 저녁쯤에 뭘 먹을 각오를 하고 급하게 라면 하나 끓여 먹고 대충 때웠다. 그렇게 벌여놓은 일을 다 해치우고 한숨을 돌리니 오후 네 시도 넘은 시간이 되었다.


그렇게 하루를 꼬박 보내고 나니 그야말로 '오늘만은 뭘 먹어도 나를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은' 상태가 되었다. 좀 그럴듯한 뭔가를 먹고 싶었지만 이 비 오는 날씨에 일부러 나가는 것도 귀찮고, 그냥 집 앞 편의점에서 적당한 유부초밥을 간만에 한 팩 사 왔다. 그리고 디저트로 먹을 예의 치즈케이크 맛 크래커도 사 왔다. 내가 주로 사다 먹는 것은 종이박스 안에 개별포장된 것들이 들어있는 형태고, 편의점에 파는 것은 아주 트래디셔널한 형태의, 돌려서 까는 비닐 포장에 들어있는 제품이다. 이 크래커를 이런 식으로 포장된 것으로 사온 나름 처음이었다.


간만에 몸을 좀 움직여서 출출하던 터라 유부초밥 한 팩을 기세 좋게 먹어치우고 크래커를 뜯었다. 그리고 하나를 집어먹어본 순간 어라 이거 내가 알던 그 맛이 아닌데? 하는 생각에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수개월 간 그야말로 재놓고 먹던 그 종이박스에 든 크래커보다 조금 더 두껍고, 조금 더 짭짤하고, 조금 더 기름진 맛이 났다. 뭐가 낫고 뭐가 못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렇게 두 크래커의 맛이 분명히 '달랐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다. 분명히 같은 제품인데도.


그러고 보니 비슷한 예가 하나 더 있다. 콜라다. 콜라는 어디 용기에 담겨 있느냐에 따라 그 맛이 다르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그의 말을 빌자면 콜라 중에 제일 맛없는 것이 페트병에 든 콜라이고 중간 정도 맛있는 것이 캔 콜라이며 제일 맛있는 것이 식당 같은 곳에서 파는 유리병에 든 콜라라고 한다. 에이 그런 게 어디 있냐고, 똑같이 만든 콜라인데 담는 용기만 다르게 해서 나오는 거 아니냐고, 페트야 아무래도 따서 한 번에 마시지를 못 하니까 놔두면 김이 빠지니 맛이 없어지고, 유리병 콜라는 아무래도 고깃집 같은 데서 느끼한 것 먹는 와중에 먹게 되는 경우가 많으니까 실제 이상으로 맛있게 느껴지는 게 아닐까 하고 나로서는 매우 드물게 논리적으로 반박했지만 그는 분명히 맛이 다르다는 본인의 주장을 꺾지 않았다. 그 문제로 몇 번이나 설전이 오갔지만 그는 '뭘 어떻게 하는 건지는 모르지만 분명 맛이 다르다'고 주장했고 급기야 내 쪽에서 아 그래 당신이 그렇다니까 그렇겠지 하는 식으로 유야무야 넘어가는 식으로 일은 마무리되었었다.


이제 와서 그가 하던 것과 똑같은 말을 새삼 하고 있자니 머쓱하기도 하고 객쩍기도 하다. 거 보라고, 내가 뭐랬냐고, 콜라 맛 분명히 다른 거 맞다고 했지 하고 아마 의기양양해하고 있을 것도 같다. 그러게. 분명 같은 제품인데도 맛이 다르기도 한 모양이다. 당신은 알았고 내가 몰랐을 뿐.


이 이미지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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