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을 하는 이유

내가 그래도 좀 괜찮은 사람인 것 같아.

by 어떤사람

3월 4일 화요일, 개학식.


이사와 전학이라는 큰 이벤트에서 내내 고민을 하다가 휴직을 결정했다. 아이 둘을 낳고 키우면서 첫째는 출산휴가 후에 이모님이 돌봐주셨고, 둘째는 출산휴가 후에 신랑의 육아휴직 전까지 3개월 정도 짧은 육아휴직만 했었다. 집에만 있을 자신도 없었고 아이만 키울 자신은 더욱 없었고, 내 일을 하지 않는 건 너무 우울한 일이었기 때문에. 그런데 둘째가 어린이집 적응을 힘들어하고 첫째의 기질 상 환경 변화를 어려워할 것이 뻔해서 육아휴직을 결정했다.


그래서 온통 아이의 전학 후 첫 등교, 개학에만 정신이 쏠려 있었고 아이를 무사히 등교시키고서 안도의 마음을 내려놓는 참이었다. 연달아 울리는 카톡에 핸드폰을 확인해 보니 작년 담임 반 단톡방이다.


'선생님, 보고 싶어요. 선생님, 다시 오세요.'


아이들의 멘트에 슬그머니 기분이 좋아졌다. 첫날이라 낯을 가리는 아이들이 종종 작년을 그리워하는 소리를 하는데 금방 적응해서 다 잊을 걸 알면서도 나는 또 실없이 기분이 좋다.


'일주일이면 나를 잊는다에 내 전 재산을 건다. 낯가리지 말고 담임쌤이랑 빨랑 친해져.'


이렇게 카톡을 남겨놓고는 그래도 나를 잊지 않아 줘서 고마운 마음이 든다.


다음날은 2교시 쉬는 시간에 재작년 담임 반 녀석이 전화가 와서 무슨 일이 생긴 줄 알고 깜짝 놀라 받았더니 선생님이 생각나서 같이 전화를 했다면서 이 녀석 저 녀석 목소리가 인사를 한다. 고3이니까 진짜 이제 공부를 하겠다는 녀석에게 열심히 하라고, 선생님 덕분에 사람이 됐다는 녀석에게 그래, 넌 좀 사람이 될 필요가 있었다며, 선생님 전근 간 학교를 찾아내겠다는 녀석에게 그러면 맛있는 걸 사주겠다고 고3이니까 이제 다들 좀 열심히 하라고 짧은 통화를 끝내고는 아들 생각에 지쳐있던 마음에 힘이 났다. 하교 시간이 지나서는 작년 반 남자 녀석들이 전화가 와서 선생님이 다시 와야 한다길래 그러니까 있을 때 잘하라고 지금도 지금 계신 분들한테 잘하라고 잔소리를 늘어놓고는 낄낄거렸다.


이래서 나는 학생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좋다. 사실 요즘 학교는 모두들 담임을 꺼려하는 모양새이기는 하다. 정말 신경 쓸 일도 많고 들이는 품에 비해서 성과가 눈에 띄는 것도 아니고 대가가 높은 것도 아니고 문제가 생겼을 때는 결국 담임 책임인 학교 현실이기 때문에 정말로 귀찮은 일이기는 하다. 그래도 나는 담임이 좋다. 아이들과 함께 시답잖은 이야기를 하면서 낄낄거리고 아이들의 상처를 가까이에서 보고 툭툭 단단하게 두드려 주기도 하고 같이 고민하고 혼내고 싸우고...................(물론 좋은 일만 있지는 않다...........) 그러면서 미운 정 고운 정에 그래도 내새끼라고 감쌀 수 있는 녀석들이 있다는 게 나는 너무 좋다.

그러면 아주 가끔(가뭄에 콩 나듯이 가끔) 내가 잊어버릴 쯤 '그래도 내가 좀 좋은 사람인가? 괜찮은 사람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해주고는 한다. 일 년 내내 과묵한 녀석의 '감사했습니다.'라는 한 마디가, 온갖 사고를 쳐서 속을 썩이고도 '그래도 선생님이 좋아요.'라는 한 마디가 교사로서의 자긍심을 가지게 한달까... 그래서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고, 괜찮은 사람으로 남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달까...


육아휴직 6개월의 공백이 벌써부터 허전하고 우울감이 드는 나에게 아이들의 마음이 단비처럼 스며들어서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구나 감사하게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너희가 마지막 보루야.